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서프랑크 국왕)] ||<tablealign=center> '''이름''' ||해외왕 루이(Louis IV, Outremer) || || '''생몰년도''' ||920년 9월 ~ 954년 9월 || || '''재위기간''' ||936년 ~ 954년 9월 || || '''아버지''' ||[[샤를 3세| 샤를 3세 단순왕 ]] || || '''어머니''' ||잉글랜드의 에아드기푸 || [목차] == 개요 == [[프랑스어]]: Louis IV (루이 4세)[* 이 시대의 프랑스는 루이를 Lodhuuig, Lodhwig, Looïs, Luis, Ludovic 등으로 읽었다.] [[라틴어]]: Ludovicus IV (루도비쿠스 4세) 루이 4세(Louis IV)는 936년 즉위해 954년 사망한 서프랑크 왕국의 국왕이었다. 태어난 후 아버지 [[샤를 3세]] 단순왕이 폐위되자 [[잉글랜드]]의 공주인 어머니 에아드기푸(Ēadgifu)는 루이를 데리고 잉글랜드로 달아났다. 이후 서프랑크 귀족들의 추대로 돌아왔기 때문에 해외왕 루이(오트로메르 루이, Louis the Outremer; 라틴어 : 루도비쿠스 트란스마리누스(Transmarinus)[* 바다 건너서 온. 이란 의미]라고 불린다. == 생애 == 920년 [[샤를 3세]] 단순왕과 [[잉글랜드]] [[웨식스 왕국]]의 왕 [[대 에드워드]]의 딸인 에아드기푸 사이에서 태어났다. 922년 아버지 샤를 3세가 네우스트리아 귀족들에 의해 폐위되고 [[로베르 1세]]의 사위인 [[라울(서프랑크)| 라울]]이 서프랑크 왕이 되자 어머니 에아드기푸는 루이를 데리고 잉글랜드로 망명했다. 936년 [[라울(서프랑크)| 라울]]이 사망하자 [[샤를 3세]]를 지지했던 서프랑크 로트링겐과 노르망디 귀족들에게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그해 6월 랭스 대성당에서 주교 아르탕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 대관식을 가졌다. [[샤를 3세]] 이후 카롤루스 왕조의 충실한 지지자였던 랭스 대주교는 이번에도 루이 4세를 충실히 지지했다. 하지만 당시 서프랑크는 [[로베르 1세]]의 아들인 파리 백작 위그 르 그랑(大위그: [[위그 카페]]의 아버지)이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특히 [[샤를 3세]] 단순왕에게 적대적인 네우스트리아의 귀족들은 대부분 대위그를 지지했다. 루이 4세는 위그 르 그랑을 제어하기 위해 [[독일 왕국| 동프랑크]]의 국왕 [[하인리히 1세]]와 결혼 동맹을 맺고자 했다. 이에 하인리히 1세의 딸이자 로트링겐 공작 기셀베르트의 미망인이었던 게르베르가와 결혼을 했다. 하지만 위그 르 그랑도 하인리히 1세의 딸 작센의 헤드비게와 결혼했다. [[독일 왕국| 동프랑크]]에서 하인리히 1세가 죽자 루이 4세는 자신의 아버지 [[샤를 3세]]가 공략했던 로트링겐을 되찾으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당시 [[독일 왕국| 동프랑크]] 국왕은 [[오토 1세]]였다. [[오토 1세]]는 괘씸한 루이 4세를 혼내기 위해 940년 [[위그 르 그랑]]과 베르망두아 백작 에르베르 2세가 루이 4세와 레온에서 전투를 벌일때 군대를 제공해 루이 4세를 대파하게 했다. 942년 11월 루이 4세는 [[오토 1세]]와 화친을 맺었다. 이는 [[오토 1세]]가 위그 르 그랑을 견제하는 심리를 이용한 것이었는데 화친을 맺은 루이 4세는 943년 에르베르 2세를 공격해 그를 사로잡고 교수형에 처했다. 에르베르 2세는 아버지 [[샤를 3세]]를 사로잡아 7년간 감금한 뒤 굶어죽게 한 불구대천지의 원수였다. 이어 945년에는 노르망디를 공격했는데 여기서는 대패하고 에르베르 가문에게 사로잡혀 위그 르 그랑의 포로가 되었다. 이때 루이 4세는 1년간 파리에 감금당했다. 그러자 루이 4세의 아내 게르베르가는 민첩하게 오빠 [[오토 1세]]에게 도움을 청했고 [[오토 1세]]는 대위그에게 압력을 넣어 루이 4세를 석방케 했다. 돌아온 루이 4세는 다시 위그 르 그랑을 공격해 946년 랭스를 되찾았으며 949년에는 레온을 수복했다. 위그 르 그랑과는 계속 반목했는데 [[오토 1세]]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루이 4세와 화해하지 않았던 위그 르 그랑은 왕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왕국 전역에서 파문을 당했다. 위그 르 그랑은 파문에도 굴복하지 않았지만 [[오토 1세]]가 지속적으로 루이 4세를 지지하고 그의 영향력을 키워주자 결국 951년 루이 4세와 화해하고 봉신이 되었다. 954년 루이 4세는 사냥을 나갔다가 낙마 사고로 사망했다. [[분류:서프랑크 국왕]] [[분류:920년 출생]] [[분류:954년 사망]] [[분류:카롤루스 가문]] [[분류:낙상사고로 죽은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