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명 ||도병철(都炳喆) || || 생몰 ||[[1903년]] [[1월 20일]] ~ [[1945년]] [[8월 7일]] || || [[출생지]]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현 덕산리 || || 사망지 ||낙동강 철교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도병철은 1903년 1월 20일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현 덕산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3.1 운동]] 당시 칠곡군에서 발생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지만 당시 16살이었기에 연소자라는 이유로 석방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수립되자 이를 돕기 위해 [[손병선]] 등과 함께 군자금 모집에 힘을 쏟았으며, 1927년 2월에 [[신간회]]가 결성되자 그해 4월에 동지들과 함께 신간회 칠곡군 지부를 조직했다. 그는 주로 민족교육운동에 관심을 갖고 야학 교사로서 무산자 아동의 수업료 면제와 민족교육을 실시했다. 그러던 1931년 신간회가 해소되자, 그는 옛 동지 [[손병선]]과 함께 군자금 모집 활동을 수행하다가 1938년에 발각되어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고, 1940년 6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구류 처분되었다. 이후 1945년 8월 일제가 [[부민관 폭탄의거 사건]]의 범인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체포된 그는 연행 도중이던 8월 7일에 낙동강 철교에서 투신자살했다. 향년 42세. 그로부터 8일 뒤에 [[8.15 광복]]이 도래한 점을 생각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죽음이라 하겠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도병철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칠곡군 출신 인물]][[분류:1903년 출생]][[분류:1945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