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진서)] ||||||||<tablealign=center><#73d1f7><:> {{{#000000 '''『'''}}}[[서진|{{{#000000 '''진서'''}}}]]{{{#000000 '''』'''}}} '''{{{#000000 「상단염전(向段閻傳)」}}}''' || ||<:> [[상웅#s-1|상웅]] ||<:> [[단작]] ||<:> [[염찬]] || 段灼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위나라, [[서진]]의 인물. 자는 휴연(休然). 돈황 사람으로 대대로 서방의 저명한 가문으로 과단성이 있으면서 재주와 언변이 있었으며, [[진서]] 단작전에 따르면 단작은 주군에 임관했다가 여러 차례 승진해 [[등애]]의 진서사마(鎮西司馬)가 되었다. 등애는 단곡전투의 승리로 256년 진서장군이 되었고, 258년에 [[강유]]의 철수로 정서장군으로 승진했기에 단작이 등애의 진서사마가 되어 그의 부하가 된 시기는 256년 단곡전투 후~258년 사이로 볼 수 있다. 263년에 등애를 따라서 촉 정벌에 종군해 공을 세워 관내후에 봉해지고 여러 차례 승진해 의랑이 되었다. 265년에 [[사마염|무제]]가 즉위해 진을 건국하면서 267년에 단작은 등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신원해줄 것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려 무제가 상소를 보고 그 뜻을 가상하게 여겼으며, 273년에 무제가 조서를 내려 등애를 신원하고 그의 손자인 [[등랑]]을 낭중에 임명했다. 중국 위키디피아에는 등애의 탄원을 요청한것이 서북면 방면의 정책 변화의 뜻을 두고 한 상소라고 해석하고 있다. 단작은 [[구품관인법]]에 대해 상품에 있는 사람은 공이나 후의 자손이 아니면 집권자의 형제라고 말했다. 후에 위흥태수를 지내다가 관직에 역임한 채로 사망했다. [[분류:위나라의 인물]][[분류:서진의 인물]][[분류:생년 미상]][[분류:몰년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