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체사레비치]] [[분류:홀슈타인고토르프로마노프 가문]] [[분류:1843년 출생]] [[분류:1865년 사망]] ||<-2><table align=center><tablewidth=500> [[파일:Nyikolaj_Alekszandrovics_orosz_nagyherceg.jpg|width=100%]] || ||<width=17%> '''이름'''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로마노프[br](Никола́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Романов)|| || '''출생''' ||[[1843년]] [[9월 20일]][br][[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 '''사망''' ||[[1865년]] [[4월 24일]] (21세)[br][[프랑스 제2제국]] [[니스]]|| || '''아버지''' ||[[알렉산드르 2세]]|| || '''어머니''' ||[[헤센의 마리]]|| || '''형제''' ||알렉산드라, [[알렉산드르 3세]], 블라디미르, 알렉세이, 마리아, 세르게이, 파벨|| [[파일:Tj6T7jq.jpg]] [[니콜라이 2세]]와는 동명이인이다. ~~[[알렉산드르 3세]]보단 이 사람을 더 닮은 것 같다~~ 러시아판 [[효명세자]]. [목차] == 생애 == === 황태자의 아들 === 당시 [[러시아 제국]] 황태자였던 [[알렉산드르 2세]]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어린 시절의 니콜라이 황태자는 '''닉사'''라는 애칭으로 유명했으며 자신도 그렇게 불리기를 원했다. 니콜라이 황태자는 어려서부터 머리가 아주 좋았고, 교양도 있는 사람이어서 [[알렉산드르 2세]]는 그를 '''러시아의 희망'''이라고 불렀다. === 황태자가 되다 === [[크림 전쟁]] 중 할아버지인 [[니콜라이 1세]]가 1855년 [[3월 2일]]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 [[알렉산드르 2세]]가 차르로 즉위하자 황태자가 되었다. 니콜라이 황태자는 아버지가 추진하고자 하는 개혁의 파트너였다. 니콜라이 황태자는 자신이 예전부터 사진을 모을 정도로 강력하게 짝사랑하고 있었던 [[덴마크]]의 [[마리아 표도로브나|다그마르 공주]]와 약혼했다. 반면, 그의 남동생 '''[[알렉산드르 3세|사샤]]'''는 형과 달리 단순한 성격에, 키는 컸으나 파티 시간에는 그저 노인들처럼 가만히 춤을 지켜보는 성격이었다. 아무튼 니콜라이 황태자는 영특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 비극적이고도 어이없는 최후 === 1865년, 니콜라이 황태자는 고모 마리야 여대공의 아들, 즉 고종사촌인 로마노프스키 공 니콜라이를 궁에 초청했다. 이 때, 방에는 니콜라이 황태자, 로마노프스키 공 니콜라이가 [[레슬링]]을 즐기고 있었고, [[알렉산드르 3세|사샤]]는 평소처럼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레슬링에 너무 몰입하다 보니 니콜라이 황태자가 대리석 탁자 모서리에 등을 부딪혔고, 이로 인해 건강이 크게 악화됐다. 설상가상으로 후에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여우사냥을 나섰다가 건강이 더 악화되어 낙마했고, 뼈에 결핵균이 퍼졌다. 니콜라이 황태자는 이미 가망이 없었다. 죽음을 직감한 니콜라이 황태자는 유언을 했다. > "오, 아버지. 제 동생 [[알렉산드르 3세|사샤]]를 잘 돌봐주세요. 사샤는 참 성실하고 좋은 사람입니다." - 아버지 [[알렉산드르 2세]]에게 > "[[마리아 표도로브나|다그마르]]를 잘 부탁한다." - 남동생 사샤에게 유언을 마친 뒤, 니콜라이 황태자는 1865년 [[4월 24일]]에 사망했다. == 죽음 후 == 가족들은 물론 [[러시아 제국]] 백성들도 총명한 황태자였던 그의 죽음에 크게 슬퍼했다. 그의 우애 좋은 동생은 제위를 계승하여 [[알렉산드르 3세]]가 되었으며, 그의 유언에 따라 '''[[마리아 표도로브나|다그마르]]는 사샤의 아내가 되었다.''' --[[앨버트 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