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aaaaaa><tablebgcolor=#ffffff,#191919>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rgba(50%, 50%, 50%, 30%) 0%, transparent);" {{{+1 {{{#000000,#e5e5e5 ''' 포르투갈의 前 축구선수 '''}}}}}}}}}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i.guim.co.uk/Nuno-Gomes-008.jpg|width=100%]]}}} || ||<-2><height=40><colbgcolor=#eeeeee,#191919> {{{#000000,#e5e5e5 '''이름'''}}} || '''{{{+1 누누 고메스}}} [br] Nuno Gomes''' || ||<-2><height=40> {{{#000000,#e5e5e5 '''본명'''}}} ||누누 미구엘 소아르스 페헤이라 히베이루 [br] Nuno Miguel Soares Pereira Ribeiro || ||<-2><height=40> {{{#000000,#e5e5e5 '''출생'''}}} ||[[1976년]] [[7월 5일]] ([age(1976-07-05)]세) [br]{{{-1 [[잉글랜드]] [[아마란트]]}}} || ||<-2><height=40> {{{#000000,#e5e5e5 '''국적'''}}} ||[[포르투갈]] [[파일:포르투갈 국기.svg|width=28]] || ||<-2><height=40> {{{#000000,#e5e5e5 '''신체'''}}} ||180cm, 72kg || ||<-2><height=40> {{{#000000,#e5e5e5 '''직업'''}}} ||[[축구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 ||<width=15%><height=40> {{{#000000,#e5e5e5 ''' 소속 ''' }}} ||<width=15%><height=40><bgcolor=#eeeeee,#191919> {{{#000000,#e5e5e5 ''' 선수 ''' }}} ||[[보아비스타 FC]] (1995~1997) [br] '''[[SL 벤피카]] (1997~2000)''' [br] [[ACF 피오렌티나]] (2000~2002) [br] '''[[SL 벤피카]] (2002~2011)''' [br] [[SC 브라가]] (2011~2012) [br] [[블랙번 로버스 FC]] (2012~2013) || ||<-2><height=40> {{{#000000,#e5e5e5 '''국가대표'''}}} ||79경기 29골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포르투갈]] / 1996~2011)^^ || [목차] [clearfix] == 소개 == 포르투갈의 전 축구선수. 그의 별명인 누누 고메스 중 '고메스'는 은퇴한 스트라이커이자 [[FC 포르투]]의 전설인 [[페르난도 고메스]]에게서 따온 것이다. 포르투갈의 전성기였던 1990~2000년대를 이끈 선수 중 하나로, 같은 시기 활동했던 포르투갈 선수는 [[후이 코스타]], [[파울레타]], [[루이스 피구]], [[세르지우 콘세이상]], [[주앙 핀투]] 등이 있었다. == 클럽 == === [[보아비스타 FC]] === 10살 때 아마란타 라는 이름의 클럽에서 축구를 시작하였다. 이후 보아비스타로 이적하였고, 94-95 시즌 데뷔전을 치루었다. 보아비스타에서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는데, 96-97 시즌 벤피카를 누르고 우승한 것이었다. 이 활약으로 여러 명문팀의 관심을 끌었고, 우승 직후 벤피카로 이적하게 된다. === [[SL 벤피카]] === 당시 3시즌 연속 포르투가 우승을 하며, 최고의 팀이라는 명성을 쌓는 동안 벤피카는 단 한 차례의 우승도 차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스트라이커진의 보강을 위해 누누 고메스를 영입하게 된다. 이적 후 3시즌 동안 101경기에 나와 60골을 넣었지만, 팀은 우승을 한번도 하지 못했고, 벤피카는 5시즌 연속 리그 우승을 달성에 실패하며 암울한 시즌을 보냈다. === [[ACF 피오렌티나]] === 비록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그의 리그에서의 뛰어난 활약과 더불어 [[유로 2000]]에서의 활약[* 당시 포르투갈은 4강에서 프랑스를 만나 정규시간까지 1-1을 유지하고 연장전에 돌입하여 117분 지단에게 pk실점을 하고 탈락한다. (당시 연장전 골은 골든골)]을 지켜본 피오렌티나는 17M 이라는 거금을 주고 고메스를 이적 시킨다.[* 당시 파격적인 수준의 영입이었는데, 뛰어난 활약을 한것은 사실이나, 분명히 포르투갈 리그에서 활약한 것이었고, 다른 외국 리그의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입 금액도 만만치 않은 수준이었는데, 당시 최고의 리그에서,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던 [[안드리 셰브첸코]]의 이적 금액과 비교해도 만만치 않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이적 첫 시즌만에 이탈리아 컵을 들어 올리며 성공적인 영입임을 입증했지만, 이후 실망적인 수준의 경기력을 보이며 위기설에 휘말리기 시작했다.[* 성적은 53경기 14골.] 그러던 도중 피오렌티나의 재정이 무너지며[* 당시 구단주였던 비토리오 체키 구단주의 정계 도전이 실패로 끝났고, 그와 더불어 방만한 자금 운영으로 폭탄을 맞게 되었다.] 다시 벤피카로 이적하게 되었다. === [[SL 벤피카]] === 부상으로 인해 3시즌 동안 단 70경기에 그쳤는데, 그 동안에도 국내 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04-05 시즌에는 드디어 리그 우승을 달성하였다.[* 다만 당시 기록은 23경기 7골로 부상의 여파가 지워지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이후 05-06 시즌, 최고의 시즌을 보내는데, 한 시즌동안 15골을 넣으며, 포르투를 상대로 멀티골을 기록했고, 첫 해트트릭을 기록하기도 했다. 거기에 [[비토리아 FC]]를 상대로한 포르투갈 슈퍼컵에서 유일한 골을 넣기도 했다. 06-07 시즌 부터는 위기를 맞기 시작했다. 우선 파라과이 출신의 이적생 [[오스카 카르도소]]가 맹활약을 하기 시작했으며,[* 당시 이적료는 9.2M으로 클럽 레코드 2위에 기록되는 금액이다.] 한 시즌동안 겨우 6번밖에 출전하지 못하였다. 출전 기회가 굉장히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9골을 넣으며, 나름대로 괜찮은 폼을 보여줬다. 07-08 시즌, 유로파리그에서 [[SSC 나폴리]]를 상대로 150번째 골을 넣으며 그럭저럭 서브 공격수로 괜찮은 성과를 냈으나, 08-09 시즌 [[하비에르 사비올라]]가 이적해오며 완전히 주전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10-11 시즌이 시작되었으나, 34살이 된 누누 고메스는 출전 기회를 도통 잡지 못하였고, 헤수스 감독과의 면담을 통해서만 몇 번의 출전 기회를 잡을 뿐이었다. 시즌 종료 후 그의 기록은 3경기 3골[* 상대팀은 모두 하부리그의 팀이였다.]로 암울한 시즌을 보냈다. === [[SC 브라가]] === 클럽과의 계약이 1달 남았을때, 벤피카는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고, 그렇게 은퇴수순을 밟는 줄 알았는데... 브라가에서 영입 제의가 왔고, 은퇴를 철회함과 동시에 브라가와 1년 계약을 맺는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백업 공격수로 출전하였고, 20경기에서 6골을 넣는 서브 공격수임과 나이를 고려했을때 괜찮은 성적을 남기고 떠나게 된다. === [[블랙번 로버스]] === 브라가와의 계약이 끝나고 난 이후, 당시 2부 리그에 있던 잉글랜드의 블랙번 로버스에서 2년 제의가 왔고, 그것에 동의하며 다시 한 번 축구인생을 이어갔다. [[입스위치 타운]]과의 경기에서 데뷔하였으며, [[레스터 시티]]전에서 첫 골을 넣었다. 2년 계약이 만료되자 18경기 4골의 기록을 남기고 팀을 떠났으며 그대로 은퇴했다. ==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 == 유스 시절 경기에서 55경기를 뛴, 타고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선수이다. 그 중에서는 1995 피파 유스 챔피언쉽 3위와 1996 아틀란타 올림픽 4위도 포함되어 있다. 첫 성인 국가대표 경기 데뷔는 1996년, 프랑스와의 친선경기에서 였다. 이후 [[유로 2000]]에서 데뷔 골을 넣었는데, 잉글랜드와의 2:2 상황에서 3:2로 이기는, 결승골을 넣었고, 이후 터키와의 8강전에서도 멀티골을 기록하며 팀을 4강으로 이끌었다. 이후에도 유로 2000에서 맹활약을 하며 팀의 4위를 이끌었고, 본인은 4골을 넣으며 득점 랭킹 공동 3위에 위치하였다.[* 당시 3골로 공동 5위를 한 선수 중에는 [[티에리 앙리]]와 [[세르지우 콘세이상]]이 있었다.] 다만 이후 8개월 출장 정지를 받으면서 주전 자리를 [[파울레타]]에게 내주면서 그의 은퇴 전까지 국대에선 다소 주춤한 시기를 보내야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예선에서 안도라를 상대로 4골을 넣으며 최다골 기록을 세웠으나 정작 본선에서는 미국전, 한국전 2경기 교체 출전이 전부였다. 2003년에는 21분 만에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명성을 쌓아갔다.[* 상대는 [[쿠웨이트 축구 국가대표팀|쿠웨이트]]] [[유로 2004]]에도 출전하여 스페인과의 조별리그 마지막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었다.[* 결승에서는 그리스에게 패배하였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대회 직전 부상으로 단 2경기에만 교체 출전했으며, 독일과의 3,4위전에서 골을 넣었지만 3:1로 패배했다. 이후 [[유로 2008]] 예선에서 핀란드를 상대로 동점골을 넣으며 3개의 유로 대회에서 골을 넣은 선수가 되었으며 본선에도 주전으로 활약하였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다소 많은 나이와 폼 저하로 브라질 출신 [[리에드손]], [[우구 알메이다]]에 밀려 출전하지 않았다. 여러모로 월드컵과는 운이 없는 선수다. 2011년 10월 11일, 덴마크와의 경기에 출전하여 79번째 국가대표 경기를 뛰었고, 이후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경기명단에 뽑히기도 했으나 출전하지는 않았다. == 플레이 스타일 == 명불허전 발리슛의 대가였던 선수. 순간적인 트래핑 이후 논스톱 슈팅으로 아름다운 골을 많이 넣은 선수로, [[이동국|한국의 한 축구 선수]]가 떠오른다.[* 실제로 이동국과 닮은 부분이 생각보다 많다. 훈훈한 외모를 갖추고 뛰어난 실력을 지녔지만, 해외진출에 실패한 선수가 바로 그런 점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히딩크호/포르투갈전|한국과의 3차전]]에서 결정적인 1 대 1 찬스를 잡았지만, 허무하게 [[이운재]]에게 막혔다. 덕분에 누누 고메스는 한국인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응???~~[* 왜냐하면 이때 한국이 [[박지성]]의 선제골이 터트린 후, 미국이 폴란드에게 1:3으로 지고 있던 상황인터라,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2002 동계올림픽]] [[아폴로 안톤 오노|안톤 오노]] 사건으로 반미에 격앙되어 있던 한국팬들은 미국 떨어지게 포르투갈과 비기길 바래서 은근히 포르투갈 응원을 해주는 시점이였다.] == 기록 == === 대회 기록 === * [[보아비스타 FC]] (1995~1997) * [[타사 드 포르투갈]]: 1996-97 * [[ACF 피오렌티나]] (2000~2002) * [[코파 이탈리아]]: 2000-01 * [[SL 벤피카]] (2002~2011) * [[프리메이라 리가]]: 2004-05, 2009-10 * [[타사 드 포르투갈]]: 2003-04 * [[타사 다 리가]]: 2008-09, 2009-10, 2010-11 * 수페르리가 칸디두 드 올리베이라: 2005 *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 [[UEFA 유로]] 준우승: 2004 * UEFA U-18 챔피언십: 1994 === 개인 수상 === * [[UEFA 유로]] 토너먼트의 팀: 2000 * [[프리메이라 리가]] 올해의 선수: 1998-99, 1999-2000 * 프리메이라 리가 이달의 선수: 2005년 9월ㆍ10월 * 툴롱 토너먼트 득점왕: 1996 [[분류:1976년 출생]][[분류:아마란트 출신 인물]][[분류:포르투갈의 축구선수]][[분류:보아비스타 FC/은퇴, 이적]][[분류:SL 벤피카/은퇴, 이적]][[분류:ACF 피오렌티나/은퇴, 이적]][[분류:SC 브라가/은퇴, 이적]][[분류:블랙번 로버스 FC/은퇴, 이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