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북한의 시설물)] [[파일:attachment/daedongmoon.jpg]] 일제강점기의 대동문. 옹성이 헐린 뒤라서 원형에서 다소 변형되어 있다. ||||<bgcolor=#000000><:>{{{#gold {{{+3 대동문 }}}}}}|| ||<:><-2>[include(틀:지도, 장소=평양 대동문, 높이=224px, 너비=100%)] || [목차] {{{+2 大同門 / Taedongmun}}} == 개요 == [[평양]]시 이문동(里門洞)(북한 행정구역상 [[평양직할시]] [[중구역]] 대동문동)에 있는 성문이다. [[북한의 국보]] 제4호. [[평양성]]의 동문(東門)으로 역사는 [[고구려]]시대까지 거슬러올라가나 지금의 문은 조선 중기에 세워진 것이라 한다. 누각이 1층이 중층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이점이다. [[파일:%C6%F7%B8%CB%BA%AF%C8%AF_b0052375_4a92bfd92bc81.jpg]] 조선시대 말기까지는 위에서 보는 것과 같이 방어시설로써 [[수원화성]]의 [[장안문]]이나 [[팔달문]]같이 반원형 형태의 [[옹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훼손된 것으로 추정된다. [[파일:external/chang256.new21.net/dadongmunh00364_1.jpg]] 1층의 [[초서]]체 현판은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 2층의 [[해서]]체 현판은 평안감사 [[박엽]](朴燁)의 글씨이다. 한편 揖灝樓(읍호루)라는 현판의 '읍호'는 문루에서 손을 내밀어 대동강의 맑은 물을 떠올린다는 뜻이다. 옛날에는 이 문 바깥에 나루터가 있어서 동평양 쪽으로 가는 나룻배를 탈 수 있었다. 대동문 건너편 쪽이 선교(船橋)라고 불리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지명은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으며, 북한에서는 중구역(대동문 소재 구역) 건너편 구역을 [[선교구역]]이라고 부른다. 대동문 옆 종각에는 평양종이 있는데, 이른바 북한 보물급문화재 제1호이다. 조선 말엽까지 시간을 알리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 일제강점기 == 일제강점기에 많이 훼손되었다. 대동문은 부분적으로 많이 변형되었다. 문루 1층의 대가 좌우로 넓어지고, 창문이 설치되는 등... 현판 역시 다른 글씨체를 가진 것으로 바뀌었다. == 현재의 대동문 == [[파일:external/korean.cri.cn/simiao.jpg]] [[한국전쟁]] 때 대동문은 미군의 폭격으로 인해 파괴되고, 현재는 북한에서 복원해 놓았다. 게다가 사진으로 비교해본다면 원래의 대동문보다 훨씬 작게 지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좌우의 문각 위치나 문루 2층의 창문 부분이 막혀있는 것을 보자. 위 사진에서는 비교하기 어렵지만, 성벽의 높이는 대동강변을 향한 둑의 높이 때문에 이전보다 낮은 것처럼 보인다. [[파일:Daedongmun_Snow.jpg|width=600px]] 2009년 12월 대동문의 설경. 오른쪽의 종각은 평양 종각[* 1726년 주조된 평양종이 걸려있으며, 지금의 종각은 1827년 고쳐 지었다고 한다.]. == 관련 문서 == ||<:><white> [[파일:external/contents.nahf.or.kr/map.jpg|width=100%]]|| ||<:><black> '''{{{#gold 도성도}}}|| [[분류:북한의 국보]][[분류:평양직할시]][[분류:나무위키 북한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