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보나파르트 가문]] [[분류:코르시카 출신 인물]] [[분류:나폴레옹 전쟁/군인]] [[분류:홀란트 국왕]] [[분류:1778년 출생]] [[분류:1846년 사망]] ||<-2><table align=center><tablewidth=500> [[파일:1257px-LouisBonaparte_Holland.jpg|width=100%]] || || '''이름'''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br](Louis Napoléon Bonaparte)|| || '''출생''' ||[[1778년]] [[9월 2일]][br][[프랑스 왕국]] [[코르시카]] [[아작시오]]|| || '''사망''' ||[[1846년]] [[7월 25일]] (67세)[br][[토스카나 대공국]] [[리보르노]]|| ||<|2> '''재위''' ||<#E7E7E7>[[홀란트 왕국]]의 왕|| ||[[1806년]] [[6월 5일]] ~ [[1810년]] [[7월 1일]]|| || '''배우자''' ||[[오르탕스 드 보아르네]] ,,(1802년 결혼 / 1810년 이혼),,|| || '''자녀''' ||나폴레옹 샤를, 루이 2세, [[나폴레옹 3세]]|| || '''아버지''' ||카를로 보나파르트|| || '''어머니''' ||레티차 라몰리노|| || '''형제''' ||[[호세 1세|조제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 1세]], 뤼시앵, 엘리자, 폴린, 카롤린, [[제롬 보나파르트|제롬]]|| [목차] == 개요 == [[나폴레옹 1세]]의 동생이자 [[나폴레옹 3세]]의 아버지. == 생애 == 나폴레옹이 가장 아낀 동생이었다. 형이 프랑스의 실권자가 된 후 [[홀란트 왕국]]의 왕을 지냈다. 나폴레옹이 낙하산으로 앉힌 수많은 친인척들이 하나같이 능력없고 부패했는데 그나마 그는 멀쩡한 인물로 네덜란드 시민들에게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나폴레옹 2세]] 탄생 전에는 나폴레옹이 루이의 아들들을 후계자로 삼으려 했을 만큼 총애했지만, 본인은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데다 부인 [[오르탕스 드 보아르네|오르탕스]]와의 사이도 좋지 못해 개인적으로 계속 불행한 삶을 살았다. 군사적 재능도 썩 훌륭하지 못했고 군주로서도 별 존재감이 없었다. 형이 몰락한 뒤에는 이름을 숨기고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를 오가며 살아갔다. 그래도 1840년에 프랑스로 귀국하여 형의 [[장례식]]을 보고 늘그막은 그럭저럭 평온하게 살다가 갔다. 여러 아들 중 막내아들이 바로 나중에 또다시 프랑스 황제에 오르는 샤를루이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즉 [[나폴레옹 3세]]이다. 살아있던 동안은 물론 최근까지도 [[나폴레옹 3세]]가 친자인지 여부가 논란이 되어왔다. 당대에는 [[오르탕스 드 보아르네|오르탕스]]와의 사이가 좋지 않다 보니 정적들로부터 [[나폴레옹 3세]]가 아내의 외도로 낳은 혼외자라는 소문에 계속 시달렸다. 이후 역사학계의 연구를 통해 이러한 설은 거의 근거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왔으나, 다시 2010년대 들어와서 [[나폴레옹 1세]]와 친족들 및 [[나폴레옹 3세]]의 아들 및 혼외자 후손들의 Y염색체 DNA 분석을 통해 형 [[나폴레옹 1세]]와 아들 [[나폴레옹 3세]]가 부계 쪽의 혈연 관계가 없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되면서 잠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분석에 이용된 DNA 시료가 불완전하고 다른 근거로 교차 입증할 수도 없어 과학계 및 역사학계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폴레옹 3세#s-6|해당 항목]]을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