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堂後日記草本. [[조선]] 중기의 문신인 운천(雲川) [[김용]](金湧, 1557~1620)이 1615년 8월부터 1616년 6월까지 약 10개월 간 기록한 [[사초]](史草). 현재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되어 있다. == 내용 == 원제는 운천선조경연주대(雲川先祖經筵奏對)이다. [[호종일기]]의 저자로 유명한 운천 김용이 쓴 [[당후일기]]로, 당후일기란 [[승정원]](承政院)의 [[주서]](注書)가 기록하는 일기류 사초를 뜻한다. 이는 김용의 경연 기록으로, 김용은 [[임진왜란]] 전에 [[일본]]을 정탐하러 파견되었다가 백성들이 우왕좌왕하는 것을 막기 위해 침입하는 일이 없을 것이란 주장을 편 학봉(鶴峯) [[김성일(조선)|김성일]](金誠一)의 조카이자, 퇴계 [[이황]] 선생의 손녀사위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향인 [[안동]]에서 [[의병장]]으로도 활약했고,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치는 동안 춘추관 편사관을 겸하면서 [[선조실록]]을 편찬하는 데 참여하기도 하였다. 이 당후일기초본은 1615년([[광해군]] 7) 윤 8월 초6일부터 1616년(광해군 8) 6월 18일까지 김용이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을 상세히 기록해놓은 사초로, 원래는 천(天)·지(地)·인(人)의 3책으로 이루어져 내려오던 것을 [[일제강점기]] 때 새로 제본한 것이다. 현재 국사편찬위원회(도서번호 B6B-80)에 소장되어 있으며, 조선시대에 세초작업을 통해 사라지지 않은 여러 사초 중 하나로 그 가치가 높다. 광해군 대 역사에 대한 연구와 사초 제작 과정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는다. 1996년에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김종직의 [[필재당후일기]](畢齋堂后日記), 허모의 [[경오춘하강원도기사책]](庚午春夏江原道記事冊), 지덕해의 공조겸춘추일기(工曺兼春秋日記), 도신수의 [[겸춘추일기]](兼春秋日記), 이모의 겸춘추기(兼春秋記), 권두기의 [[당후일록]](堂后日錄), 이상정의 [[당후일기]](堂后日記), 이류의 [[춘추관일기]](春秋館日記) 등과 함께 한국사료총서 『조선시대사초 Ⅱ』(朝鮮時代史草 Ⅱ)에 수록하였다. [[http://db.history.go.kr/item/level.do?sort=levelId&dir=ASC&start=1&limit=20&page=1&pre_page=1&setId=3&prevPage=0&prevLimit=&itemId=sa&types=&synonym=off&chinessChar=on&brokerPagingInfo=&levelId=sa_073_%242exp&position=-1|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조선시대사초 Ⅱ』(朝鮮時代史草 Ⅱ) 해제(解題)]] == 바깥고리 == * [[http://db.history.go.kr/item/level.do?levelId=sa_073_$1rem|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조선시대사초 Ⅱ』(朝鮮時代史草 Ⅱ) 범례(凡例)]] * [[http://db.history.go.kr/item/level.do?levelId=sa_073_$2exp|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조선시대사초 Ⅱ』(朝鮮時代史草 Ⅱ) 해제(解題)]] [[분류:조선왕조실록]][[분류:조선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