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align=center><tablewidth=100%><:><#64927a>'''[[숭선군|{{{#FAFAD2 숭선군파의 역대 종주}}}]]''' || ||<width=30%><:> 1대 [[숭선군 이징]] ||<:> {{{+1 →}}} ||||<width=30%><#64927a><:>'''{{{#FAFAD2 2대 동평군 이항}}}''' || {{{+1 →}}} ||<width=30%><:> 3대 반양도정 이소 || ||<-3><tablealign=right><table width=400><tablebordercolor=#94153E><bgcolor=#94153E> {{{#gold '''조선 인조의 손자'''[br]{{{+1 '''동평군[br] 東平君'''}}}}}} || ||<-2><width=30%><#94153E> '''[[군호|{{{#gold 군호}}}]]''' ||<(> 동평군(東平君)[* 작호명은 생모의 본관지인 [[황해도]] [[평산군|평산]]의 별호인 동양(東陽)에서 유래했다.]|| ||||<:><#94153E> '''[[본관|{{{#gold 본관}}}]]''' ||<(> [[전주 이씨|전주]](全州) || ||||<:><#94153E> '''[[이름|{{{#gold 이름}}}]]''' ||<(> 항(杭) || ||||<:><#94153E> '''[[자(이름)|{{{#gold 자}}}]]''' ||<(> 제보(濟甫) || ||||<:><#94153E> '''{{{#gold 생부}}}''' ||<(> [[숭선군]] || ||||<:><#94153E> '''{{{#gold 생모}}}''' ||<(> 영풍군부인 [[평산 신씨]](平山 申氏) || ||||<:><#94153E> '''{{{#gold 부인}}}''' ||<(> 금성군부인 나주 박씨 (羅州 朴氏) || ||||<:><#94153E> '''{{{#gold 자녀}}}''' ||<(> 2남 1녀 || ||<|2><:><#94153E> '''{{{#gold 생몰[br]기간}}}''' ||<:><#94153E> '''[[음력|{{{#gold 음력}}}]]''' ||[[1660년]] [[4월 8일]] ~ [[1701년]] [[11월 8일]] || ||<:><#94153E> '''[[태양력|{{{#gold 양력}}}]]''' ||[[1660년]] [[5월 16일]] ~ [[1701년]] [[12월 7일]] || [목차] [clearfix] == 개요 == [[조선]]의 왕족. [[인조]]의 서자들 중 하나인 [[숭선군]]과 부인 신씨[* [[장렬왕후]] 조씨의 조카딸.]사이의 2남 4녀 중 [[장남]]이다. 동생은 동성도정 이강(東城都正 李棡)인데, 매우 어린 나이에 [[요절]]하여 사실상 동평군이 [[독자]]였다. == 생애 == [[1660년]](현종 1년) [[4월 8일]][* 양력 [[5월 16일]]] [[숭선군]]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당시 왕이던 [[현종(조선)|현종]]의 [[사촌]]동생이었지만 나이 차이는 아버지와 아들뻘에 가까웠으며[* 이는 동평군의 아버지 [[숭선군]]이 [[인조]]의 [[늦둥이]]라서 그런 것이다.] 당조카인 [[숙종(조선)|숙종]]보다는 고작 1살 위였다.[* 특히 숙종의 연년생 누나인 명선공주와 동갑이었다.] 첫 작호는 동평정(東平正)이었고 나중에 동평군으로 승격했다. [[1680년]](숙종 6년)에 현록대부 보사원종공신 1등이 되었다. 27세 때인 [[1687년]](숙종 13년)에는 [[숙종(조선)]]의 명으로 오늘날의 [[국립중앙의료원]]격인 [[혜민서]] 제조(惠民署提調)로 임명받아 가난한 백성을 구제하는 사업을 도맡았다. 이 때 [[박세채]]를 비롯한 조정 신하들이 [[낙하산|규정에 없는 일]]이라며 동평군을 파직할 것을 간했다. 그러나 숙종은 [[당숙]]인 동평군을 조금 후하게 대해줘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분노했고, 오히려 박세채의 관직을 삭탈했다. 동평군에 대한 [[숙종(조선)|숙종]]의 신임은 계속 두터워졌다. [[1689년]]부터는 동지사의 정사(正使), 사은사(謝恩使)의 정사로 임명받아 [[청나라]]에 세 차례나 다녀오는 등 [[사신]]으로서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외교]]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당대 뿐 아니라 조선 역사 전체를 통틀어서도 동평군처럼 정치적, 외교적으로 큰 업무를 맡은 왕실 종친은 별로 없었다. 현대에도 특정 기관의 기관장으로 임명되거나 특정 국가의 [[특사]]로 다녀오는 등의 임무는 주로 [[대한민국 대통령]]의 최측근이 맡을 정도이니 동평군에 대한 숙종의 신임은 상당했던 듯 하다. 그러나 [[숙종(조선)|숙종]]의 신임과는 별개로 다른 신하들에게는 끊임없는 투기와 모함을 받았다. 이를테면 [[1690년]](숙종 16년) 아버지 [[숭선군]]이 항년 52세로 사망하면서 [[유언]]으로 [[한성부|도성]]과 멀리 떨어진 [[공주시|공주]]에 묻어 달라고 했는데, 묘역 작업을 하던 중 평소 숙종이 동평군을 편애하는 것을 언짢아하던 조정 대신들이 이기양이란 사람을 시켜 동평군이 주변 가옥 수백 호를 철거하고 아버지 묘를 옮기는 행패를 부린다는 터무니 없는 [[상소]]를 하여 작업을 멈추는 일이 있었다. 이에 동평군은 [[신문고]]를 울려 숙종에게 이 일을 호소했고, 숙종은 경조[* 京兆. [[서울]]과 서울의 행정을 담당한 [[한성부]]의 별칭.]에 명하여 낭관[* 郞官. 각 관아의 실무책임자인 정랑과 좌랑을 통틀어 이르는 말.]들에게 잠입수사를 시켰다. 그 결과 이기양의 상소문 내용이 모두 거짓인 게 드러났고, 이기양을 비롯한 연루자들은 모두 체포당해 [[귀양]]갔으며 숭선군 묘지 일대 지역은 숭선군 가문이 [[하사]]받았다. == 역모 모함과 죽음 == 동평군은 1680년대 초 출궁했던 [[희빈 장씨]]가 어머니인 영풍군부인 신씨에게 의탁하면서부터 희빈 장씨와 그 오빠 [[장희재]]와 접촉하면서 친분을 다졌다. 그러던 와중 재입궁한 희빈 장씨는 아들 [[경종(조선)|경종]]을 낳고서는 급기야 [[왕비]]가 된다. 그러나 [[인현왕후]]가 다시 입궁하면서 중전 장씨는 다시 [[후궁]]으로 강등당했고, [[갑술환국]] 등의 여파와 인현왕후 사망 관련 논란으로 희빈 장씨는 결국 [[사약]]을 받았다. 그리고 장희재의 본처 김작은아기의 폭로로 인해 동평군이 '세자의 모후가 마땅히 중전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장희재를 통해 희빈 장씨에게 전한 것이 들통났다. 장희재와 동평군은 유배를 갔으며, 이윽고 장희재는 [[참수]]당했고 동평군은 왕족인 점을 고려해 [[1701년]] [[11월 8일]] [[사사]]당했다. 항년 42세. >'''나는 원통함을 안고 땅속에 들어가기는 하지만 황천과 일월이 나의 무죄함을 비추어 줄 것이며 후세에 군자가 있으면 이것을 알 것이다.''' >---- >동평군의 유언 == 복권 == [[1864년]](고종 1년) [[7월 10일]]에 [[고종(대한제국)|고종]]이 그의 신원을 복권시켰다. == 매체에서 == [[숙종(조선)|숙종]]의 [[당숙]]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함에서인지, 역대 [[장희빈]] 사극에 등장하는 동평군은 주로 숙종 역 배우들보다 나이가 많은 중견 배우들이 캐스팅되었는데 이는 [[고증오류]]이다. 비슷한 경우로, [[인현왕후]]의 계모인 풍창부부인 조씨는 실제 장희빈과 동갑인 1659년생으로, 의붓딸인 [[인현왕후]]와 고작 8세 차이밖에 나지 않음에도 나이 지긋한 배우들이 연기했었다. 그나마 2013년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는 젊은 또래 배우들인 [[유아인]]과 [[이상엽]]이 캐스팅되어, 나이차가 별로 나지않는 당숙과 당조카라는 외모 고증이 맞게 나왔다. * 임정하 - 1988년 [[MBC]] 《[[조선왕조 오백년|조선왕조 오백년 - 인현왕후]]》 * [[최상훈]] - 1995년 [[SBS]] 《[[장희빈(1995년 드라마)|장희빈]]》 * [[유인촌]] - 2002년 ~ 2003년 [[KBS]] 《[[장희빈(2002년 드라마)|장희빈]]》 * [[이상엽]](아역 : [[곽동연]]) - 2013년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 [[분류:조선의 왕자군]][[분류:전주 이씨 숭선군파]][[분류:조선의 사형수]][[분류:독살된 인물]][[분류:1660년 출생]] [[분류:1701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