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丁守中(정수중) / Ting, Shou-chung }}} [[파일:43117156_1836978546338048_667974526717394944_n.jpg|width=500]] * 생년월일: [[1954년]] [[9월 1일]] * 출신지: [[중화민국]] [[타이완성]] [[가오슝]]시 * 당적: [[중국 국민당]] * [[https://www.facebook.com/tingshouchung/|페이스북]] [목차] == 개요 == [[중화민국]]의 [[정치인]]. == 상세 == [[국립대만대학]] [[정치외교학과]]를 나왔다. [[1990년]]부터 [[중화민국 입법원]] 의원(한국의 [[국회의원]])을 [[2016년]]까지 지냈다. [[지역구]]는 [[타이베이]] 1구([[베이터우구]], [[스린구]]). [[2016년]] [[제9대 중화민국 입법위원 선거]]에서 해당 선거구에서 [[민주진보당]]한테 낙선하면서 국회의원직을 잃었다. 국회의원은 무려 6선을 했지만 그냥저냥한 중진 정치인급이지, 거물 [[정치인]]으로 보지는 않았다. [[중국 국민당]] 내에서도... 이 때문에 [[리덩후이]], [[마잉주]] [[정부]]에서도 [[내각]]에 입각한다든가 하는 일도 딱히 없었다. 그런데 [[2018년]], 딩서우중이 갑자기 급 거물 정치인이 되는데... == [[2018년 중화민국 지방공직인원 선거]] == [[2016년]] 낙선으로 직을 잃고 야인이 되자, 절치부심 끝에 [[중국 국민당]] 후보로 [[타이베이]] [[시장(공무원)|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다.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는 원래 [[커원저]] [[무소속]] 현 시장이 [[2014년]] [[롄잔]] 아들인 [[롄성원]]을 꺾고 큰 표차로 당선될 정도로 경쟁력이 있었다. [[중국 국민당]]은 선거 전망이 불투명해서 차라리 직접 출마를 안 하고 [[무소속]] 후보를 적당히 내서 지원할까도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딩서우중이 출마의사를 전달하고, 국민당에서는 단수[[공천]]을 해준다. 커원저와 격차가 20% 이상도 났는데, [[민주진보당]]이 커원저 시장을 지지하지 않고 [[야오원즈]]라는 독자 후보를 출마시키면서 상황이 변한다. 그리고 딩서우중 본인도 [[프로]] [[정치인]] 출신 답게 국민당 지원은 최소화한 채 개인적으로 선거를 준비했는데, 이게 먹혔다. 또한 여러차례 열린 [[TV]] [[토론]]에서도 딩서우중 후보는 오랜 정치경력이 쌓인 내공으로 [[커원저]]와 [[야오원즈]] 후보를 잘 견제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야오원즈]] 후보는 정치 경력이 짧고, [[커원저]] 현 시장은 [[의사]] 출신이라 말주변이 안 좋았다. 딩서우중은 천성이 정치인이고, 명성이 부족할 뿐 그동안 정치권에서 쌓은 경험이 헛되지 않았음을 TV 토론회에서 보여주었다.]. 이 때문에 조금씩 딩서우중의 지지율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래도 마지막 [[여론조사]]까지 커원저한테 5% 정도로 밀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파일:1451511.png]] [[2018년]] [[11월 24일]], 정작 [[2018년 중화민국 지방공직인원 선거]] [[개표]]를 시작하자 상황이 급변한다. [* 오른쪽 위 '北市'라 적힌 칸이 딩서우중 후보와 커원저 후보의 개표상황이다.] 그래도 커원저가 당선이겠지 생각했는데 막상 개표를 하니까 '''어라?''' 하기 시작한 것. 민진당 [[야오원즈]] 후보는 17%로 개표 초반에 나가떨어졌다. [[파일:D5ED98C2-FACE-4121-9242-EE117BC642C4.png]] 그러다가 아예 한때는 딩서우중 후보가 1위도 했다. [[파일:12561515.png]] 개표 막판에 다시 [[커원저]] 후보한테 밀리긴 했지만 41.05%(커원저) vs 40.82%(딩서우중)으로 3,000표차가 났다. [[파일:876939309816.jpg]] 그러자 딩서우중 후보는 선거 결과에 불복하고 [[https://www.cna.com.tw/news/firstnews/201811250046.aspx|재검표를 신청했다]]. 결국 일주일이 소요된 재검표에서도 결과는 커원저의 승리로 확인되었다. 비록 간발의 차로 패했지만, 타이베이 시장 선거를 계기로 딩서우중은 '''그저그런 중진 정치인에서 대만 전체의 주목을 얻게 되었다'''. 원래 타이베이에서 국민당이 후보도 못 낼 위기였는데 본인이 자원해서 출마하고, 여러 계기를 통해 지지율을 상승시켜 박빙의 대결을 만들어낸 것. 그리고 그는 [[중국 국민당]]의 새로운 신예로 떠오르게 되었다. --중고신인-- == [[2018년]] 선거 이후 == 2018년 지방선거에서의 선전에도 불구 [[2020년]] 1월 열린 [[제10대 중화민국 입법위원 선거]]에는 출마하지 못했다. 당내 경선에서 낙선했기 때문. 하지만 이 선거에서 국민당이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홍콩 민주화 운동]]의 영향을 받아 예상을 뛰어넘는 참패를 당하면서 차라리 출마를 하지 못한게 다행이 된 상황. [[2020년]] 대선 이후 딩서우중은 [[2022년]] [[타이베이]] 시장 선거 준비를 하고 있다. 대선 출마에만 골몰하는 [[커원저]] 타이베이 시장을 비판하기도 하였다.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조 바이든]]이 당선되자 바이든의 당선을 축하하면서, [[차이잉원]] 총통한테 바이든은 [[도널드 트럼프]]만큼 중국에 올인하지는 않을 것이고 바이든은 [[블라디미르 푸틴]]과 [[시진핑]]을 비슷한 비중으로 견제할텐데, 이렇게 되면 대만의 외교적 공간이 좁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2021년]] 들어서는 정치권에서 한 발짝 물러나서 대만의 관광 명소들을 소개하며 연사들을 만나는 활동을 하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tingshouchung/posts/3677687452267139|페이스북 링크]] [[2022년]]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 다시 도전할 생각은 있는 것 같으나 국민당에 대한 대만 여론이 썩 좋지 않아 고민하는 듯. == 선거 이력 == ||<tablealign=center><rowbgcolor=#020894> {{{#ffffff 연도}}} || {{{#ffffff 선거 종류}}} || {{{#ffffff 소속 정당}}} || {{{#ffffff 득표수 (득표율)}}} || {{{#ffffff 당선 여부}}} || {{{#ffffff 비고}}} || || 1989 || 입법위원선거 (타이베이 1선거구) || [[중국국민당]] || ||'''당선 (1위)''' || '''초선''' || || 1992 || 입법위원선거 (타이베이 1선거구) || [[중국국민당]] || ||'''당선 (1위)''' || '''재선''' || || 1995 || 입법위원선거 (타이베이 1선거구) || [[중국국민당]] || '''57,412 (9.53%)''' ||'''당선 (4위)''' || '''3선''' || || 2004 || 입법위원선거 (타이베이 1선거구) || [[중국국민당]] || '''66,156 (10.86%)''' ||'''당선 (1위)''' || '''4선''' || || 2008 || 입법위원선거 (타이베이 1선거구) || [[중국국민당]] || '''94,694 (59.82%)''' ||'''당선 (1위)''' || '''5선''' || || 2012 || 입법위원선거 (타이베이 1선거구) || [[중국국민당]] || '''112,571 (55.65%)''' ||'''당선 (1위)''' || '''6선''' || || 2016 || 입법위원선거 (타이베이 1선거구) || [[중국국민당]] || 82,649 (43.77%) || 낙선 (2위) || || || 2018 || [[2018년 중화민국 지방공직인원 선거|지방공직인원 선거]] (타이베이시장) || [[중국국민당]] || 577,566 (40.82%) ||낙선 (2위) || || [[분류:대만의 정치인]] [[분류:1954년 출생]] [[분류:가오슝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