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한국사의 도독 == [[신라]]의 [[관직]]. 신라 조정에서 전국으로 파견되어 [[9주 5소경|9주]]를 다스리는 지방관이다. [[조선]]시대의 [[관찰사]], [[대한민국]]의 [[도지사]]+[[야전군사령관]] 정도에 대응한다. 상대(上代)에는 [[군주(동음이의어)#s-3|군주(軍主)]]였고, 실직주 군주 [[이사부]]나 신주 군주 [[김무력]] 등이 나타난다. 661년([[문무왕]] 1년)에 총관(総官)으로 명칭을 바꾸었고, 785년([[원성왕]] 1년)에 도독으로 명칭을 바꿨다. 단 원성왕 이전부터 도독 명칭이 나타나고 있어서 이미 문무왕 때 9주 장관은 도독이고, 총관은 임시직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원래 군주는 군권을 통솔하는 군사적 성격이 강했지만 [[삼국통일]] 이후 전쟁이 사라지면서 도독은 군사적 성격은 줄어들고 현대의 도지사처럼 단순한 행정 관리로 변화한다. 중앙에서 임명해 파견하는 임기제 공무원과 같았고 [[김헌창]]도 [[웅천주]]에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특별히 거기에 연고가 있는 건 아니었고 [[무진주]] 도독, [[청주시|청주]] 도독, 웅천주 도독으로 돌아가며 부임하다가 웅천주 도독일 때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다가 신라 말 [[후삼국시대]]가 되면서 나라가 혼란스러워지자 그 당시 재임하고 있던 몇몇 지역의 도독들은 자신의 근무지에서 성주(城主), 장군이라 자칭하고 [[호족]], [[군벌]]화되기도 했다.[* 이는 후삼국 호족 중 일부 유형이다. 장교 출신 [[견훤]], 산적세력 출신 [[양길]]과 [[궁예]], 대대로 지역 토착세력이던 [[왕건]]가문 등 다른 케이스도 많다.] == 중국사의 도독 == [[삼국시대(중국)]]에 설치된 관직. 본래 [[위문제]] 때 각 주(州)의 군사와 자사(刺史)의 관원을 통활하기 위해 설치한 관직으로 원래 시작은 군사령관이었지만 이후 지방 행정까지 다스리는 관직이 된다. 오나라에는 [[주유]], [[노숙]], [[여몽]], [[육손]] 등으로 이어지는 도독 라인이 유명하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서는 특정한 관명이 아니라 산관(散官)의 명칭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국지/관직|삼국지/관직]]의 무관 항목에서 찾아보길 바란다. [[당나라]] 때 [[절도사]]를 만들면서 권한이 축소됐지만 명칭 자체는 [[청나라]] 초기까지 남는다. 중국 바깥 [[백제]], [[일본]], [[베트남]] 등 이민족의 국왕에게도 형식상의 도독 칭호를 내리기도 했다. 충무공 [[이순신]]이 명나라로부터 이 도독 벼슬을 받았다는 추측이 있어서 논란이 있다. 이 부분은 [[이순신/논란]] 문서에 자세히 나와 있다. == 베트남의 도독 == 현대 베트남군에서 [[제독|해군 장성을 가리키는 단어로 쓰인다.]] == 관련 문서 == * [[웅진도독부]] * [[계림대도독부]] * [[관동도독부]] [[분류:신라의 관직]][[분류:중국의 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