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유사한 이름을 가진 이 정당의 후신, rd1=대한독립촉성국민회)] ||<-5><tablealign=center><tablewidth=500px><:><width=300px><tablebgcolor=#FFF,#000>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70C8, #0070C8)" [[대한민국 보수정당|{{{#FFF '''대한민국의 보수정당'''}}}]]}}}|| ||<width=30%><:><bgcolor=#0000ff>{{{#FFF '''독립촉성중앙협의회'''}}}||<|2><:>{{{+1 →}}}||<width=30%><|2><:>''[[대한독립촉성국민회]]''||<|2><:>{{{+1 →}}}||<width=30%><|2><:>소멸|| ||<width=30%><:>''[[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 [목차] == 개요 == 1945년 10월 23일 [[이승만]]의 주도로 조선호텔에서 여러 정당 대표 200명이 참석한 가운데 결성된 정치단체. 약칭 독촉. 이승만이 혼란스런 정국의 통합을 위해 좌우통합 조직을 생각하고 만들었다. 65개 단체 대표들이 참석했으며 [[박헌영]]의 [[조선공산당]]도 그 중 하나였다. 이승만은 10월 31일에 돈암장에서 박헌영을 만나 장장 4시간에 걸친 대화를 나눈 끝에 박헌영의 독촉 참여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갈등 끝에 11월 16일 [[박헌영]]의 조선공산당은 독촉에서 탈퇴했다. 그 결과 독촉의 좌우 대통합 이미지는 타격을 입었고, 조선공산당을 비롯한 좌익들도 사람들에게 분열세력이라는 인식이 생김으로써 정국의 주도권이 우익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1945년 11월 2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성원들의 1차 서울 귀환을 계기로 중앙집행위원회 구성을 시작했는데 11월 28일부터 시도된 중앙집행위원회 구성에서 갈등을 드러냈다. [[여운형]]은 위원 7명 중 5명이 [[한국민주당]]의 당원이라면서 퇴장했다. 이승만은 독촉을 중심으로 임시정부 세력도 흡수하려고 했으나 임시정부 세력들이 이에 반발하였고 이들은 독자적인 조직을 만들려고 했다. 좌·우익을 망라하여 통합 조직을 이룬다는 처음 계획에는 실패했지만 최고지도자로서 [[이승만]]이 부각되는 성과를 거뒀다. 이후 1946년 2월 8일 [[김구]]의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와 통합하여 [[대한독립촉성국민회]]가 되었다. == 관련 문서 == * [[대한독립촉성국민회]] *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 == 둘러보기 == [include(틀:한국의 정부수립 이전 정당)] [[분류:대한민국의 정치]][[분류:미군정]][[분류:정치 조직 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