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관련 정보]], [[한국사 관련 정보]] [목차] == 개요 == 代理聽政 [[섭정]]의 하위 개념으로, [[왕세자]](혹은 왕세손)가 왕을 대신하여 국무를 맡는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왕의 건강이 위중해서 업무를 볼 수 없는 경우한다. 이때 대리를 하는 [[세자]](세손)을 소조(小朝), 왕은 대조(大朝)라 칭하여 구분했다. 현재의 [[대통령 권한대행]]과 비슷한 개념이다. 원칙적으로는 왕의 건강이 위중할때 국가운영을 위해 그리고 다른 측면에서는 왕이 후계자를 교육하고, 왕위승계의 정당성을 주기위해서 하는것이 원칙이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왕이 후계자의 역량 확인 또는 정치국면 전환의 방법 등으로도 자주 써 먹었다. 그 때부터 대리를 하는 후계자에 있어서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이 때문인지 조선의 경우 제대로 된 대리청정은 [[문종(조선)|문종]]이나 [[정조(조선)|정조]], [[효명세자]]처럼 정말 드물었고[* 경종의 경우 하긴 했는데, 위기에 몰린 것을 잘 알고 있는 경종 스스로가, 의견개진을 거의 하지 않고 중간만 가자는 식으로 임해서 잘한 것도 못한 것도 없다.] 사실상 후계자 교육과 왕위승계까지 제대로 이루어진 경우는 [[문종(조선)|문종]] 하나 말고는 없었다.[* 다만 아버지 [[세종(조선)|세종]]이 승하한 이후 왕위를 이어받았지만 본인도 너무 빨리 승하하는 바람에 아들 [[단종(조선)|단종]]이 왕위를 너무 어린나이에 이어받았다.] --훌륭한 아버지가 계셔야 대리청정도 잘된다-- [* 정조의 경우 3개월만 했다. 대리청정후 석달 후에 영조가 승하했기 때문] 때문에 대리청정을 지시하면 대개 [[신하]]들은([[이지선다|이게 진짜 승계목적인지 충성심 시험인지 알 수 없으니 안전빵으로]]) 땅바닥에 엎드려 울부짖고 차라리 날 죽여라!고 저항하며 [[명령]]을 받들려하지 않았다. 세종 때도 거의 완벽한 정통 후계자 문종에게 대리청정을 명하자[* 아들 [[단종(조선)|단종]]이 워낙 정통성이 뛰어나서 그렇지 문종 본인도 적장자-원자-세자루트를 다 밟았고 세자수업도 착실히 잘 받아 흠 잡을게 하나도 없었다.] 신하들이 지독하게 반대하여[* 사실 신하들로서는 과민반응할 수밖에 없던 것이 바로 전대의 태종은 재위한지 고작 6년만에 뜬금없이 선위하겠다고 나서서 신하들의 충성심을 테스트한 적이 있다. (그는 왕자리에 12년이나 더 있었다) 심지어 한번도 아니고 총 세번이나 선위 쇼를 한 뒤에야 네번째에 진짜 상왕으로 물러난 것. 태종은 신하가 수상하다 싶으면 바로 철퇴를 내릴 정도로 왕권을 세우는데 집착한 왕이었가에, 그 모습을 본 신하들 입장에서는 (선위는 아니지만) "내가 왕 노릇 하기가 버거운데 말이지..."란 제스쳐에 "아니옵니다 전하!!"라고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 세종이 "지금 내가 내 몸 건사하기 급급하다 이놈들아! 날 죽일셈이냐?"~~[[노인학대|황희:"네? 뭐라고요?"]]~~라고 거의 애원어린 일갈을 하고 나서야 겨우 관철되었고 영조가 사도세자와 정조에게 대리청정을 명했을 때도 당파([[노론]], [[소론]], [[남인]], [[북인]])를 초월해서 신하들은 비를 맞으며 돌바닥을 머리로 두드려 피를 철철 흘리며 반대했지만 영조가 "이러면 그냥 [[선위]]하겠다."고 [[협박]]하여 겨우 물러났다. 그런데 숙종이 경종에게 대리청정 시킬 때는 친 세자파였던 소론은 반대하고, 친 [[연잉군]]파이던 노론은 쌍수들어 환영했다. 경종에게 대리청정을 시킨 것이 숙종의 건강이 워낙 안좋아진 것도 있지만 장희빈 아들에다가 몸이 약한 경종을 숙종이 마음에 들지 않아하여 노론과 의논하여 트집잡아 폐세자시키려는 의도였다는 해석이 강하다.[* 실제로 숙종과 이이명이 독대를 했는데 그래서 더 의심을 산다.] 또 훗날 효명세자에게 순조가 대리청정을 명하자 신하들이 "종사의 무궁한 복입니다." 라고 쌍수들어 환영했다. 이건 [[홍인한]], [[정후겸]]이 대리청정 반대하다가 끔살당해서 생긴 학습효과라는 해석이 있다. ~~아님 지들 눈에도 순조가 너무 무기력해보였거나~~[* 당시 순조의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홍인한과 정후겸이 대리청정 막다가 어떻게 되었더라? 의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어쨌거나 제대로 된 대리청정의 예를 살펴보면 대리청정이 성공하기 위해선 군주가 확실히 세자에게 전권에 기꺼이 내줄 마음이 있어야 하며 서로간 사이가 매우 좋아야 하고 후계자의 정치력이 성숙한 상태여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전제왕정에서 왕의 권력을 나누어주기 위해선 그만한 신뢰가 필요하단 이야기일 것이다. -- 사도세자: 네? 뭐라구요? 내가 제일 오래했는데??? --[* 사도세자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영조의 지나친 훈육과 기대치 때문에 부자간의 갈등이 극심했으며, 대리청정 체제로 간 뒤에도 대부분의 정무를 영조 본인이 처리했기에 아무리 오래했어도 의미는 없다. 사실상 대리청정 선언 역시 당시 분열된 정부의 당파싸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던 영조의 정치책략 중 하나라고 봐야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이용당한거나 마찬가지인 사도세자의 스트레스는 장난 아니었을 것. 심지어 영조는 태종이 했던 선위 파동까지 했다.] == 사례 == 괄호 안의 연도는 대리청정을 한 기간이다. === 중국 === * [[윤상(월나라)|윤상]] - [[구천]](3년) * [[송태조]] - [[송태종]](1개월) === 한국 === * [[세종(조선)|세종]] - [[문종(조선)|문종]](8년) 조선 최장기간 대리청정 세자. 정작 제위 기간은 2년 정도로 매우 짧았다. 중간에 [[종기]] 때문에 매우 위독해져서 대리청정을 중단하고 세종이 직접 정무를 살핀 기간이 있다.[* 사실상 조선 왕조에서 가장 강력한 섭정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당시 문종은 확실한 정통성과 아버지의 전폭적인 신뢰, 할아버지 대에서 다져놓은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안정적으로 국정을 돌봤으며, 그 기간에 여러 업적을 세웠다. (특히 세종 말기의 군사적 업적은 사실상 문종의 공이라 보면 된다) 또한 그 기간동안 확실한 후계자 수업과 차기 왕으로서 권위를 세웠기에, 아들 단종까지 이어지는 탄탄한 기반을 마련했다. 본인이 오래 못 살고 동생이 배신하면서 공을 세운 신하들을 후하게 대접하는 바람에 세조대에 신권이 강해지고 왕권이 약해지는 계기가 생겨서 문제지, 문종이 조금만 더 오래 살았다면 조선의 제도를 확실히 다진 명군으로 남았을 확률이 높다. 살아있는 왕의 권위와 의지를 존중하면서 젊고 유능한 섭정이 사실상의 왕으로서 훌륭히 직무를 수행했다는 점에서 대리청정의 가장 모범적인 케이스.] * [[선조(조선)|선조]] - [[광해군]](6개월) [[임진왜란]]으로 인해 분조(조정의 일부)를 이끌고 활동하였다. * [[인조]] - [[소현세자]](3개월) [[정묘호란]]으로 인해 분조를 이끌고 활동하였다. * [[숙종(조선)|숙종]] - [[경종(조선)|경종]](3년) * [[영조]] - [[사도세자]](14년) 실질적으로 대리를 한 기간은 훨씬 짧다. 사도세자가 병을 이유로 정무를 기피한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영조도 겉으로만 사도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켰지, 실질적으로는 본인이 다 했었으니, 사도세자의 대리청정은 아무 의미없는 허울이였다. * [[영조]] - [[정조(조선)|정조]](3개월) * [[순조]] - [[효명세자]](4년) * [[고종(대한제국)|고종]] - [[순종(대한제국)|순종]](6개월) === 일본 === * [[다이쇼 덴노]] - [[쇼와 덴노]](5년) 다이쇼 덴노가 병석에 눕자 황태자로서 대리청정. * [[쇼와 덴노]] - [[아키히토]] 쇼와 덴노가 병석에 눕자 황태자로서 대리청정. 그래서 [[다케시타 노보루]] 총리 임명장도 황태자가 대리 서명하고 취임식에서 임명장도 황태자가 대신 수여했다. [[분류:섭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