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흉노 선우)] ||<-3><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4a593b><tablebgcolor=#4a593b>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4A593B 0%, #4A593B 20%, #4A593B 80%, #4A593B)" {{{#ece5b6 '''{{{+1 초대 흉노 선우[br]두만선우[br]頭曼單于}}}'''}}}}}} || ||<-2> '''[[성씨|{{{#ece5b6 성}}}]]''' ||<bgcolor=#ffffff> 난제^^(攣鞮)^^ || ||<-2> '''[[휘|{{{#ece5b6 휘}}}]]''' ||<bgcolor=#ffffff> 두만^^(頭曼)^^ || || '''{{{#ece5b6 생몰 기간}}}''' || {{{#ece5b6 음력}}} ||<bgcolor=#ffffff> 기원전 ?년 ~ 기원전 209년 || ||<-2> '''{{{#ece5b6 재위 기간}}}''' ||<bgcolor=#ffffff> 기원전 ?년 ~ 기원전 209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흉노]]의 1대 [[선우]].[* 정확히는 조나라 명장 [[이목]]에 의해 흉노 군사가 대패할 때, 흉노 선우가 언급되긴 하지만 인명이 알려지지 않았다.] 재위 기간은 최소 기원전 220년대[* 두만은 진나라와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자 북쪽으로 옮겨 살았다. 그리고 '''10여 년''' 후에 [[몽염]]이 [[사구정변]]으로 죽고 제후들이 진나라에 반기를 들자 중국 대륙이 혼란에 빠져, 진나라가 변경을 지키기 위해 보냈던 죄수들로 조직된 군대는 모두 흩어지고 말았다.-<사기> 흉노열전- 몽염의 사망 시기가 기원전 209년인 점을 감안하면 최소 10여년 전부터 선우로 있었다고 하니 BC 220년대에 활동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 기원전 209년 (아들인 [[묵특선우]]의 화살에 의해 시해되었다. '두만'(Tumen)은 튀르크어로 '만인의 우두머리'를 뜻하며, 또다른 호칭으로 '''탱리고도(撐犁孤塗) 선우'''로도 불리는데 몽골식으로는 '''[[텡그리]] 쿠투'''라고 부르며, 이는 '''[[천자|하늘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 생애 == [[묵돌]]의 아버지로 여러 부족을 통합하고 [[오르도스]] 지방을 장악했다가 한때 [[진(통일왕조)]](秦)의 명장인 [[몽염]]의 공격을 받아 북쪽으로 쫒겨났지만 [[시황제]] 사후 진나라가 혼란해지고 [[사구정변]]으로 몽염이 자결하자 오르도스 지방을 회복하고 황하 이남까지 흉노의 활동 반경을 확장시켰다. 묵돌을 좌도기왕(좌현왕)으로 임명하여 사실상 후계자로 두었으나, 그가 총애하는 [[연지]](閼氏)에게서 낳은 막내 아들을 후계자로 삼고 묵돌을 폐위하기 위해 그를 [[월지]]에 볼모로 보냈다. 그 후 그곳을 기습하여 월지가 묵돌을 죽이도록 손을 쓴다. 하지만 묵돌이 탈출하자 그 용기를 가상히 여겨 10,000여 기를 이끌게 하면서 기병 장군으로 임명했으나 이후에 묵돌과 함께 사냥을 나섰다가 묵돌의 명적(鳴鏑)[* 쏘면 소리가 나는 화살]을 이용한 계략으로 묵돌과 그 부하들의 화살에 맞아 시해되었다. 여담으로 두만이 타고 다니던 말은 [[동호]]의 요구로 보내졌다고 한다. [각주] [[분류:선우]][[분류:기원전 209년 사망]][[분류:화살에 죽은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