賴宏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촉나라의 인물. [[뇌공#s-1|뇌공]]의 아들. 승상서조령사를 지냈고 [[제갈량]]이 남중을 평정한 후에 위나라에서는 [[조비]]가 사망하면서 [[조예]]가 즉위하면서 227년에 [[제갈량]]이 [[유선(삼국지)|유선]]에게 허락받고 나라에 장래에 대한 걱정과 스스로에 대한 다짐을 담은 글인 [[출사표]]를 올렸다. 이후 제갈량이 촉군을 이끌고 위나라를 공격하는 북벌을 개시하자 제갈량을 수행해서 한중으로 갔지만 요절했으며, 제갈량은 이를 애석하게 여겼다. 이로 인해 제갈량이 [[장예]], [[장완]]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인재를 잃은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야기했는데, 영사에서는 뇌굉을 잃고 연속에서는 [[양옹]]을 잃어 조정에 크나큰 손실이 되었다고 말한 것으로 볼 때 뛰어난 인재였던 것으로 보인다. 관직으로 볼 때 제갈량 밑에서 문서를 담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 미디어믹스 == 소설 [[삼국지 마행처우역거]]에서는 비관이 위나라의 목민관 창자를 죽인 일로 감옥에 들어갈 때 비시가 정굉과의 말다툼으로 옥사에 들어갔는데, 뇌굉은 그냥 말다툼이 아니라 경학을 신랄하게 비판하셨다는 말을 했다가 비시로부터 끼어들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다. 비관이 살려야겠다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놀라면서 비관이 원래는 누구를 죽이려 한 것이었는지 오해했다. 촉 내부에서 관학파와 경학파가 다투었고 뇌공이 허자와 친했는데, 뇌굉은 허자의 학문을 존경하지만 정치적 식견에는 동조하지 않아 가까이하면 안된다고 했다가 뇌공이 아직 어려서 뭘 모른다면서 아버지 뇌공이 정신차리라는 이유로 보내서 감옥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비관이 감옥에서 뇌굉을 보고 지병을 치료해 건강을 챙길 수 있도록 양옹과 함께 이당지에게 갈 수 있게 하기로 약속한다. [[분류:촉한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