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프랑스 국왕(카페 왕조))] ||||<tablealign=center>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50px-Lehmann_-_Louis_VIII_of_France.jpg|width=300]] || || '''이름''' ||<(> 루이 8세 사자왕(Louis VIII le Lion) || || '''생몰년도''' ||<(> [[1187년]] [[9월 5일]] ~ [[1226년]] [[11월 8일]] (39세) || || '''재위기간''' ||<(> [[1223년]] [[7월 14일]] ~ 1226년 11월 8일 || || '''출생지''' ||<(> [[프랑스 왕국]] [[파리(프랑스)|파리]] || || '''사망지''' ||<(> 프랑스 왕국 상파뉴 || || '''배우자''' ||<(> 블랑슈 드 카스티야 || [목차] == 개요 == [[프랑스 왕국]]의 국왕이자 아르투아 백작. [[카페 왕조]] 8대 왕으로 필리프 2세와 이사벨 드 에노의 아들. 1200년 블랑슈 드 카스티야와 결혼했으며, [[잉글랜드 왕국]]의 [[존 왕]]은 처숙부였다. 프랑스 국왕에 즉위한 뒤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던 알비즈와 십자군을 통해 남부 프랑스의 광대한 왕령을 가지게 되었지만 파리로 돌아오던 도중에 이질에 걸려 병사하였다. 비록 요절했지만, 왕자 시절부터 사망하기 직전까지 무수한 전공을 세웠다. 아버지 [[필리프 2세]]를 대신해 군대를 지휘하는 경우가 잦았고, 결정적으로 잉글랜드 정복전에서는 [[존 왕]]을 성공적으로 격파해, 부빈 전투의 승리에 일조했다. 이처럼 재위기간 중 잉글랜드 왕위 계승을 위한 정복전쟁을 치렀는데, 이는 [[존 왕]]의 --지긋지긋한 통치에 질린-- 대립 제후들이 프랑스 왕 루이 8세에게 존을 대신해 잉글랜드를 다스려 달라 청원한 것에 따라 이뤄졌으며, 그의 왕비에게 잉글랜드 왕위에 대한 명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216년 잉글랜드로 원정을 떠나 성 바울 성당과 윈체스터 사원과 왕궁의 절반을 빼앗는 등 연승을 거뒀고, 삽시간에 잉글랜드 남부를 정복했다. 그러나 루이 8세의 본대가 후방의 도버 성을 공략하기 위해 공성을 치르는 동안, 프랑스파 귀족들이 링컨 전투에서 격파되고 바다에서도 패한데 이어, [[존 왕]]의 급사로 [[헨리 3세|어린 헨리]]가 즉위하자 잉글랜드 제후들이 태도를 돌변하여 그에게 철군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피는 못 속이는 법인지 헨리 3세 때도 잉글랜드 제후들은 불평이 많았다.-- 어쩔 수 없이 1217년 램버스 조약을 맺고 잉글랜드 왕위를 포기했다. 다만, 그의 본대는 패한 적이 없는데, '''[[사자왕]]'''이라는 칭호는 이때의 군공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때의 도버 공성전은 [[BBC]] 다큐멘터리 [[배틀 캐슬(다큐멘터리)|배틀 캐슬]] Ep3에서 자세히 다룬 바 있다.] 그는 부왕 필리프 2세보다 가차없는 성품이고 전쟁터에선 잔인한 면모가 있었다고 한다. 카페-앙주 왕가가 루이 8세의 대에서 갈라져 나왔다. 유복자 샤를이 앙주와 멘의 영주가 되었고 이후 시칠리아 왕위까지 손에 넣으면서 그의 자손은 유럽의 유력한 왕가가 된 것. == 대중매체에서 == || [[파일:attachment/루이 8세/루이8세.png]] || || '''[[징기스칸 4]] 일러스트''' || [[코에이]] 역사시뮬레이션 게임 [[징기스칸 4]]에서 등장한다. 다만, [[필리프 2세|아버지]]는 물론이거니와 [[루이 9세|아들]]보다도 능력치가 안습하다. 정치 57, 전투 57, 지모 45. [각주] [[분류:프랑스 국왕]][[분류:카페 가문]][[분류:1187년 출생]][[분류:1226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