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만주의 역사/근현대)] ||<-2><tablealign=right> {{{+1 '''관동주'''}}}[br]'''Квантунская область''' [br] '''달니'''[br]'''Дальний''' || ||<-2> [[파일:러시아 국기.svg|width=120]] || ||<-2> 국기 || ||<-2> 1898 ~ 1905 || || 위치 || [[랴오둥 반도]][br][[다롄]] || || 정치체제 || [[전제군주제]][br][[군정청|군정체제]] || || 정부수반 || [[사령관]] → 행정관 →최고행정관 || || 언어 || [[러시아어]], [[관화|중국어(관화)]] || || 통화 || [[러시아 루블]] || || 성립 이전 || [[청나라]] || || 멸망 이후 || [[일본 제국]],,([[관동주]]),, || [목차] == 개요 == [[뤼순]]과 [[다롄]]에 있던 [[러시아 제국]]의 [[조차지]]이다. [* 당시 [[뤼순]]은 별개의 도시였다. 그러나 다롄이 성장하면서 1951년 통합되었다.] 당시 [[러시아인]]들은 이 조차지를 Дальний(달니) 또는 Порт-Артур(아르투르 항)으로 불렀으며 일부는 [[관동주]](Квантунская область)라고도 불렸다. 1895년 [[일본 제국]]이 [[시모노세키 조약]]에 따라 이곳을 잠시 지배한 바 있으나, 러시아 제국, [[프랑스 제3공화국]], [[독일 제국]]의 [[삼국 간섭]]에 의해 되돌려 주었다. 이후 만주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해졌다. 러시아는 만주에 철도를 놓을 수 있게 되었고, 1898년 3월 27일 여대조지조약(旅大租地条约, Русско-китайская конвенция)을 맺어 청나라로부터 뤼순과 다롄을 25년간 [[조차지|조차]]하게 되었다. 1897년, 청나라와 조차 조약을 맺기 이전에도 러시아는 이미 뤼순 일대에 12,500명의 [[러시아군]]을 주둔시키고 있었다. [[독일제국]]이 [[교주만]] 일대를 점령하자 러시아도 이에 견제하기 위해 뤼순과 다롄을 점령한 것. 조차 조약 이후 규모는 더욱 커져 35,000명이 되었다. 이곳은 러시아 [[극동]] 주둔군의 거점이 되었으며, [[러시아 해군|해군]] 기지도 설치되었다. 1900년 6월에는 [[의화단 운동]]이 일어났고, 러시아 소유의 동청철도가 청군과 [[의화단]]의 공격을 받았다. 이를 빌미로 러시아는 20만명의 대규모 군대를 만주에 파견해, 동년 11월 [[만주]] 전체를 실질적으로 군사점령했다. 만주 강점에 항의하는 [[중국인]]들은 체포되거나 사살당한다.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었던 일본의 [[뤼순감옥]]은 사실 러시아가 반러 중국인들을 수감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1902년에는 뤼순에 만주를 관할하는 극동총독부를 설치했으며, 15만명의 러시아군을 주둔시켰다. 이는 일본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일본이 각종 이권을 빼앗으며 호시탐탐 노리던 [[대한제국]]과 러시아가 국경을 완전히 맞대게 되었으며, 러시아는 한국까지 [[식민지]]나 [[보호국]]으로 만들 기세였다. 어쩔 수 없이 러시아는 일본을 비롯한 열강들의 위협에 의해 뤼순과 다롄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러시아군을 철군시키지만, 한국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지자 다시 철회하고 러시아군을 주둔시키는 등 러시아와 일본은 점점 대립하게 된다. 결국 1904년 일본 제국은 러시아 제국의 뤼순을 기습적으로 공격하면서 [[러일전쟁]]을 일으켰고, 이는 일본의 승리로 끝났다. 이후 1945년까지 이곳은 [[관동주]]로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일본의 [[중국 대륙]] 침략의 거점이 되었다. == 관련 문서 == * [[러시아 제국]] * [[관동주]] * [[만주/역사]] * [[뤼순]] * [[다롄]] [[분류:러시아 제국의 역사]][[분류:만주의 역사]][[분류:중국의 조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