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都切''' 기원전 17년경 ~ 기원후 1년 [[고구려]]의 [[태자]]. 제2대 [[유리명왕]]의 [[장남]]이자 [[해명태자]], [[대무신왕]]의 형제였다. == 상세 == 기원전 6년에 [[부여]]의 [[대소왕]]이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어 인질 교환을 요구한 기록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이때 유리명왕이 대소왕의 세력이 강한 것을 알고는 요구대로 태자 도절을 인질로 보내려 했으나 도절이 이를 거부하여 끝내 부여로 가지 않았다. 이에 분노한 대소왕이 같은 해 겨울에 5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를 공격했으나, 때마침 심한 폭설이 내리는 바람에 패배하고 돌아갔다. 이후 [[서기]] [[1년]] [[1월]]에 죽었는데~~기원전은 넘겼다~~, 사인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해명태자]]나 [[호동왕자]]가 그랬듯이 아버지와의 갈등 끝에,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책임을 지고 자살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도절이 일찍 죽는 바람에 아우였던 [[해명태자]]가 서기 4년에 태자가 되었으나, 해명태자 역시 유리명왕과의 갈등 끝에 자살하고 말았다. 결국 차기 왕좌는 해명의 아우였던 왕자 [[대무신왕|무휼]]이 이어받았다. [[유리명왕]]이 [[도절태자]] 사후 얼마 지나지 않아 [[졸본성]]에서 [[국내성]]으로 천도하고 [[해명태자]]를 태자로 책봉하는 것으로 보아, 모계가 졸본성 인근의 비류국 출신인 [[대무신왕]]과 동복형제일 가능성이 있다. [[분류:고구려의 왕태자]][[분류:1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