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aaaaaa><tablebgcolor=#ffffff,#191919>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rgba(50%, 50%, 50%, 30%) 0%, transparent);" {{{+1 {{{#000000,#e5e5e5 ''' 독일의 前 축구선수 '''}}}}}}}}}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nke.png|width=100%]]}}} || ||<-2><height=40><colbgcolor=#eeeeee,#191919> {{{#000000,#e5e5e5 '''이름'''}}} || '''{{{+1 로베르트 엥케}}} [br] Robert Enke''' || ||<-2><height=40> {{{#000000,#e5e5e5 '''출생'''}}} ||[[1977년]] [[8월 24일]] / [br] {{{-1 [[동독]], [[튀링겐]] 주 [[예나]]}}} || ||<-2><height=40> {{{#000000,#e5e5e5 '''사망'''}}} ||[[2009년]] [[11월 10일]] (32세) / [br] {{{-1 [[독일]], [[니더작센]] 주 [[하노버]]}}} || ||<-2><height=40> {{{#000000,#e5e5e5 '''국적'''}}} ||[[독일]] [[파일:독일 국기.svg|width=28]] || ||<-2><height=40> {{{#000000,#e5e5e5 '''신체'''}}} ||186cmㅣ84kg || ||<-2><height=40> {{{#000000,#e5e5e5 '''직업'''}}} ||[[축구선수]] ([[골키퍼]]) || ||<width=15%><height=40> {{{#000000,#e5e5e5 ''' 소속 ''' }}} ||<width=15%><height=40><bgcolor=#eeeeee,#191919> {{{#000000,#e5e5e5 ''' 선수 ''' }}} ||BSG 예나파름 (1985 / ^^유스^^) [br] [[FC 카를 차이스 예나]] (1986~1995 / ^^유스^^) [br] [[FC 카를 차이스 예나]] (1995~1996) [br]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996~1999) [br] [[SL 벤피카]] (1999~2002) [br] [[FC 바르셀로나]] (2002~2004) [br] [[페네르바흐체 SK]] (2003, 임대) [br] [[CD 테네리페]] (2004, 임대) [br] '''[[하노버 96]]''' (2004~2009) || ||<-2><height=40> {{{#000000,#e5e5e5 '''국가대표'''}}} ||8경기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독일]] / 2007~2009)^^ || [목차] [clearfix] == 소개 == >'''그는 저와 함께한 첫 번째 골키퍼였습니다. 저는 그의 침착함과 동정심과 배우려는 자세와 프로다운 자세, 그리고 그의 사회에 대한 헌신과 기여 행위를 기억합니다. 저는 엔케가 리스본 길바닥에 버려진 강아지들을 자신의 집에 데려다 기른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과 경력에 있어 성공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비극적인 죽음에 저 역시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부디 평화로이 잠들기를 바랍니다.''' >---- >[[주제 무리뉴]], 엔케의 사망 소식을 전해듣고 나서 >'''우리의 행진에는 항상 엔케가 함께 한다.''' >---- >[[요아힘 뢰프]], 월드컵 호주전 이후 독일의 전 축구선수. 포지션은 골키퍼였다. 초기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으나 뒤늦게 그 진가를 인정받은 대기만성형 선수. 뛰어난 골키퍼가 유난히 많이 배출된 독일 내에서도 [[올리버 칸]], [[옌스 레만]]의 뒤를 잇는 차기 독일 국가대표 골키퍼 유망주로 불리고 있었으며 인품도 매우 훌륭했다고 한다. == 선수 경력 == 동독의 예나에서 태어나 [[FC 카를 차이스 예나]]에서 프로데뷔했고, 얼마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로 이적해 [[분데스리가]]를 경험하게 된다. 이후 21세 때 포르투갈 [[SL 벤피카]]로 이적, 본격적으로 경력을 쌓아갔다. 2002년도 [[FC 바르셀로나]] 이적 후에는 바르사의 제1 골키퍼로서 많은 경기에서 활약했으나, 이후 바르사의 또다른 골키퍼 발데스와 주전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복잡한 입장이 되었다.[* 당시 바르셀로나의 경우 한 선수가 지속적으로 골키퍼를 맡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돌아가면서 골키퍼를 보는 특이한 로테이션이 있었다.] 이 당시 약체팀들과의 경기에서 3실점을 기록, 스페인 언론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맞기에 이르렀고 그는 결국 주전경쟁에서 밀려 벤치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결국 이를 감당하지 못한 엔케는 다음해 [[페네르바흐체 SK]]로 옮겨갔지만 이적 후 첫경기에서 또 3실점을 기록하는 바람에 사실상 이름만 남은 선수로 전락했고, 2부 리그로 밀려나기에 이르렀다. 이 무렵 심한 좌절감과 대인기피증에 시달린 끝에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다. 이후 이런저런 악재를 이겨내고 다시 1부 리그로 복귀했다. 2004년 [[하노버 96]]으로 이적후 주전으로 활약하며 다시 일어서게 된다. 하지만 희소 심장질환을 앓고 있던 [[딸]] 라라가 두 살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난 뒤 딸을 잃은 슬픔으로 인해 우울증이 극심해졌다. 축구팬들은 엔케가 딸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아 흔들리는 게 아닌가 걱정했지만, 이런 팬들의 걱정을 불식시키듯 그는 뛰어난 경기력을 발휘했다. 그런 엔케를 본 구단주와 감독은 그를 높이 평가하게 되었고 드디어 2007년, 평소 엔케를 눈여겨보고 있었던 [[요아힘 뢰프]]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꿈에 그리던 국가대표 마크를 달게 되었다. '''그런데...''' === 사망 === [[파일:external/i1295.photobucket.com/Enkelara3.jpg|width=500]] >'''나는 이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가...''' >---- >[[미하엘 발락]], 엔케의 사망 소식을 전해듣고 나서 2009년 11월 10일, 엔케는 [[하노버]] 인근의 철로 건널목에서 달려오는 [[열차]]에 [[투신자살|몸을 던지며]] 자신의 생을 마감했다. 그동안 언론에는 엔케가 우울증을 극복했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사실 그는 지속적인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었다. 또한 딸을 잃은 뒤 [[입양]]해 온 딸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감[* 독일의 입양제한법 규정상 우울증 환자에게는 입양이 허용되지 않는다. 독일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입양을 할 때 양부모의 인적 사항에 있어서 꼼꼼히 따지도록 한다. 그리고 우울증을 비롯하여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다면 입양이 허가되기 어려운데, 이는 대한민국도 별 차이 없다.] 때문에 자신의 우울증 치료 사실을 철저히 숨겨왔다고 한다. == 사후 == 당시 엔케의 자살 소식이 알려지자 독일 전역은 큰 충격에 휘말렸다. 그가 생전에 뛰었던 하노버의 홈 구장인 [[HDI 아레나|AWD 아레나]]에서 열린 그의 장례식에는 팀 동료들뿐 아니라 수많은 축구팬들이 몰려와 그를 애도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8v6vT85WB3c&t=39s|장례식 영상]].[* 영상 속에 나오는 음악은 미국의 가수 리앤 라임스가 부른 The Rose(원곡은 벳 미들러)이다.] || [[파일:attachment/papakommt.jpg|width=360]] || || 라라 무덤에 남긴 마지막 글. || 훗날 엔케가 자살하기 바로 전날 딸의 [[무덤]]에 남긴 'Lara, papa kommt(라라야, 아빠가 간다)'라는 글도 함께 알려지면서 많은 축구팬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파일:external/sportbild.bild.de/trikot-auf-bank__14064341__MBQF-1258576789,templateId=renderScaled,property=Bild,height=349.jpg]] 이후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경기 중 독일 대표팀의 벤치에 선수번호 1번이 쓰여진 엔케의 유니폼이 놓여 있는 모습이 알려지면서[*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2009년 11월 10일에 열린 독일과 코트디부아르의 평가전 때도 20년지기 친구인 발락이 직접 엔케의 마지막 경기 유니폼을 가져와 벤치에 두었다.] 이 유니폼에 얽힌 사연도 함께 드러나게 되어 다시금 큰 관심을 모았다. [[하노버 96]]의 홈구장인 [[HDI 아레나]] 바로 앞에는 엔케의 이름을 붙인 길이 있다. [[2017년]] [[9월 22일]],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피소드/2017년#s-38|아버지의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로베르트 엔케가 자살한지 10년이 되는 해인 [[2019년]] [[11월]]엔 그와 관련된 [[다큐멘터리]]인 Robert Enke - Auch Helden Haben Depression (로베르트 엔케 - 영웅도 우울함을 갖고 있다)가 공개되었다. 그리고 2019년 11월 10일 엔케의 10주기에 치뤄진 [[분데스리가]] 11라운드 모든 경기에서 경기 시작전 [[https://sports.news.naver.com/wfootball/vod/index.nhn?category=bundesliga&tab=&listType=game&date=20191110&gameId=2019111062518571890&teamCode=&playerId=&keyword=&id=607756&page=1|추모행사]]가 진행되었다. 엔케 사망 이후 독일 국대에서는 [[레네 아들러]]를 2010 월드컵 예선에서 주전으로 발탁하였고, 아들러는 2008년 러시아전에서 데뷔를 시작으로 2010년 FIFA 월드컵의 주전 골키퍼로 명단에 올랐지만, 갈비뼈 골절 부상으로 남아공행에서 낙마하고 말았다. [[옌스 레만]]의 은퇴와 로베르트 엔케의 죽음으로 인해 마땅한 골키퍼가 없는 상황인데다가 아들러까지 부상으로 낙마해버리자, 어쩔 수 없이 NO.2에 있었던 '''[[마누엘 노이어]]'''에게 골문을 맡긴다. 이후 노이어는 '''독일을 대표하는 수문장으로 거듭나게 된다.''' [각주][[분류:1977년 출생]][[분류:독일의 축구선수]][[분류:FC 카를 차이스 예나/은퇴, 이적]][[분류: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은퇴, 이적]][[분류:SL 벤피카/은퇴, 이적]][[분류:FC 바르셀로나/은퇴, 이적]][[분류:페네르바흐체 SK/은퇴, 이적]][[분류:CD 테네리페/은퇴, 이적]][[분류:하노버 96/은퇴, 이적]][[분류:2009년 사망]][[분류:독일의 자살한 인물]][[분류:자살한 축구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