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대한민국의 진보정당(제1공화국-노태우 정부))] [Include(틀:제7대 국회의 원내 구성)] [목차] == 개요 == '''대중당(大衆黨)'''은 1967년에 창당하여 1973년 6월 21일에 해산된 대한민국의 정당이다. 1967년 서민호가 창당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민호]]([[전라남도]] [[고흥군]]) 혼자만 당선되었다. [[김윤식(1914)|김윤식]]([[서울특별시]] [[동대문구]] [[동대문구 을|을]]) 등은 낙선하였다. 이후 서민호가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신민당(1967년)|신민당]]에 합류하였다. == 역사 == 한일협정비준을 반대하여 의원직을 사퇴한 [[서민호]]는 민주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신당운동을 전개하며 [[통일사회당(1961년)|통일사회당]]과의 합작을 시도했으나 계보간 다툼으로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정화암]]의 혁신계와 제휴하여 민주사회당 창당준비위원회를 만들었지만 당 요직 안배에 대한 의견이 달라 서민호가 중심이 된 보수계 중심으로 1966년 5월 9일 민주사회당 창당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그러나 발기취지문에서 문제가 발생하여 서민호는 구속되었다. 1968년 [[이동화]]가 이끄는 통일사회당과 합당시도를 했고, 통합원칙까지 합의를 했지만 [[9.24 재보궐선거]]에 대중당이 민주공화당에서 제명된 [[신용남]], 기세풍을 공천하기로 결정한 것을 두고 통사당이 반발하여 결렬되었다. 결국 1970년 서민호는 탈당의사를 밝히고 1971년 4월 21일 [[신민당(1967년)|신민당]]에 개인자격으로 입당하여 원외정당이 되었다. 남은 대중당 세력은 이몽을 대표로 하여 곧 있을 [[제8대 국회의원 선거]]를 맞았지만 지역구에 나온 모든 후보들이 낙선하고 전국구 의석을 받기에도 부족한 득표를 하였다. == 해프닝으로 끝난 [[통일사회당(1961년)|통일사회당]]과의 합당 == [[1972년]] [[8월 14일]] 통일사회당과 합동회의에서 통일사회당이 대중당을 흡수, 통합키로 하고 합당 신고서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냈지만 [[9월 8일]] 대중당 대표 권한 대행 이동화씨는 지난 8월 14일 종로구 낙원동 낙원빌딩 4층에서 이뤄진 합동회의는 거짓대표를 내세운 부정 합당이라며 통일 사회당 위원장 김철씨를 상대로 명예훼손·사문서 위조·동행사·공정증서 원본 부실기재·인장 부정사용 및 행사 혐의의 고소장을 서울지검에 냈다. 이로써 2차 통합시도도 헛되이 마무리 지어졌다. == [[10월 유신]]과 해체 == [[1972년]] [[10월 17일]] 비상조치로 인해 정치활동이 중단된 대중당은 이후 다시 활동을 재개했지만 법정지구당 25개를 못 갖춰 [[1973년]] [[6월 20일]] 정치위원회 결의로 자진 해산하였다. == 역대 선거 이력 ==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 총 득표수 249,561(2.3%) 의석 1/175 [[1967년]] [[제6대 대통령 선거]] 서민호 후보 기권 [[1968년]] [[9.24 재보궐 선거]] 1명 당선(1/3) [[분류:대한민국의 진보정당]][[분류:1967년 정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