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li Elbe (1882년 ~ 1931년) [[파일:Lili Elbe.jpg]] [목차] == 개요 == '''[[세계]] 최초로 현대적인'''[* [[인도]]의 [[제3의 성]]이라는 히즈라들도 [[거세]]로 구성된 원시적인 [[성전환 수술]]을 했으며(현대에도 존재), [[로마 제국]] 시대에도 원시적인 [[성전환 수술]]을 시도했다는 기록이 있다.] '''[[성전환 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로 당시 [[유럽]]에서 엄청난 쇼크를 불러 일으킨 인물이다. 본명은 에이나르 베게너(Einar Wegener). == 생애 == [[덴마크]] 왕립 예술학교에 다니던 중 게르다 고틀리브(Gerda Gottlieb)를 만나 결혼했다. [[화가]]였던 부인의 모델이 사고로 못 나오자 권유로 [[여장]]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여자 옷을 입은 자신에게 편안함을 느낀 후 여장을 즐겨 하게 되었으며 [[아내]]와는 [[자매]]처럼 지냈다. 이후 여장할 때는 릴리 엘베라는 이름을 썼다. 1930년부터 1931년에 걸쳐 [[독일]]로 건너가 총 5번의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첫 수술에서 독일 의학과의 마그누스 히르슈펠트(Magnus Hirschfeld) [[박사]]의 집도 하에 [[음낭]]과 [[고환]]을 제거하는 것으로 수술이 시작되었다. [[드레스덴]] 시립 [[산부인과]] 진료소에서 2번째 수술이 시작되었으며 그 때는 [[음경]]의 제거와 [[난소]]의 이식이 시작되었다. 그 난소는 26세의 어느 여성으로부터 제공받은 것이었다. 거부 반응으로 인해 3, 4번째 수술에서 해당 난소는 제거되었으나 5번째 수술에서 난소와 [[자궁]]이 성공적으로 이식되어 결과적으로 그녀가 49세 되던 해에 [[여성]]의 몸이 되었다. 수술 후 3개월, 그녀가 꿈에 그리던 여성으로서의 [[여권]]을 손에 쥐었으나 거부 반응으로 끝내 사망했으며 드레스덴에 매장되었다. 수술을 받던 도중 언론에 소개되어 이를 안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10세]]가 이들의 [[결혼]]을 무효화했다. 당시 덴마크에는 혼인을 이성 간의 결합으로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부인이었던 게르다 고틀리브는 그녀의 [[성전환]]을 계속 지지했으며 그녀와 [[이혼]]할 때까지 그녀의 곁을 지켰다. 강제 이혼 후, 게르다는 [[이탈리아]]의 [[외교관]]과 재결혼을 해서 [[모로코]]로 갔고 그곳에서 릴리의 죽음을 알게 된다. 재결혼에서도 이혼하고 덴마크로 돌아온 그녀는 1940년에 생을 마감한다. == 그외 == 그녀의 생애를 다룬 영화 [[대니쉬 걸]]이 2016년 2월 18일에 국내 개봉했으며, [[영국]]의 배우 [[에디 레드메인]]이 릴리 엘베를 연기했다. ||<table width=60%> [[파일:릴리 엘베 동아일보 보도.jpg|width=100%]] || || 릴리 엘베에 대해서 보도한 1933년 동아일보 기사 || 엘베와 반대로 여성에서 남성으로의 성전환 수술을 받은 첫 트랜스젠더는 영국의 마이클 딜런(Michael Dillon)이지만 이 사람은 다소 널리 알려지진 않았다. 사실 수술 기법으로 치면 이 음경 재건수술은 원래 사고로 [[음경]], [[고환]]을 잃은 ~~고자~~[[시스젠더]] 남성을 위한 재건 성형 연구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 이 사람은 영국 최초의 MTF 수술자의 고환적출 수술을 집도[* 나머지 질 재건 수술은 딜런의 수술을 집도한 해럴드 길리스 박사가 집도했다.]한 의사이기도 했으나, 귀족 가문 출신이다보니 본가의 작위, 재산 [[상속]]과 관련한 언론 보도에서 혼선이 빚어지며 [[아우팅]]을 당한 후 인도로 도망치듯 이주하여 [[티베트 불교]]에 귀의하다 4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분류:덴마크의 인물]][[분류:트랜스여성 인물]][[분류:1882년 출생]][[분류:1931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