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www.japanfocus.org/445-1.jpg]]|| ||<:>'''생년월일'''||<:>[[1939년]] [[5월 20일]]|| ||<:>'''사망'''||<:>[[2013년]] [[2월 13일]] (향년 73세)[* 사인은 간질성 폐렴.]|| [목차] [ruby(東條由布子, ruby=とじょう ゆうこ)] == 개요 == [[경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도조 히데키의 장남)가 눈이 나쁘다는 이유로 전쟁터로 가는 대신 [[만주]]의 풍만발전소로 가면서 [[서울]]에서 태어나게 되었다.] 본명은 이와나미 요시에(岩浪淑枝). [[일본]]의 [[전범]] 중 하나인 [[도조 히데키]]의 손녀이다. 생김새도 [[나름]]대로 조부를 닮았다. [[하인리히 힘러]]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딸 [[구드룬 부르비츠]]와는 달리 도조 히데키에 대해 인간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얼마 없지만[* [[도조 히데키]]의 사형 집행 당시에는 9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범을 열심히 미화하는 데 앞장서며 살았다. "[[아돌프 히틀러]]도 조국을 사랑한 [[독재자]]였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홀로코스트|"히틀러는 유대인을 학살했다"]]고 답변했다. 즉, "[[히틀러]]는 [[유대인]]도 죽이고 [[인종청소]] 등 별 쓰레기 짓을 했지만, 우리 조부님은 자상하시고 애국적이신 분"이라는 뜻으로 비춰진다. 과거 세탁에 앞장서는 일본 우파들한테도 무시당했던 것을 보면, [[반어법|얼마나 이 분이 대단한 말씀을 한 건지]] 잘 알 수 있다. [[도조 히데키]]의 나머지 자손들, 즉 그녀의 가족과 친척들조차 이런 행동을 비웃고 조롱했다고 한다. == 언론 == [[한겨레신문]]의 인터뷰에 따르면, 인상 자체는 전범의 손녀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게 부드럽다고 한다.[[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20262.html|#]] 이게 특별할 건 없는 게, 원래 악인들 중에서도 생각보다 인상이 부드러운 사람은 꽤 있는 편이다. [[아돌프 히틀러]]만 해도 특유의 콧수염만 빼고 보면 평범한 [[독일인]] 아재처럼 생겼고, [[유영철]]도 희대의 살인마답지않게 훤칠한 미남 얼굴이다. 일단, 인터뷰 내용에 따르면 도조의 손녀라는 이유만으로 가족이 폭행을 당하기도 하고 사회적 불이익도 받은 등, 전후 인생을 [[나름]]대로 힘들게 살아온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일본]]이 전범국가라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니 이 인터뷰를 곧이곧대로 믿기 힘들다고 볼 수도 있다. [[일본의 피해자 행세|일본이 2차 대전 때 저지른 죄는 일언반구도 없고 그로 인해 입은 피해만 앵무새처럼 조잘대던 사람]]이니, 본인 인생에 대해 말해 달라는 질문에도 자기가 힘들었던 일들만 강조해서 인터뷰에서 언급했다고 볼 수도 있다. == 선거 == 2007년에는 참의원 선거에 나가기도 했는데 낙선되었다.[[http://blog.daum.net/googood1/11733760|#]] == 숭배 == [[천황]]에 대해서는 여느 일본 극우들과 마찬가지로 극도의 숭배를 보인 바 있다. "천황은 일본의 '상징' 정도가 아니라 '근간'이다"라고 우기는데, 이는 현행 [[일본국 헌법]] 제1조에도 어긋나는 주장이다. 그러나 도조 유코가 숭배하는 '폐하' 는 어디까지 [[쇼와 덴노]]이며, 그의 큰아들이자 현재 [[태상황|상황]][* 2019년 5월 1일 [[아키히토]]의 큰아들 [[나루히토]]가 일본의 새 천황으로 즉위하였다.]인 후임 천황 [[아키히토]]는 아예 '황태자'로 격하하여 부르면서 그의 행보에는 [[http://m.media.daum.net/m/media/world/newsview/20050822152408888|나쁘게 생각했다]]. 그런데 일본의 상징 천황을 규정한 현행 [[일본국 헌법]]은, 바로 도조 유코가 숭배해 마지않는 쇼와가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쇼와는 전후에 [[도조 히데키]] 총리의 개전을 허가했던 것에 크게 후회했으며,[* 심지어 쇼와는 평화주의자에 반전주의자였던 친동생 [[노부히토]]와 [[다카히토]]에게도 비판을 받았다. 특히 [[노부히토]]의 경우 그가 전쟁을 개전 승인한 일에 대해 형을 비판을 하면 할수록 쇼와 본인도 반박조차 못했을 정도였다.] [[야스쿠니 신사]]에 A급 [[전범]]들이 합사되자 매우 불쾌해 하며 1989년 노환으로 사망할 때까지 야스쿠니에 두 번 다신 찾아가지 않았을 정도로, 도조에 대한 원망감과 악감정이 엄청났다. 참고로 도조는 [[야스쿠니 신사]]에 안치된 적이 없다. 자세한 내용은 [[순국7사묘]] 문서를 참고하자. [[파일:external/ncache.ilbe.com/0e6574a68f97ea24fb3bf2e25cf1e62c.jpg]] 한국 [[국립서울현충원]]에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눈물을 보였다. 전사자가 모셔지고 참배가 자유로운 [[국립서울현충원]]에 오자, 참배가 어렵고 하면 비난을 받는 [[야스쿠니 신사]]의 생각이 나서 "[[대한민국]]은 전사자에 대해 조의를 갖출 수 있는 것이 부럽다."라는 이유였던 것이다.[* [[히로히토]]는 어릴 때부터 [[야스쿠니 신사]]에 자주 참배하곤 했지만, 패망원흉인 전범들이 합사된 이후로 발길을 끊었다. 히로히토 본인부터 큰아들인 [[아키히토]]와 함께 [[도쿄 대공습]]때 죽을 뻔하다가 살아남아서 그렇다. 그 영향으로 아키히토는 단 한 번도 야스쿠니에 간 적이 없다. 장손인 [[나루히토]] 현 덴노도 자주 들은 게 있어서 [[자유민주당(일본)|자민당]]의 [[평화헌법]] 개정에 간접적으로 태클걸고 있다.] == 관련 문서 == * [[도조 히데키]] [[분류:일본 여성 작가]][[분류:일본의 정치인]][[분류:1939년 출생]][[분류:2013년 사망]][[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폐렴으로 죽은 인물]][[분류:작가 출신 정치인]][[분류:히키아게샤]][[분류:도조 히데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