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위나라, [[서진]]의 인물 == 杜友 생몰년도 미상 === 생애 ===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위나라, [[서진]]의 인물. 자는 계자(季子). 255년에 시어사를 지내다가 [[관구검]]이 수춘에서 군사를 일으키다가 [[사마소#s-1|사마소]]가 보낸 군대에게 격파당한 후에 주살당하고 그의 일당 7백여 명이 넘겨지면서 주동자 10명만 죽이고 나머지는 풀어주도록 상주했다. 263년에 사마소가 촉나라를 멸망시킨 공으로 진왕이 되면서 [[가충]]이 새로 법을 제정했는데, 이 때 두우는 정위를 지내면서 여러 대신들과 함께 법 제정에 대한 작업에 참여했다. 위나라가 멸망하고 서진에서 상서를 지내다가 [[임개]]가 [[가충]] 일파에게 억제된 것을 보고 유량과 함께 그 진상을 상주하려다가 결단하지 못해 면직되었다. 기주자사가 되어 277년 가을 7월에는 기주자사를 지내고 있으면서 세금을 내지 않고 도망간 자들을 불러모았다고 [[사마목]]을 탄핵했고 이후에는 하남윤을 지냈다. === 창작물에서 === [[삼국전투기]]에서 등장해 관구검의 동조자들이 관구검이 가자는데 무슨 힘이 있어서 거절하냐면서 우는 모습을 보이자 이 사람들을 사면해줄 것을 바란다고 하면서 이 사람들은 끌려나온 것 뿐이라고 했다. == [[당나라]]의 인물 == [include(틀:구당서)] [include(틀:신당서)] 杜佑 735년 ~ 812년 당나라의 정치가. 자는 군경(君卿). 장안에서 유력한 귀족 가문의 자제로 태어났다. 일찍부터 여러 관직을 역임한 후, 덕종, 순종, 헌종 3대에 걸쳐 재상을 역임했다. 안록산의 난 이후 백성들을 안정시키는 것을 정치의 목표로 생각했다. 학술적으로도 두우는 당대에 [[사마천]] 이후 제일가는 역사가로 인정받았다. [[통전]]을 저술하였는데, 상고로부터 당 현종시기까지의 제도사(制度史)를 자세히 서술하였다. 역대 정사뿐 아니라 기전, 잡사, 경자(經子), 당대의 법령, 개원례등을 참고하여, 식화(食貨, 경제.)·선거(選擧:관리의 등용)·직관(職官)·예(禮)·악(樂)·병(兵)·형(刑)·주군(州郡)·변방(邊防)의 9부분으로 나누어 실었다. 이로서 당대의 제도 등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저서로 자리매김하였다. 이 외에도 통전의 요결을 정리한 것으로 보이는 이도요결 등의 저서가 있다. 경행기를 지은 [[두환]]의 혈족이다. 그의 손자로 당나라의 시인 [[두목]]이 있다. [[분류:동명이인/ㄷ]][[분류:위나라의 인물]][[분류:서진의 인물]][[분류:수당시대/인물]][[분류:생년 미상]][[분류:몰년 미상]][[분류:735년 출생]][[분류:812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