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한국의 불교 종단)] 大韓佛敎普門宗 [[http://www.bomunsa.or.kr/|홈페이지]] (보문사)[* 보문사로 연결되는 이유는 후술.] [목차] == 개요 == [youtube(UUut6yBoGYE)] '''[[한국]] 유일의 [[비구니]] 종단.''' 한국의 29개 [[불교]] 종단의 하나로 [[부처님]]의 출세본회(出世本懷)를 봉체(奉體)하고 그 화신인 [[관세음보살]]의 구세원력을 성취하기 위한 전미개오(轉迷開悟)의 자리수행과 구세도생(救世度生)의 이타실천을 종지로 한다. 소의경전은 『[[묘법연화경]]』. 총본산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문사길에 위치한 [[보문사]]이다. 마하파자파티(大愛道)[* [[석가모니]]의 이모이자 길러주신 양어머니로, [[불교]] 최초의 여성 출가자.]를 종조, [[신라]] 시대의 비구니였다는 법류(法流)를 중흥조로 삼고 있는데, 실제적인 개조(開祖)이자 중흥조는 [[일제강점기]]에 보문사를 중창한 비구니 긍탄(亘坦 : 1885~1980)과 그 제자 보암당 은영(恩榮, 1910~1981)이었다. 긍탄의 제자 은영은 해방 직후인 [[1945년]]부터 보문사에 주석하고 있었다. [[1962년]] 3월 25일에 [[대한불교조계종]] 중심의 통합종단이 공식 출범하면서 통합종단을 놓고 비구측과 대처승측의 대립이 격화되어 불교계는 매우 혼란스러웠고, 긍탄이나 은영은 비구 혹은 대처승 어느 쪽에도 가담하는 것을 거부하며 [[여승]]의 중립적 권리와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방안을 강구, 1971년 재단법인 대한불교보문원을 설립하고 "비구니와 여성의 권익과 위상을 높여 사회발전에 공여한다"는 목적으로 [[1972년]] 3월 비구니들만으로 구성된 종단을 출범시킨다. 보암당 은영은 [[1971년]]에 오갈 데 없는 여신도들을 위한 양로원을 짓기도 했는데, 시자원(施慈院)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곳에서 [[순정효황후|왕조의 마지막 황후]]와 황후를 모셨던 마지막 [[궁녀]]들이 여생을 보냈다. 말 그대로 조선 왕실의 여인네들과 마지막까지 함께한 [[절(불교)|사찰]].[[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42446|#]] 다만 만년은 좋지 못했는데, 사세 확장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사찰 경내에 이런 저런 건물, 그 중에서도 특히 '''경주 [[석굴암]]을 그대로 본뜬 모형 석굴암을 사찰 안에 다시 짓느라''' 당시 [[조흥은행]]은 물론 신도나 일반인들로부터 10억 원이나 되는 빚을 졌고, 빚 독촉을 감당하지 못한 '''주지 은영과 종무 계월, 행자 공순 등 세 비구니가 음독자살'''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출처: [[경향신문]] 1981년 10월 9일] 이후 3차례에 걸친 변제로 빚은 어찌어찌 갚았다는 모양. 현재 보문종 종단 소속 사찰은 40여 개이며, 소속 [[비구니]] 스님은 약 200여 명이다. [[미국]]과 [[일본]] 등 해외에도 국제포교를 위해 6개소의 사찰을 운영하고 있다. 간행물로 월간 『보문』을 발행 중이다. == 보문사 == 대한불교보문종의 총본산인 보문사는 [[고려]] [[예종(고려)|예종]] 10년 담진(曇眞) 국사가 [[비구니]] 수련장으로 창건한 사찰로 창건 당시부터 [[비구니]] 즉 여승들을 위한 사찰이었다. [[조선]] 시대에도 이러한 사정은 마찬가지였는데, 보문사가 위치한 곳은 이미 조선 시대부터 '탑골승방'이라고 불리며 비구니들이 거처하던 도성 밖의 4대 비구니사찰[* 나머지 3곳은 [[옥수동]]의 두뭇개승방(미타사), [[석관동]]의 돌곶이승방(청량사) 그리고 [[숭인동(서울)|숭인동]]의 새절승방(청룡사). 청룡사는 [[경혜공주]](시누이)와 [[정순왕후 송씨]](올케)가 출가한 사찰이다.] 가운데 하나였다.[* 바로 옆에 담장을 맞대고 조계종 소속 미타사가 있는데 서로 탑골 승방을 자처하나 역사학자들의 견해를 따르자면 그냥 근처의 비구니들이 머무는 암자들을 모조리 탑골승방이라 부른듯 하다. 넓게 보면 수 백미터 떨어진 청룡사 까지 탑골 승방이라 인신하기도 했다.] [[2017년]]에 보문사의 극락보전을 중수할 때에 발견된 상량문에는 [[청나라|청]] [[건륭제|건륭]] 12년(조선 [[영조]] 23년, 1747) 처음 중건되었고, 이후 [[도광제|도광]] 4년([[순조]] 24년, 1824)과 [[동치제|동치]] 4년([[고종황제|고종]] 2년, 1865)에 더 중수되었음이 적혀 있다. 아울러 동치 4년 상량문의 경우는 조선 왕실의 시주를 받아 불사를 진행하고 [[후궁]]과 [[상궁]] 등 궁인에서부터 사대부, 평민에 이르기까지 불사에 동참하였음이 기록되어 있다.[[http://www.btnnews.tv/news/articleView.html?idxno=44748|#]] 보문사에는 왕실에서 하사한 연(輦)수식과 인로왕번(引路王幡)을 비롯하여 조선 후기에 제작한 석가불도, 신중도, 지장보살도 등 서울시 유형문화재, 조선 전기에 제작된 [[묘법연화경]]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밖에도 다수의 유·무형의 문화재들이 남아 있기도 하다. 친일 승려 [[권상로]](權相老)가 저술한 「보문사일신건축기(普門寺一新建築記)」가 있는데, 옛부터 [[비구니]] 스님들이 상주하며 국가의 안녕과 왕실의 번성을 기원하는 비구니 사찰로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는 [[1826년]]에 승려 수봉 법총(秀峰法聰)이 만세루를 신축하고 [[1842년]]에는 승려 영전(永典)이 만세루를 수리하였으며, [[1827년]]에 승려 정운(正雲)이 좌우 승당을 짓고 [[1872년]]에 금훈(錦勳)스님이 좌우 승당을 중수하였다고 되어 있다. 1972년에 보문사를 본산으로 하여 대한불교보문종을 창종했으며, 초대 종정 긍탄스님 이래 2008년 1월 현재 11대 혜일(慧日, 1919- )종정스님이 종단을 이끌어오고 있으며 총무원장은 법종(法綜)스님이다. [[분류:한국의 불교 종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