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30A17><:>{{{#white {{{+3 누사이빈 ([[마르딘]]) [br] Nusaybin }}}}}}|| ||<-3><:> [include(틀:지도, 장소=터키 Nisibis)] || [목차] == 개요 ==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고대 도시. 현재 [[터키]]와 [[시리아]] 국경에 위치한 인구 9만의 터키령 도시 누사이빈이다. 217년 [[로마 제국]]과 [[파르티아]] 간의 [[니시비스 전투]]로 유명하다. == 역사 == === 상고대 === [[니시비스]]는 BC 901년에 니시비나라는 [[아람]]인의 거주지로 처음 기록되었고 니르아리 2세의 원정으로 BC 896년에 [[아시리아 제국]]에게 점령되었다. 그리고 BC 852년에는 [[시리아]] 북부 총독령의 치소가 되었다. BC 608년, [[신 아시리아 제국]]이 멸망하며 니시비스는 [[신 바빌로니아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그 역시 곧 [[아케메네스 제국]]에게 무너지며 BC 536년부터는 [[페르시아]]의 지배 하에 들어갔다. === 고대 === BC 332년, 니시비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점령되었고 이후 이어진 [[셀레우코스 왕조]] 하에서 미그도니아의 [[안티오키아]]라는 이름으로 다시 세워졌다. 이후 [[폴리비우스]]의 저술에 따르면 [[안티오코스 3세]] 메가스가 자신에게 반기를 든 [[메디아]] 총독 몰로니우스에 대한 진압을 할 때에 이 도시를 거쳐갔다고 한다. 또다른 역사가 [[플루타르코스]]에 의하면 니시비스에는 [[스파르타]]인의 후예가 거주하였다고 한다. === 로마 제국 VS 이란 제국 === ==== 로마 vs 파르티아 ==== 로마의 장군 [[루쿨루스]]의 [[아르메니아 왕국]] 원정 시에 함락된 니시비스는 이후 [[파르티아]]의 지배를 받다가 서기 '''115년''', [[트라야누스]]의 파르티아 원정의 일환으로 [[로마 제국]]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로마군은 곧 이곳에서 철수하였다. 그리고 서기 '''199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파르티아 원정 이후 니시비스는 [[로마 제국]]령 북부 [[메소포타미아]] 속주의 주도가 되었다. 그러나 이후 [[카라칼라]]가 215 - 217년의 파르티아 원정 중에 에데사에서 암살당하고 뒤를 이은 [[마크리누스]] 황제가 '''[[니시비스 전투]]''' 이후의 협상에서 북부 메소포타미아를 포기하여 니시비스는 다시 파르티아령이 되었다('''218년'''). ==== 로마 vs 사산 제국 ====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226년, 이란 제국은 파르티아 왕조에서 아르다시르의 [[사산 왕조]]로 교체되었고, 233년에 [[알렉산데르 세베루스]]의 로마 제국과의 대결은 무승부로 끝났다. 그리고 241년, [[샤푸르 1세]]의 이란 군대가 [[안티오키아]]까지 공격하자 로마 제국의 황제 [[고르디아누스 3세]]의 섭정이자 장인인 근위대장 [[티메시테우스]]가 반격에 나서 '''243년'''에 페르시아군을 격파하고 북부 메소포타미아를 재점령, 니시비스는 다시 로마령이 되었다. ===== 3세기의 위기 ===== 그러나 그 해에 티메시테우스는 진중에서 병사하며 부관 [[필리푸스 아라부스]]가 신임 근위대장이 되었고, 이듬해인 '''244년'''에 황제 고르디아누스 3세마저 암살된 후 즉위한 필리푸스 아라부스는 샤푸르 1세와 강화하고 북부 메소포타미아 속주를 재차 포기하였다. 259년, [[사산 제국]]의 [[샤푸르 1세]]가 [[안티오키아]]까지 함락하는 기염을 토하였고 이에 [[로마 제국]]의 [[발레리아누스]]가 출정하였지만 포로로 잡히며 로마는 [[시리아]] 지방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 [[팔미라]]의 호족인 오데나투스에게 통치권을 위임하였다. 그러나 [[오다에나투스|오데나투스]]가 조카에게 살해된 후 그의 아내 [[제노비아]]가 [[팔미라 제국]]을 세우며 사실상 독립하였고(267년) 니시비스는 로마 제국으로부터 더 멀어지는 듯 하였다. 로마 황제 [[아우렐리아누스]]가 272년에 팔미라를 함락하고 시리아를 회복하였지만 다음 황제 [[타키투스(황제)|타키투스]]가 276년에 이란 원정 중 사망하였다. ===== 로마 제국의 승리 ===== 이후, [[프로부스]] 황제 하에서 일시적인 안정을 회복한 로마는 다시 이란 원정을 나섰지만 도중에 시르미움에서 프로부스가 피살되었다. 이에 근위대장 [[카루스]]가 즉위하여 원정을 지속, '''283년'''에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점령하였지만 벼락에 맞아 비명횡사하며 로마군은 혼란에 빠졌고, 아들 [[누메리아누스]]도 암살되며 경호대장 [[디오클레스|디오클레티아누스]]의 인솔 하에 다시 후퇴하였다. 카루스의 아들 [[카리누스]]를 살해하고 로마 황제로 즉위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사두정치]]를 실시하며 자신이 동방의 정제가 되고 부제로 [[갈레리우스]]를 앉혔는데, 그가 '''297년'''에 나르세스 1세와 대결, 이란군을 격파하고 북 [[메소포타미아]]를 회복하며 니시비스는 다시 [[로마 제국]]령이 되었다. ===== 4세기 중반 : 공방전의 연속 ===== 312 ~ 324년간의 내전을 끝내고 사두정치를 청산하며 로마 제국의 단독 황제로 즉위한 [[콘스탄티누스]]는 337년에 사산 제국의 [[샤푸르 2세]]의 공격에 반격하러 가던중 니코메디아에서 병사하였다. 페르시아 군대는 338년, 346년, 그리고 350년에 니시비스를 포위 공격하였으나 수비대에 매번 격퇴당하였다. 그 후 359년에 샤푸르 2세가 지휘한 [[사산 제국]]군이 북 [[메소포타미아]]의 [[아미다]]를 함락시켰다. 그러자 로마 황제 [[콘스탄티우스 2세|콘스탄티우스]]는 [[갈리아]]의 부제 [[율리아누스]]에게 파병을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하자 내전에 들어갔다. 내전은 361년에 그가 병사하고 율리아누스가 즉위하며 평화롭게 끝났다. 한편, 니시비스는 360 - 363년간 제1 파르티카 군단의 주둔지였다. 율리아누스는 '''363년'''에 페르시아 원정을 떠나 [[크테시폰]]을 포위하였으나 후발대의 늦은 행군과 청야전술에 막혀 후퇴하던 중 이란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경호대장 [[요비아누스]]가 뒤를 이었고 그는 --전례대로-- 사산 제국과 강화를 맺고 북부 메소포타미아를 포기하였다. 다만 반환 이전에 대부분의 시민은 [[아미다]]로 이주되었다. ==== 동방 기독교와 학문의 중심지 ==== 니시비스는 300년 경부터 [[아시리아 동방교회]]의 주교좌가 위치하였고 이후에는 기독교의 대주교좌가 세워져 메소포타미아 북부 기독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한편, 350년에는 성 에프렘의 지도 하에 학교가 설립되었다. 363년에 로마 당국에 의해 [[에데사]]로 옮겨졌으나 489년에 [[네스토리우스파]]와의 대립을 겪은 후 다시 니시비스로 돌아왔는데, 고대 - 중세 전환기 시리아 지방 학문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 [[사산 제국]] / [[동로마 제국]] 시대 ==== 363년 이후 니시비스는 사산 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대 로마 전선의 거점이 되었다. 그리고 505년에 [[아나스타시우스 1세]]는 니시비스로부터 서쪽으로 수키로 떨어진 [[동로마 제국]] 동쪽 끝자락에 [[다라]]라는 거대 요새를 건설하여 이란의 침공에 맞섰다. 이란 측은 더이상 국경 요새를 짓지 않기로 한 422년의 협정 위반이라고 반발하였다. 508년에 다라의 요새화가 마무리된 후 양국간의 격전이 일어났으며, [[아미다]]와 [[에데사]] 역시 끝없는 공성전에 시달리며 요새화되었다. 그외에 칼리니쿰, 사탈라 등지에서도 전투가 이어졌다. ===== 6세기 전반의 대격돌 ===== 이후 527년에 신임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명으로 로마군이가 니시비스 탈환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530년, [[호스로 1세]]의 사산 왕조가 역습하여 다라를 공격하였으나 이역시 실패하였다. 531년 칼리니쿰 전투에서 [[벨리사리우스]]가 패한 후 전선은 교착화되었고, 532년에 로마 측이 110 센테나리오 상당의 금을 주며 양국간의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영원한]]' 평화 조약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540년에 [[호스로 1세]]는 [[벨리사리우스]]의 서방 원정을 틈타 협정을 깨며 시리아를 침공, 대대적으로 약탈하며 [[안티오키아]]를 함락, 시민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이에 벨리사리우스가 동부 전선에 복귀하여 이란 군대를 격파하고 니시비스를 다시 공격하였으나 함락에는 실패하였다. 이후 542년부터 지지부진한 공방전이 일어났고, 544년에는 에데사가 호스로 1세에게 5 센테나리아의 금을 바치며 포위가 풀리기도 하였다. 결국 545년에 로마 측이 연공을 바친다는 조건 하에 5년 기한의 평화 조약이 체결되었다. === 이슬람 제국기 === 아랍 인들은 쇠퇴한 도시에 수백개의 정원을 조성하여 휴양 도시로 만들었다. 하지만 10-11세기에 벌어진 [[레반트]], [[자지라]] 지역의 혼란에 휩쌓여 도시도 쇠퇴하였다. [[함단 왕조]]의 지배를 받던 니시비스는 942년과 972년에 동로마 군대에게 점령되었으나 곧 탈환되었고 [[마르완 왕조]]와 [[우카일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셀주크 제국]]의 쇠퇴 이후로는 [[아르투크 왕조]]와 [[장기 왕조]]의 지배를 거쳐 [[아이유브 왕조]]의 영토가 되었는데, 아이유브 조 치하에서 도시는 다시 번영하여 상업과 교통의 요지가 되었다. 당시 아랍 지도에 묘사된 니시비스는 성벽, 목욕탕, 대저택, 다리, 병원 등이 있는 풍족한 도시로 그려졌다. == 근대 == 1230년부터 몽골 제국([[일 칸국]]), [[잘라이르 왕조]], [[티무르 제국]], [[흑양 왕조]], [[백양 왕조]], [[사파비 왕조]]를 거친 도시는 1518년부터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현재는 터키에 위치한 인구 9만의 도시이다. 시리아와의 국경에 접해있고 건너편의 시리아 도시는 카미쉴이다. [[분류:터키의 도시]][[분류:자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