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에도 막부/역대 쇼군)] ||<-2><tablealign=right><tablewidth=450><tablebordercolor=#fac117><tablebgcolor=#fff,#1f202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000 0%,#392f31 30%, #392f31 70%, #000)" '''[[파일:토쿠가와 가문 문장.png|height=20]] {{{#fac117 [[에도 막부|{{{#fac117 에도 막부 10대 정이대장군}}}]][br]{{{+1 德川家治}}}[br]도쿠가와 이에하루}}}'''}}} || ||<-2>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65px-Tokugawa_Ieharu.jpg|width=400]] || ||<bgcolor=#392f31> '''{{{#fac117 생몰년도}}}''' ||<(> [[1737년]] [[6월 20일]] ~ [[1786년]] [[9월 17일]](49세) || ||<bgcolor=#392f31> '''{{{#fac117 신장}}}''' ||<(> 153.5cm || ||<bgcolor=#392f31> '''{{{#fac117 재위기간}}}''' ||<(> 1760년 ~ 1786년(26년) || [clearfix] [[일본]] [[에도 막부]]의 제10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시게]]의 아들로 일찌기 영특한 재능을 보였다. [[도쿠가와 요시무네|할아버지]]가 아버지를 후계자로 정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건륭제]]도 영특해서 [[강희제|할아버지]]가 [[옹정제|아버지]]를 후계자로 정해놓았다.~~ 1760년 죽음이 임박한 아버지로부터 쇼군 직을 물려받았다. [[조선 통신사]]를 [[에도]]에서 영접한 마지막 쇼군이다. [[다누마 오키쓰구]]를 로주로 임명하였다. 총명하였으나 그의 치세는 그렇게 훌륭하지 못했으니, '''[[청나라]]에는 [[허션]]이 있고 [[조선]]에는 [[홍국영]]이 있었다면 [[에도 막부]]에는 다누마[* 로쥬 다누마 오키츠구와 그 아들 오키토모를 이르는 말. 다만 그의 시대에 이뤄진 중상주의 정책은 금권정치라며 당대에 까인 데에 비해 현대에 와서는 다소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으며, 또한 다누마 집권기의 정책을 백지화시킨 '간세이 개혁'(寛政の改革)도 되려 사람들을 더 피로하게 만들었다.]가 있었다.''' 정실부인은 히가시야마 [[천황]]의 손녀 토모코였으나(그러니까 [[간인노미야]] 출신이다.) 아들이 없었고 측실 소생의 아들 도쿠가와 이에모토가 있었으나 18세로 요절해 다음 쇼군직은 조카 [[도쿠가와 이에나리]]에게 넘어갔다. 그의 재임 기간은 [[조선]] [[영조]] 재위 말기, [[정조(조선)|정조]] 재위 전반과 일치한다. [[분류:에도 막부 쇼군]][[분류:1737년 출생]][[분류:1786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