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able align=right><table bordercolor=#000000><bgcolor=#fffff9> '''{{{+1 린하이펑 / 린 카이호 [br] 林海峰(임해봉) / Rin Kaiho}}}''' || ||<-2> [[파일:rinkaiho.jpg|width=300]] || ||<bgcolor=#000000> '''{{{#white 직업}}}''' ||<bgcolor=#fffff9> [[바둑기사]] || ||<bgcolor=#000000> ''' {{{#white 소속}}}''' ||<bgcolor=#fffff9> [[일본기원]] || ||<bgcolor=#000000> ''' {{{#white 생년월일}}}''' ||<bgcolor=#fffff9> [[1942년]] [[5월 6일]] || ||<bgcolor=#000000> ''' {{{#white 국적}}}''' ||<bgcolor=#fffff9> [[파일:대만 국기.svg|width=28]] [[중화민국]][* [[대만]]이 아닌 [[중화민국]]이다. 출신지도 중국 대륙이다.] || ||<bgcolor=#000000> ''' {{{#white 출신지}}}''' ||<bgcolor=#fffff9> [[중화민국]] [[장쑤 성]] [[상하이]] 시[br](현재 [[중화인민공화국]] [[상하이]] 시) || ||<bgcolor=#000000> ''' {{{#white 입단}}}''' ||<bgcolor=#fffff9> [[1955년]] || ||<bgcolor=#000000> '''{{{#white 단급}}}''' ||<bgcolor=#fffff9> 九단 || ||<bgcolor=#000000> '''{{{#white 누적우승경력}}}''' ||<bgcolor=#fffff9> 35회 || [목차] == 개요 == [[일본]]의 프로 [[바둑]] 기사. [[상하이]] 출신이지만(본적은 저장성) 국적은 [[중화민국]]이다.[*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이 국적 변경을 제안했지만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만의 외성인이니만큼 당연하다. 중화민국이 일본으로부터 타이완 섬을 돌려받은 후 아버지의 근무지가 타이베이로 정해져서 건너갔고 국부천대가 되자 눌러 앉게 된 것이다. 한편 그의 출생 전에 아버지는 외교관으로서 타이베이에 근무했다 귀임하였던 적도 있다(타이베이는 당시 일본령이었으므로 일종의 해외근무다. 현재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타이베이에는 '''[[중화민국]] 영사관'''이 있었다.)] 한국, 일본에서는 한자를 그대로 읽은 임해봉, 린카이호로 알려져 있다. [[여권]] 영문명칭도 [[일본어]] 발음처럼 Rin Kaiho로 되어 있다. 젊었을 때 끈질긴 기풍으로 이중 허리~~[[이창호]] 프로토타입~~라고 불렸으나, 장년 이후에는 전투적으로 바뀌었다. 동갑내기 라이벌인 [[오타케 히데오]]와 함께 죽림(竹林)이라고도 한다. == 상세 == 1952년 10세 때 대만을 방문한 [[우칭위안]]과 6점 접바둑을 둔 다음 그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일본으로 오게 된다. 1956년 12세에 입단했는데 이는 당시 최연소 기록으로 훗날 [[조치훈]]이 깨뜨린다. 1965년 [[사카타 에이오]] 명인 겸 혼인보를 4-2로 이기고 23세에 당시 최연소 명인, 1968년 혼인보전에서 사카타 혼인보를 4-3으로 이기고 사카타에 이어 사상 2번째 명인 겸 혼인보가 된다.[* 명인 겸 혼인보는 이후 [[이시다 요시오]], [[조치훈]], [[장쉬]], [[다카오 신지]], [[야마시타 게이고]], [[이야마 유타]]가 차지했다.] 1989~93년 천원전 5연패로 명예 천원이 된 것을 포함해 통산 35개의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2015년 8월 [[조치훈]]에 이어 사상 2번째로 1400승을 달성했다. == 기타 == 1973년 [[이시다 요시오]] 도전자와의 명인전, 1983년 [[조치훈]] 혼인보와의 혼인보전에서 3연패 후 4연승으로 역전 우승했다. 일본 기전에서 3연패 후 4연승으로 뒤집은 기록은 6번 밖에 없는데 그 중 3번을 조치훈, 2번을 린하이펑이 달성했다. 1987년 [[가토 마사오]] 명인과의 명인전에서 0-2으로 뒤진 제3국, 1집반 정도 우세한 상황에서 '''두 수를 연거퍼 두는 바람에''' 반칙패하며 도전에 실패했다. 1993년 [[고마쓰 히데키]]와의 본인방전에서 바둑에서 굉장히 드물게 나타나는 [[장생]]이 연출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명인전 타이틀을 딴 직후 “바둑의 신(神)이 있다면 몇 점 정도로 버틸 수 있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3점 정도면 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대답하여 화제가 된 바 있다. [[이창호]]가 10대 때 "존경하는 기사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고 곧바로 린하이펑이라 대답했으며, 린하이펑 본인도 세계대회 결승에서 이창호에게 패한 다음 의연한 모습으로 복기에 임해 팬들의 칭송을 받았다.[* 린하이펑은 이창호와 세계대회 결승전을 치르기 전에 이창호는 자기 아들보다도 한 살 어리다며 부담감이 굉장히 많다고 한 적이 있다.] [[소년탐정 김전일]] [[혈류실 살인사건]]의 범인 카이호 마나부(海峰學)가 린하이펑(林海峰)한테서 이름을 따 왔다. [[한국]]에 번역될 때는 한자가 나오지 않고 그냥 '카이호'라고만 적어서 모르는 사람이 있는 듯. [각주] [[분류:1942년 출생]][[분류:바둑 기사]][[분류:자수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