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50px-David_Suazo_Catania.jpg]] || || 이름 || 오스카르 다비드 수아소 벨라스케스[br](Óscar David Suazo Velázquez) || || 생년월일 || [[1979년]] [[11월 5일]] ([age(1979-11-05)]세) || || 국적 || [[파일:온두라스 국기.svg|width=30]] '''[[온두라스]]''' | [[파일:이탈리아 국기.svg|width=30]] [[이탈리아]] || || 출신지 || [[산 페드로 술라]][* 끔찍한 살인율로 유명한 그 도시가 맞다.] || || 포지션 || [[스트라이커]] || || 키 || 182cm || || 프로 입단 || 1997년 CD 올림피아 입단 || || 소속팀 || CD 올림피아(1997~1999) [br] [[칼리아리 칼치오]](1999~2007) [br] [[인터 밀란]](2007~2011) [br] [[SL 벤피카]](임대)(2008~2009) [br] [[제노아 CFC]](2010) [br] [[칼치오 카타니아]](2011~2012) || || 국가대표 || 57경기 17골 || [목차] == 개요 == [[온두라스]] 출신의 전 [[축구]] 선수.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다. 빠른 몸놀림과 드리블, 뛰어난 골결정력을 갖추었으며, 공간 지각 능력과 테크닉, 제공권 장악 능력 뛰어나다. 카를로스 파본 등과 함께 여러모로 [[온두라스]]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하나다. 특히나 온두라스 출신 명문리그진출자로는 최초나 다름없었던 다비드 수아소가 독보적인 인기를 자랑했는데 대한민국으로 치면 [[박지성]] 정도의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을정도로 국민영웅급 대우를 받았다. 한마디로 온두라스판 해버지. 다부진 체격에 굉장히 빠른 스피드가 강점인 선수였고, 실제로 세리에A에서 뛰던 당시 가장 빠른 선수 중 한명이었고 라인브레이킹에 능해 역습공격에 강했다. 2000년대 중반에는 이적시장의 뜨거운 감자 중 하나였을 정도로 빅클럽의 관심을 많이 받아왔고, 실제로 인터밀란으로 이적하기도 했지만 유리몸 기질 때문에 중요한 시기때마다 커리어를 날려먹었다. == 커리어 == === 클럽경력 === ==== 칼리아리 ==== 1997년 CD 올림피아에서 데뷔했으며, 1999년 [[오스카르 타바레스]] 감독의 눈에 띄어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칼리아리 칼치오]]으로 이적해 [[유럽]] 무대로 진출하였다. 입단 첫 시즌에는 13경기에 출전해 1골을 넣으며 적응기를 가졌는데, 정작 팀은 17위를 기록해 시즌 종료 이후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전화위복이 되었는지 [[세리에 B]]로 강등된 팀에서 주전 자리를 수월하게 차지할 수 있었으며, 113경기에 출장해 40을 넣으며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특히 2003-04 시즌에는 45경기에 출장해 19골을 득점했으며, 팀이 2위를 차지해 1부 리그로 승격하는 데 기여했다. 팀 입단 이후 세리에 A에서 맞는 두 번째 시즌인 2004-05 시즌에는 주전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었으나, 비록 [[지안프랑코 졸라]]나 [[마우로 에스포시토]], [[안토니오 란젤라]] 등에게 밀려 후보로 활약하면서도 22경기에서 7골을 득점해 좋은 활약을 보였다. 2005-06 시즌에는 다시 주전으로 복귀한 뒤 37경기에서 22골을 득점하며 득점 랭킹 3위에 오르는 놀라운 활약을 보였으며, 시즌 종료 이후 [[카카]]와 함께 '세리에 A 최우수 외국인 선수'에 선정되었다. 2006-07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의 [[세비야 FC]],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의 관심을 받았으나,[*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수아소의 플레이 스타일이 자신들의 전설적인 선수인 [[드와이트 요크]]를 연상시킨다고 평가했다.] 마시모 첼리노 구단주의 만류로 결국 팀에 남아 [[주장]] 완장을 차며 과거 주전 선수였던 에스포시토, 란젤라와 함께 호흡을 맞추어 36경기에서 14골을 득점하며 득점 랭킹 공동 11위에 올라 팀이 17위를 기록해 가까스로 1부 리그에 잔류하는 데 공헌하였다. ==== 인터밀란 ==== 시즌 종료 이후 "칼리아리를 사랑하지만 좀 더 강한 팀에서 뛰고 싶다"라는 말과 함께 공식적으로 이적을 선언했으며, [[AC 밀란]], [[인터 밀란]], [[AS 로마]], [[SS 라치오]] 등이 물망에 올랐다. 당초에는 이들 중 [[아드리아누]]의 대체자를 구하던 인터 밀란으로의 이적이 유력했으나, 며칠 뒤 갑자기 [[더비]] 라이벌인 AC 밀란이 인터 밀란보다 높은 이적료를 주고 영입을 확정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칼리아리가 인터 밀란과 처음 협상할 당시 1000만 유로 외에 [[로베르트 아쿠아프레스카]]와 [[마르코 안드레올리]]의 소유권을 요구했는데, 인터 밀란 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도 구단주가 수아소의 인터 밀란으로의 이적을 승인하며 수아소가 인터 밀란의 메디컬 테스트를 받으며 이적이 유력해보였는데, 며칠 뒤 갑자기 AC 밀란이 1400만 유로를 제시하며 수아소를 [[하이재킹]]하는 상황까지 벌어진 것.] 당연히 인터 밀란 측에서 가만히 있지 않았으며, 수아소 또한 인터 밀란으로의 이적을 원했기에 결국 구단은 1200만 [[유로]]와 [[로베르트 아쿠아프레스카]]의 공동소유권을 받고 수아소의 인터 밀란으로의 이적에 합의했다.[* 구단주가 수아소의 의견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덕분에 이탈리아 최고의 더비 라이벌간의 이적 시장 신경전이 대단했지만...] 입단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평가전에서 2골을 넣어 팀의 3:2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해 한껏 구단의 기대를 자아냈지만, 막상 2007-08 시즌이 시작되자 부상으로 컨디션 난조를 겪으며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에르난 크레스포]], [[훌리오 크루스]]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 설상가상으로 [[PSV 에인트호번]]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팔꿈치로 상대 선수를 가격했다는 이유로 레드카드를 받아 퇴장당했으나, 경기 후 [[비디오]] 분석 결과 고의성이 없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이후 11월 [[제노아 CFC]]와의 경기에서 데뷔골을 터뜨리며 팀의 4:1 승리에 일조했으며, [[AS 리보르노 칼치오]]와의 경기에서 두 골을 득점하며 팀의 2:0 승리를 이끄는 등 주로 교체로 출전하면서도 27경기에서 8골을 기록하며 나름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 벤피카(임대) ==== 하지만 시즌 종료 이후팀의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한 [[주제 무리뉴]]의 팀 구상에서 선택받지 못했고, 이에 수아조는 다른 팀에서 주전으로 뛰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일단은 본인이 이탈리아에 남고 싶다는 바람에 따라 여름 이적시장에서 이전에 영입을 시도했던 AS 로마와 [[UC 삼프도리아]], [[US 팔레르모]]로의 이적설이 제기되었으나, 결국 수아조는 "다른 리그에서 뛰더라도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빅 클럽이 좋다"는 의견을 내비치며 임대 후 완전 이적 형식으로 [[포르투갈]] 리그의 [[벤피카]]에 입단했다. 2008-09 시즌 초반에는 12에 출전해 4골을 득점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으며, 겨울 이적시장에서 [[아스톤 빌라 FC|아스톤 빌라]], [[에버튼 FC]], [[뉴캐슬 유나이티드]] 등 프리미어 리그의 팀들로부터 관심을 받기도 했다.[* 당시 에버튼은 [[야쿠부 아이예그베니]]가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상태였고, 뉴캐슬 유나이티드는 [[마이클 오언]]의 계약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떠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스포르팅 CP]]와의 경기에서 왼쪽 [[무릎]]에 부상을 입어 시즌 아웃 상태가 되었으며, 결국 벤피카로의 완전 이적에 실패한 채 인터 밀란으로 복귀하였다. ==== 제노아(임대) ==== 복귀 이후 [[맨체스터 시티]]의 관심을 받기도 했으나,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로의 진출을 원한다고 밝히며 영입 제의를 거절하였다. 하지만 결국 다른 팀으로 이적하지 못한 채 2009-10 시즌을 맞이했으며, 이전보다도 더 기회를 잡지 못하며 겨울 이적시장때까지 리그에서 단 1경기 출전에 그쳤다. 겨울 이적시장이 열리자 --번번히 거절당한-- AS 로마와 AS 리보르노 칼치오가 영입을 시도했으나,[* 당시 로마는 재정 상태의 어려움(...) 때문에 영구 이적 대신 임대료 없이 시즌 종료때까지 영입하는 방법을 택했다. ] 수아소는 6개월 임대로 SS 라치오로 임대 이적한 [[세르지오 플로카리]]의 공백을 메우려던 [[제노아 CFC]]를 택했다.[* 이 때 인터 밀란이 라치오로부터 [[고란 판데프]]를 영입했다. 즉, 3구단 간의 트레이드였던 셈.] 입단 이후 두 경기 만인 AC 밀란과의 경기에서 비록 팀은 2:5로 패했지만 데뷔골을 터뜨리는 등 나름 분전했으며, 이후에도 나름 좋은 활약을 보이며 한 때 임대 기간 종료 후 완전 이적 이야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매우 저조한 득점력을 보이며''' 완전 이적에 실패했고, 결국 시즌 종료 이후 인터 밀란으로 복귀했다. ==== 카타니아 ==== 2010-11 시즌이 시작되기 전 자신을 기용하지 않던 무리뉴가 [[레알 마드리드]]로 떠나 다시금 기회를 잡는 듯 했지만, 장기 부상을 장하는 등 악재가 겹쳐 결국 시즌이 끝날 때까지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시즌 종료 이후 구단과의 계약이 만료되어 [[FA 제도(축구)|FA]]가 되었으며, 자신의 친정팀인 칼라아리 칼치오로의 복귀를 추진했다. 입단이 성사되는 듯 싶다가 마시모 첼리노 구단주의 마음이 바뀌어 무산되었으며, 이후 [[칼치오 카타니아]]와 1년 계약을 맺어 이적에 합의해 등번호 9번을 달게 되었다. 1년동안 뛰었으며 시즌 종료 후 은퇴하였다. == 국가대표 == 비록 칼리아리 시절 이후 클럽경력으로는 안습한 시간을 보냈지만, 국가대표에서는 팀의 중심 그 자체였을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1999년 [[온두라스]] 청소년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으며, 'FIFA 청소년 월드컵'에 출전해 자신의 존재를 세계에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2000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해 [[나이지리아]]와 [[오스트레일리아]]를 상대로 두 골씩을 득점하는 놀라운 활약을 보였으며,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성인 국가대표팀에도 뽑혔다. 2001년 [[코파 아메리카]] 당시에는 국가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어 대회 3위에 오르는 영광을 맛보았으며, 2003년 [[골드컵]]에서도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다. [[2006 FIFA 월드컵 독일|2006 FIFA 월드컵]] 지역 예선 당시에는 5골을 기록했으나, 팀이 약체였던 탓에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이후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2010 FIFA 월드컵]] 지역 예선 당시에는 4골을 넣어 팀의 본선 진출에 기여하였다. 물론 본선에서도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출전하였지만, 팀이 약체였던 탓에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결국 16강 토너먼트에는 오르지 못했다. == 여담 == 2005년 이탈리아 여성과 결혼해서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으며, 이탈리아 이중국적자이기도 하다. 은퇴후에도 계속해서 이탈리아에 거주중이며 감독/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여담으로 [[위건 애슬레틱]] 소속으로 뛰고 있는 [[엔드리 토마스]]가 [[사촌]]이다. [[분류:1979년 출생]][[분류:온두라스의 축구선수]][[분류:이탈리아의 축구선수]][[분류:제노아 CFC/은퇴, 이적]][[분류: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은퇴, 이적]][[분류:SL 벤피카/은퇴, 이적]][[분류:칼리아리 칼초/은퇴, 이적]][[분류:칼초 카타니아/은퇴, 이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