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able align=center><table width=400><table bordercolor=#bc0021><bgcolor=#bc0021><tablebgcolor=#ffffff,#1f2024>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9C001B, #BC0021 20%, #BC0021 80%, #9C001B)" {{{#ffffff '''제7대 북한 외무상[br]{{{+1 리수용 / 이수용}}}[br]李洙墉 | Ri Su-yong'''}}}}}}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리수용.jpg|width=350]]}}} || ||<|2><bgcolor=#bc0021> {{{#ffffff '''출생'''}}} ||[[1935년]] ([age(1935-01-01)]세)|| ||[[일제강점기|일제강점기 조선]] 평안남도 평양부|| ||<bgcolor=#bc0021> {{{#ffffff '''국적'''}}} ||[[파일:북한 국기.svg|width=28]] [[북한]] || ||<bgcolor=#bc0021> {{{#ffffff '''학력'''}}} ||[[파일:Kim Il Sung University emblem.png|width=20]] [[김일성종합대학]] {{{-1 (학사)}}}[br][[국제관계대학]] {{{-1 (불어과 학사)}}}|| ||<bgcolor=#bc0021> {{{#ffffff '''직업'''}}} ||외교관, 정치가 || ||<|9><bgcolor=#bc0021> {{{#ffffff '''주요경력'''}}} ||주 스위스 북한대사(1998~2010)|| ||최고인민회의 11~12기 대의원(2003~2014)|| ||외무상(2014~2016)||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외교부장(2016~2019)||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2016~2019)|| ||조선로동당 정치국 위원(2016~2019)|| ||국무위원회 위원(2016~2020)||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2017~2020)|| ||'''최고인민회의 14기 대의원(2019~현재)'''|| ||<bgcolor=#bc0021> {{{#ffffff '''주요서훈'''}}} ||[[파일:attachment/bbogriorder.jpg|width=20]] 김정일훈장(2012)|| ||<bgcolor=#bc0021> {{{#ffffff '''정당'''}}} ||[[파일:wpk.jpg|width=28]][[조선로동당]]|| ||<bgcolor=#bc0021> {{{#ffffff '''지역구'''}}} ||[[평양직할시]] [[서성구역]] 서성선거구(제25호)|| [목차] == 개요 == 북한의 정치인. 전 [[조선로동당]] 부위원장 겸 국제담당 부장이자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았다. == 생애 == 리수용(표준어:이수용)은 [[평양직할시]]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1935년생이다. 김일성종합대학, 국제관계대학 불어과를 졸업했다. 북한 외무성에서 외교관으로 경력을 시작하였다.1998년 스위스 대사로 부임하여 [[김정남]], [[김정철]], [[김정은]] 형제의 스위스 유학을 돌본 후견인으로, 이미 [[이한영]] 회고록에 외교부의 실세로 언급되어 있을 정도로 일찍부터 알려진 인물이다. 유능하고 똑똑하지만 밑의 의견을 매우 주의깊게 경청하는 인상깊은 성품의 소유자이며, 김정일을 구스를 수 있는 드문 재주를 가지고 있어 고난의 행군 시기나 룡천역 폭발 사건 이후 외교관들의 김일성 뱃지 착용 의무를 폐지하거나 핸드폰 사용을 허락받는 등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진작에 수용소로 끌려갔을 법한 제안도 척척 승인을 받아냈다. 2011년 [[김정일]] 사망 당시에 국가장의위원회 위원을 맡았으며, 2016년까지 외무상 직책을 맡았다. 2016년 조선로동당 7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위원 겸 국제담당 비서에 임명되었다. 이후 2018년부터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에 임명되었다. 국내 언론에서는 후임인 [[리용호]]와 자주 혼동되어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 행적 == 스위스에서 오랫동안 외교관으로 일을 해서 그런지 서방 외교 및 서방 사회에 대한 이해가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김정은이 유년시절 [[스위스]]에서 유학하였을 때 스위스 대사로서 옆에서 보좌하고 여러가지로 많이 도와준 인물로 김정은한테는 고마운 존재라고 한다. [[태영호]] 공사의 회고에 따르면, 굉장히 머리가 비상하면서 하급 외교관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인상깊은 인물로 동시에 김씨 일가의 비위를 잘 맞춰주는 기술까지 겸비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여러모로 먼치킨인듯. [[김일성]]과 [[김정일]] 시대의 북한 외교가 [[강석주]]와 [[김계관]], [[김영남]]에 의해 이끌어졌다면 [[김정은]] 시대의 북한 외교는 리수용과 [[리용호]]에 의해 이끌어진다고 볼 수 있다. 사실상 김정은 정권 북한의 외교 핵심인사이다. 현재 외무상 자리[* 우리나라로 치면 외교부 장관]를 [[리용호]]에게 넘겨주고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김정은의 외교정책과 북한의 대외정책 구상에 실질적인 브레인 역할을 맡고 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때 북한측 대표단으로 참석하였으며,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를 하였다. 그리고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북한 대표단으로 선정되어 김정은과 함께 [[싱가포르]]로 출국한 것이 확인되었다. 2018년 7월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가 [[쿠바]]를 3일부터 9일까지 방문하였다. 그곳에서 리수용이 [[라울 카스트로]]에게 김정은의 구두 친서를 전달하며 [[북한]]과 [[쿠바]]의 외교관계의 돈독함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실제로 [[쿠바]]는 북한의 몇 안되는 우방 국가이고, 오랫동안 우호 관계에 있었다. 동시에 [[쿠바]]가 [[대한민국]]과 아직까지 외교 관계를 수립하지 않은 점은 그들의 관계가 아직까지는 친근하다는 점을 부각한다. 2020년 1월초 [[김형준(북한)]] 전 주러시아 북한대사에게 조선로동당 국제부장 자리를 넘겨주었다. 이로서 리수용-[[리용호]]로 이루어졌던 북한 외교 투톱이 변경되었다. 4월에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14기 3차 회의에서 리용호와 함께 국무위원회 위원과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에서 쫓겨났다. 미국 스팀슨센터 연구원 마이클 매든은 리수용이 은퇴한 것으로 [[https://www.voakorea.com/korea/korea-politics/kimjongun-personnel-style|추정했다.]] 여든의 나이니까 다른 나라라면 은퇴해도 크게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 사실이고, 북한이 근래에 김영남, 양형섭 등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원로들을 대거 은퇴시켰다는 점에서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리용호가 같이 외교 실무진에서 축출당한 점에서 성과 문제 내지 김정은의 외교 전략 변경을 큰 요인으로 봐야할 것이다. == 경력 == 1973년-1979년, 외교부 국제기구국장, 의례국장 1979년-1980년, 당 조직지도부 서기실 책임비서 1980년-1987년, 스위스 제네바대표부 공사, 외교부 순회대사 1987년 9월-2010년 3월, 스위스 제네바대표부 상임대표, 스위스 주재 대사, 이밖에도 리히텐슈타인, 네덜란드 주재 대사 겸임 2000년 7월, 합영회사 KOHAS 대표 2010년 9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임 2010년-2011년, 내각 합영투자위원회 위원장 2010년 ~ 2014년 5월 외무성 부상 2014년 5월 ~ 2016년 4월 외무상 2018년 조선로동당 국제부장 겸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 == 여담 == 20세기에 태어난 북한 사람 치고는 기골이 장대한 편이다. 북한 주요 인사 중 [[김영남]]이 키가 제일 크지만 그 못지 않게 장신이다. [[분류:북한 외무상]][[분류: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분류:조선로동당 정치국 위원]][[분류:조선로동당 국제부장]][[분류:북한 국무위원회 위원]][[분류:1935년 출생]][[분류:평양직할시 출신 인물]][[분류:주체사상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