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33px-Livland_15jh.png]] [목차] == 개요 == 리보니아는 중세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 일대에 [[동방식민운동]]의 일환으로 세워진 독일인들의 식민지를 말한다. 라트비아 일대에는 주로 [[발트어족]] 민족들이 거주하였고, [[리보니아인]]은 비교적 소수였지만,(라트비아가 독일인 이주 전 [[폴로츠크 공국]]에 영향 하에 있을 당시 발트어족 민족들은 135,000여 명 리보니아인은 20,000여 명) 리가를 건설한 독일인 선교사들과 제일 먼저 동맹을 맺은 발트 현지 원주민들이 바로 리브인들이었기 때문에, 리브인의 이름을 따서 리보니아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 상세 == [[파일:18EA0F6D-D8CB-42EF-9C79-3E0C65E68629.png]] 리보니아의 이름을 따서 [[리보니아 검의 형제기사단]]이 구성되고 이후 기사단의 영토는 [[리보니아 연맹]], [[리보니아 공국]][* 폴란드 리투아니아의 봉신국] 등으로 계승되었다. 독일 식민지들은 [[덴마크]]가 장악한 에스토니아 북부 외 대부분 지역을 장악하였고 이를 테라 마리아나라고 불렀다. 당시 리보니아는 독일인 지주와 상공업자가 사회 상류층을 차지하였으며 발트어족과 [[우랄어족]][* 오늘날 [[에스토니아인]]의 기원에 해당하는 추디-에스티인 및 러시아 일대에서 잡혀온 보다인(Votes) 포함]에 해당하는 여러 피정복 민족들은 피지배층 농노로 무거운 조세를 부담하였다. 독일어를 구사하지 못하면 신분 상승은 불가능했으며, 근대 이전의 경우 교육을 받은 현지인들은 대개 독일인과 동화되었다. 명목상 이 지역은 선교를 위한 십자군 운동의 일환으로 정복되었으나, 독일인 지주들은 현지인 농노들을 착취하는데만 관심이 있었고 기독교 교리를 농노들에게 설명해주는데는 대개 무관심했다. 현지인 농노들은 [[일요일]]에는 교회를 가고 평일에는 토속 신앙을 믿는 이중 신앙 생활을 했다. 라트비아 일대는 이런 이중 신앙 생활이 16세기에도 흔했던 걸로 기록되었고, 에스토니아 일대는 19세기까지 지속되었다. 발트 십자군의 이름의 기원이 된 리보니아인의 경우는 더 심했는데 [[리보니아어]]로 성경이 번역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부터였다. 이미 당시 리브어를 사용하는 리보니아인은 주변 민족과의 동화 및 억압적인 식민 지배로 인구가 많이 감소한 상황이었다. [[파일:Sw_BalticProv_en.png]] 이후 이 지역에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과 [[스웨덴]], [[루스 차르국]] 등이 지배권을 놓고 경합을 벌이다 결국 루스 차르국의 후신인 근대 [[러시아 제국]] 이 지역을 점령하였다. 러시아 제국은 독일인 지주들의 권위를 약화시킬 목적 겸 현지인 다수를 구성하는 민족 이름을 따서 이 지역 이름을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로 개명한다. == 스웨덴령 리보니아 == 오늘날 에스토니아 북부에 해당하는 스웨덴령 [[에스토니아 공국]]과 연계되었던 스웨덴 영토로서, 1600년부터 1621년 사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과의 전쟁에서 스웨덴이 에스토니아 남부 일대와 라트비아 대부분 지역을 획득한 후 [[1629년]] 설립되어 [[1721년]]까지 존속되었다. 스웨덴령 리보니아는 [[종교개혁]] 이후에도 남아있던 가톨릭의 잔재를 일소하고 루터교회를 후원했으며, 스웨덴에 점령당하지 않고 폴란드-리투아니아 영토로 보존된 라트갈레 지역은 라트비아 내 다른 지방과 다르게 가톨릭화되었다. [[분류:라트비아의 역사]][[분류:에스토니아의 역사]][[분류:나무위키 지리학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