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tablealign=right><tablewidth=450><tablebgcolor=#0098d4> '''{{{#ffffff {{{+1 다하우}}}[br]Dachau}}}''' || ||<-3><bgcolor=#fff,#191919> [[파일:800px-Wappen_von_Dachau.svg.png|width=150]] || ||<-3> '''{{{#ffffff 휘장}}}''' || ||<-3><bgcolor=#fff,#191919> [include(틀:지도, 장소=다하우)] || ||<-3> '''{{{#ffffff 다하우의 위치}}}''' || ||<-3> '''{{{#ffffff 행정}}}''' || ||<width=35%> '''{{{#ffffff 국가}}}''' ||<-2><colbgcolor=#fff,#191919>[[독일]] [[파일:독일 국기.svg|width=30]] || || '''{{{#ffffff 시간대}}}''' ||<-2>(UTC+1/+2) || || '''{{{#ffffff 주}}}''' ||<-2>[[바이에른]] || || '''{{{#ffffff 현}}}''' ||<-2>[[오버바이에른]] || || '''{{{#ffffff 군}}}''' ||<-2>[[란트크라이스 다하우]] || ||<-3> '''{{{#ffffff 인문환경}}}''' || || '''{{{#ffffff 면적}}}''' ||<-2>34.85km || || '''{{{#ffffff 인구}}}''' ||<-2>47,721명^^(2019년)^^ || || '''{{{#ffffff 인구밀도}}}''' ||<-2>1,365명/km² || || '''{{{#ffffff 홈페이지}}}''' ||<-2>[[https://www.dachau.de|[[파일:홈페이지 아이콘.png|width=30]]]] || ||<-3> '''{{{#ffffff 정치}}}''' || || '''{{{#ffffff 시장}}}''' ||플로리안 하르트만 ||<bgcolor=#fff,#191919> [[독일 사회민주당|{{{#!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E00018; font-size: .8em" {{{#ffffff '''사민당'''}}}}}}]] || '''Dachau''' [목차] == 개요 == [[뮌헨]]에서 북서쪽으로 16km 떨어진 곳이다. 인구 4만 7천명(2017) 가량의 작은 도시이다. 뮌헨 중앙역에서 S-bahn 등의 기차로 20분 정도에 다하우 역으로 갈 수 있다. 밑에 나오는 강제수용소 때문에 관광객이 도시 규모에 비해 많은 편이다. 대중교통으로 강제수용소에 갈 때는 다하우 역에서 726번이나 744번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시내버스의 경우 뮌헨 대중교통패스 중 Inner pass 는 적용되지 않으므로 주의. XXL 패스 등은 이용할 수 있다. == 다하우 강제 수용소 == Das Konzentrationslager (KZ) Dachau (독일명) Dachau Concentration Camp (영문명)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bf05538510ae42af7ba0ee9aa022fe1a.jpg]] [[파일:external/www.letsgo-europe.com/ditch2_800.jpg]] [[파일:external/redoubtreporter.files.wordpress.com/dachau-crematoria.jpg]] >'''"다하우, 이 곳에서 나의 고난이 시작됐단다."''' - [[블라덱 슈피겔만]], 만화 [[쥐(만화)|쥐]]에서의 회상 1933년 6월 [[나치 독일]]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수용소이다. 1945년 4월 29일 해방되었다. 영어식 발음인 '다카우'라고도 알려져 있다. 초기에는 정치범 수용소로 이용되다가 나치의 유대인 말살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수많은 유대인들이 유럽 전역에서 끌려와 수용되었다. [[유대인]](Jude)뿐만 아니라 [[집시]](Sinti und Roma), [[동성애자]], [[정치범]]들을 잡아가두는 나치 독재와 인권탄압, 인종말살 정책의 상징적인 장소이다. 수용소가 [[미합중국 육군]]에게 해방될 때, 이곳의 SS [[무장친위대]] 소속인 경비 병력들은 항복했음에도 불구, 참상을 보고 분노한 미 [[육군]] [[장병]]들에 의해 '''[[포로 학살|즉결처형]]'''되었다. 또한 해방된 수용자들에게 아예 복수하라고 삽같은 걸 주기도 하면서 [[다굴|던져주기도 했다]]. 이 경우 쳐맞는걸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고 시체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뭉개진 경비도 있었다. [[https://blog.naver.com/ddody11/20030990539|#]][[https://blog.naver.com/ddody11/20030913610|#]] 당연하지만 이미 제3차 [[제네바 협약]]까지 비준된 상황이었으므로 항복한 독일군을 미군이 즉결처형한 것은 분명 [[전쟁범죄]]에 해당된다. 뒤늦게 미 육군 장교가 나타나 제지했지만, 이미 500명 넘는 SS 대원들이 학살된 뒤였다. 학살을 막아야 할 장교들조차 이를 묵인했고, 이 중 육군 [[군의관]]은 부상당한 SS 대원들의 치료를 거부하기도 했으며, 실제로 처벌 받은 미군은 없다. 이 학살은 다른 학살에 비해서 동정적인 반응 내지 ~~학살치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편이다. 다하우가 나치 만행의 주요 현장인 것도 있고, 경비병들 역시 그 당시에 저지른 만행[* 대표적으로 수용소 복장중 하나인 모자를 뺏어서 던지고 주워오라고 시킨 뒤 총으로 쏴 죽인 뒤, '''탈출하려 한 유대인을 죽였다며''' 휴가를 받았다던가, '''자기 기분에 따라 죽을 때까지 두들겨패놓고 치료없이 방치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등의 짓이 있다.]이 있어서 그러한 학살조차 [[인과응보]]이자 [[사이다]]라는 것. 그래서인지 ~~형식적으로~~조사만 하고 법적으로 처벌받은 병사는 없다. [[1차 세계대전]]으로 붕괴된 [[독일 제국]]과 같이 붕괴된 옛 [[바이에른 왕국]]의 마지막 왕태자 루프레히트와도 연관이 있는 장소다. 당시 루프레히트는 나치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여 [[이탈리아]]로 [[추방]]당했는데, 1944년 10월, 연합국과 강화를 모색하려던 [[헝가리]]의 [[호르티 미클로시|호르티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헝가리를 침공한 독일군에 의해 탈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의 가족들은 모두 체포되어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옛 영지가 있는 바이에른주의 뮌헨 인근의 이 [[다하우 수용소]]로 이송되어 미군에 해방될 때까지 수감되었다. 그중 루프레히트 왕태자의 아내인 안토니오 왕태자비는 가혹한 수감생활을 견디지 못해 그대로 옥사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돌프 히틀러]]는 1차 대전 중에 루프레히트의 부하였다. [[JTBC]]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도 소개되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엄청난 존재감으로 인해 가려진 편이지만, 다하우는 아우슈비츠에 이어 두번째로 큰 규모의 강제수용소이며 현재 독일 영토 내에서는 단연 최대 규모의 수용소였다. 무엇보다 나치가 세운 최초의 강제수용소로서, 아우슈비츠를 비롯해 이후 나치의 여러 수용소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아트 슈피겔만]]의 [[쥐(만화)|쥐]]에서 주요 배경 무대가 되기도 했다. 수용소와 내부의 박물관 및 전시관의 입장은 무료이며, 오디오 가이드는 3.5유로에 대여할 수 있다.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이 있으며, 한국어는 없다. 부대 시설로 식당, 기념품점, 무료 [[화장실]] 등이 있다. [[http://ko.wikipedia.org/wiki/%EB%8B%A4%ED%95%98%EC%9A%B0_%EA%B0%95%EC%A0%9C_%EC%88%98%EC%9A%A9%EC%86%8C|한국어 위키백과]] [[분류:나치 독일]][[분류:홀로코스트]][[분류:바이에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