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914년 출생]][[분류:1943년 사망]] [include(틀:2차 세계대전/전투기 에이스 116~139위)] [[파일:Rudolf Resch.jpg]] '''루돌프 레슈(Rudolf Resch : 1914년 4월 7일~1943년 7월 11일)''' == 소개 ==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 벌어진 [[스페인 내전]]에 [[나치 독일]]이 파견한 콘도르 군단 소속으로 실전을 경험한 [[베테랑]] '''루돌프 레슈'''는 [[작센]]주의 카멘츠(Kamenz)에서 태어났다. 그가 [[1934년]]에 자원 입대했을 때, [[헤르만 괴링]]은 비밀리에 공군을 육성하고 있었고 루돌프 레슈는 [[전투조종사]]가 아닌 [[수송기]] 파일럿으로 위장되어 훈련을 받았다. 스페인 내전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1938년]]에 파견된 콘도르 군단의 항공부대인 제88전투비행단(JGr 88) 소속으로 [[He 51]] 복엽 전투기를 몰았던 그는 [[1939년]] 6월에 고국으로 돌아와 스페인 검십자훈장을 수여받았다. 석달 후에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2차 대전이 발발했을 때 루돌프 레슈는 이미 휘하에 1개 비행중대를 거느리는 중위 계급의 초급 지휘관이었다. 개전 무렵의 그는 체르브스트의 비행학교에서 교관 임무를 수행하며 생도들을 가르치고 있었던 탓에, [[폴란드]]나 [[프랑스]] 침공 작전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그는 비행중대장 자격으로 [[영국 본토 항공전]]에 참가했지만, 작전 초기에 [[RAF]]의 [[스핏파이어]]에게 피격되어 중상을 입고 근 반년 가까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그가 자대로 복귀했을 때는 이미 부대는 [[동부전선]]으로 옮겨간 뒤였다. [[1941년]] 10월 17일까지 4개월도 안되는 사이에 루돌프 레슈 중위의 격추수는 20대까지 치솟아 있었고, 이 공로로 공군 명예컵을 수상했다. [[1942년]] 6월 12일의 출동에서 그가 탄 [[Bf 109]]F-4(Werkenummer 13385 "Gelbe 9")는 또다시 격추되어 부상을 입었다. 근 1개월 간 치료받은 그는 다시 복귀해 적기 사냥에 나섰고, 9월 6일까지 64대를 격추해 기사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1943년]] 2월까지 루돌프 레슈 [[대위]]의 스코어는 73대로 불어나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루돌프 레슈가 거둔 격추수는 93기로 그 모두가 [[독소전]]에서 활약하며 쌓아 올린 것이다. 제52전투항공단(JG 52) 제6비행단과 제51전투항공단 제IV비행단에 근무하면서 [[바르바로사 작전]]과 [[카프카스]] 전투 같은 굵직한 전투에서 이와 같은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지만, 이미 두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후였고 행운의 여신이 언제까지 그를 살려둘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루돌프 레슈 대위는 1943년 7월 11일에 [[쿠르스크 전투]]를 지원하기 위해 [[오룔]] 방면으로 출격했다. 이 임무에서 그가 탄 Fw 190A-5(Werkenummer 7264 "Schwarzer Doppelwinkel")은 저공에서 야크 전투기에게 격추되었고, 고도가 낮아 탈출하지 못한 루돌프 레슈는 그대로 전사했다. == 서훈 == *스페인 검십자훈장 *파일럿 기장 *공군 최전선 비행장 *2급/1급 [[철십자 훈장]] *공군 명예컵 (1941년 12월 20일) *[[독일 십자훈장|독일 황금십자장]] (1942년 7월 27일) *기사철십자 훈장 (1942년 9월 6일) [[분류:에이스 파일럿]][[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