[include(틀:역대 포르투갈 국왕)]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MF_Manoel_II.jpg]] 생애 : [[1889년]] [[11월 15일]] ~ [[1932년]] [[7월 2일]](만 42세) 재위기간 : [[1908년]] [[2월 1일]] ~ [[1910년]] [[10월 5일]] 마누엘 2세는 [[포르투갈 왕국]]의 마지막 국왕이다. 별명은 애국자왕(o Patriota) 또는 불운왕(o Desventurado). [목차] == 생애 == [[1908년]] [[2월 1일]] 부왕인 [[카를루스 1세]]와 형 [[루이스 필리프]]가 공화주의자들에 의해 암살당하자 즉위하였고, 2년 뒤인 [[1910년]] [[10월 5일]] 공화주의자들에 의해 발생한 혁명으로 퇴위하였다. 1913년 [[호엔촐레른 왕조|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의 [[아우구스타 빅토리아]]와 결혼하였으나 자녀는 없었다. [[1932년]] [[7월 2일]] [[런던]]에서 사망했다. 그의 사망으로 [[마리아 2세]]와 [[페르난두 2세]]의 후손인 브라간사사셰코부르구고다 계통[* 별칭 입헌계통(Constitutional line)]은 끊긴다. [[1922년]] 그가 [[미겔 1세]]의 손자 두아르트 누노를 왕가의 후계자로 인정한 이후 미겔 1세의 후손들인 브라간사 공작 가문이 포르투갈 왕가의 수장이 된다. 현 가문의 수장은 브라간사 공작 [[두아르트 피우]]. 이 사람은 [[페드루 2세]]의 후손이기도 하지만 브라질 황제 계승권은 없다. == 여담 == 비록 국민들의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에 대한 열망 때문에 폐위되어 쫓겨나야 했지만, 자신을 폐위시킨 국민들을 일절 원망하지 않았고, [[내전]]을 염려해 군주제 복귀를 주장하는 시도가 여러차례 있음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폐위 후에는 [[포르투갈/역사|자국의 역사]]를 다룬 책을 집필하기도 하는 등 애국심이 강해 '애국자왕'이라 불리며 세간의 존경을 받았다. == 관련 사진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Infante_D_Manuel.jpg]] 어린 시절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anuelIIPortugal.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The_Nine_Sovereigns_at_Windsor_for_the_funeral_of_King_Edward_VII.jpg]] [[에드워드 7세]]의 장례식에서. 뒷줄 왼쪽부터 [[노르웨이]] 국왕 [[호콘 7세]], [[불가리아 왕국|불가리아]] 국왕 [[페르디난트 1세(불가리아)|페르디난트 1세]], [[포르투갈 왕국|포르투갈]] 국왕 '''마누엘 2세''', [[독일 제국|독일]] 황제 [[빌헬름 2세]], [[그리스 왕국|그리스]] 국왕 [[요르요스 1세]], [[벨기에]] 국왕 [[알베르 1세]]다. 앞줄은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 [[영국]] 국왕 [[조지 5세]],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8세]]. [[분류:포르투갈 국왕]] [[분류:브라간사사셰코부르구고다 가문]] [[분류:1889년 출생]] [[분류:1932년 사망]] [[분류:폐위된 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