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이스라엘 국왕)] [include(틀:역대 남유다 국왕)] ||<-5><table align=center><table width=450><table bordercolor=#DDDDDD><bgcolor=#1A2D99><:>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EFEFEF 0%, #FFFFFF 20%, #FFFFFF 80%, #EFEFEF)" [[역대 이스라엘 국왕|{{{#0038B8 '''이스라엘 국왕'''[br]'''유다 국왕'''}}}]]}}} || ||<-5><:>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Rehoboam._Fragment_of_Wall_Painting_from_Basel_Town_Hall_Council_Chamber%2C_by_Hans_Holbein_the_Younger..jpg]] || ||<#00008B> {{{#FFFFFF '''이름'''}}} ||<-4>르호보암 || ||<#00008B> {{{#FFFFFF '''출신'''}}} ||<-4>유다 지파 소속 || ||<#00008B> {{{#FFFFFF '''생몰년도'''}}} ||<-4>~기원전 913년 || ||<#00008B> {{{#FFFFFF '''출생지'''}}} ||<-4>[[이스라엘 왕국]] [[예루살렘]] || ||<#00008B> {{{#FFFFFF '''재위년도'''}}} ||<-4>기원전 931년~기원전 913년[br]약 18년 || ||<#00008B> {{{#FFFFFF '''사망지'''}}} ||<-4>[[유다 왕국]] 예루살렘 || ||<#00008B> {{{#FFFFFF '''왕릉'''}}} ||<-4>유다 왕국 다윗성 || ||<#00008B> {{{#FFFFFF '''아버지'''}}} ||<-4>[[솔로몬]] || ||<#00008B> {{{#FFFFFF '''이전 국왕'''}}} ||<-4>솔로몬 || ||<#00008B> {{{#FFFFFF '''다음 국왕'''}}} ||<-4>[[아비얌]] || [[다윗]]의 손자이자 [[솔로몬]]의 아들로 [[이스라엘 왕국]]을 물려받는다. 한국 천주교 성경에서는 르하브암이라고 한다. 백성들이 [[여로보암 1세|여로보암]]을 앞세워 부역과 세금을 낮춰 달라는 요구를 하자 3일 뒤 답변하겠다고 한 뒤, 먼저 [[솔로몬|아버지]]를 모시던 장로들과 상의했는데, 장로들은 아버지 때 너무 과했으니[* 이스라엘의 황금기였던 절대 군주 솔로몬 통치 당시는 7년 간 성전을 건축하고 13년 간 왕궁을 건설했을 뿐만 아니라 나라 곳곳에 수많은 성과 요새를 짓는 등 수많은 노역에 시달린 시기였기 때문이다] 여로보암과 백성들의 의견을 들어줄 것을 충고하였다. 르호보암은 우선 장로들의 말을 들어 주는 듯 했으나, 아버지에 대한 열등감 때문인 건지 그 충고가 의심스러웠던 건지, 자신과 함께 자랐던 귀족 출신의 소장파 신하들[* 성경에서는 같이 자란 청년들(소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동네에 흔히 돌아다니는 청년들은 아닐 것이고 귀족 자제 출신 젊은 신하를 말하는 것이다.]에게 또 자문을 구했는데, 그들은 "내 새끼 손가락은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고[* 즉 자신의 "가장 연약한 것이라도 선왕(솔로몬 왕)보다 강하다"란 의미.],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대했으나 나는 [[전갈]]로 징치하겠다"고 말하라고 조언했다. 약속한 3일이 지나 백성들이 찾아오자 르호보암은 젊은 신하들이 해준 말을 그대로 따라했는데(맨 위의 그림이 그 내용을 그린 것이다), [[틀렸어 이제 꿈이고 희망이고 없어]]를 느낀 10지파는[* 학자들 가운데는, 이미 이전부터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힘을 모은 10지파의 수뇌부가 합심하여 왕국의 분열까지도 각오한 채로 르호보암에게 협상을 하고자 마음 먹고서 나아간 것이었다는 의견도 있다] 독립을 선언하고[* 이때 이들의 선언서는 "우리와 다윗과 무슨 연관이 있나, 이새의 아들에겐 더 기대할것이 없다. 이스라엘 국민들아 모두 자기 고향으로 가자. 다윗 너는 니 가문이나 잘 챙겨라."]여로보암을 이스라엘의 국왕으로 추대하였으며, 결국 르호보암의 통치 하에는 유다 지파와 벤야민 지파만 남게 된다.[* 그러나 당시의 벤야민 지파는 사실상 유다 지파와 동화된 상태였다.] 그의 왕국이 [[유다 왕국]]이라 불리는 이유이다.[* 대하 10:15을 보면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한 것은 하느님이 아히야로 하여금 여로보암에게 10지파를 다스리는 왕이 될 거라고 예언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물론 르호보암은 여로보암을 토벌하기 위해 18만 대군을 이끌고 북진했지만 선지자 스마야가 길막을 하자 그의 말을 듣고 북벌을 물린다. 이후 정통 신앙을 수호하는 듯하다가 교만해져서 이방신을 섬기게 되었고, 이로 인해 [[야훼|하느님]]의 노여움을 샀다고 한다. 재위 5년차에는 이집트에게도 침략을 받아 시삭(셰숑크 1세, 재위 기원전 943년 ~ 기원전 922년, 고대 이집트 제22왕조의 창시자.)이라는 파라오에게 탈탈 털려서 왕궁까지 유린당하고, 이후에도 여로보암의 이스라엘 왕국과 분쟁을 이어가는 등 외교적으로 무능함을 드러낸다. 하지만 정력은 정말 왕다워서 18명의 아내와 60명의 첩을 통해 28명의 아들과 60명의 딸을 낳았다. 많은 자식들 중 [[아비얌]]에게 재위를 넘겨주었으며 결과적으로 이는 르호보암이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이었다. [[분류:성경/등장인물]] [[분류:이스라엘의 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