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대한민국의 국보 121~150호)] ||<-2><tablealign=right><tablewidth=360><tablebgcolor=#315288><tablebordercolor=#315288><bgcolor=#fff> [[파일:정부상징.svg|width=28]] '''[[대한민국의 국보|{{{#f39100 대한민국 국보 제125호}}}]]''' || ||<-2> {{{#fff {{{+1 '''녹유골호(부석제외함)'''}}}[br]{{{-1 綠釉骨壺(附石製外函)}}}}}} || ||<-2>{{{#!wiki style="margin: -10px"; margin-top: -5px; margin-bottom: 16px" [include(틀:지도, 장소=국립중앙박물관, 너비=100%, 높이=100%)]}}}|| ||<width=80> '''{{{#fff 소재지}}}''' ||<bgcolor=#fff>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 || '''{{{#fff 분류}}}''' ||<bgcolor=#fff> 유물 / 생활공예 / 토도자공예 / 녹유 || || '''{{{#fff 수량/면적}}}''' ||<bgcolor=#fff> 1개 || || '''{{{#fff 지정연도}}}''' ||<bgcolor=#fff> 1967년 6월 21일 || || '''{{{#fff 제작시기}}}''' ||<bgcolor=#fff> [[통일신라시대]](8세기) || [[파일:국보125호녹유골호부석제외함.jpg|width=535]] [목차] == 개요 == 綠釉骨壺(附石製外函). 녹유골호(부석제외함)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토기|신라 도자기]]의 세트로, 시신을 [[화장(장례)|화장]]하고 나온 [[뼛가루]]를 담는 뼈단지 [[항아리]]와 뼈단지를 담는 돌함으로 구성되어 있다. 녹유골호(부석제외함)이라는 이름을 풀이해 보면, 녹유(綠釉)를 발라 만든 뼈항아리와 이와 함께 딸린 돌로 된 바깥 함이라는 뜻이다. 녹유란 구리 성분을 포함시킨 유약으로 이를 도자기 등에 입히면 그 표면이 녹색을 띄게 된다.[* 출처 : [[https://ko.dict.naver.com/ko/entry/koko/bfadf2b18eb949a5a83342d446774443|네이버 국어사전 : 녹유2 綠釉]]] 뼈항아리는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된 뒤 불교의 영향을 받아 [[장례]] 방식이 매장 대신 화장으로 바뀌면서 생긴 장례 문화인데, 화장하여 나온 뼛가루를 담아 매장하기 위한 용도로 쓰였다. 대체로 뼈단지는 하나였으리라 추정하나, 본 유물처럼 뼈단지를 담는 외함까지도 갖추어 매장하는 경우도 종종 있던 것으로 보인다. 녹유골호(부석제외함)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딱히 알려진 것이 없고 출토지가 [[경주시|경주]]라는 것만이 전해지는데, 이는 본 유물이 [[일제시대]]에 불법으로 [[도굴]]되고 일본으로 불법적으로 유출되는 과정에서 관련 정보들이 실전된 것으로 보인다.[* 혹은 도굴품을 장물로서 용이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관련 정보를 누락시켰을 가능성도 있다.] 본 뼈항아리 세트가 일본으로 유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의 항복|일제가 패망]]했다고 전하는데, 전후의 혼란 상황에서 어찌저찌하다가 [[도쿄국립박물관|도쿄박물관]]으로 흘러들어갔고 그곳에 몇 년간 소장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한일국교정상화]]를 꾀하던 [[제3공화국|박정희 정권]]이 [[한일협정반대운동|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하여, 1965년 6월 22일 일본과 채결한 [[한일협정]]의 부속협정 가운데 하나인 [[한일기본조약#s-7|문화재 협정]]에 따라 고향으로 반환된 극소수의 유물 중 하나가 바로 녹유골호(부석제외함)이다.[* 이 문화재 협정은 대단히 문제가 많은데, 협정 문구 상 반환이 아니라 인도의 성격으로 문화재 반환이 이루어지는 것이었고 그나마도 당시 일본인 소유주의 자발적인 기증이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명시되어 있어서 사실상 별다른 효력이 없는 엉터리 속 빈 깡통 협정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도 본 협정에 따라 대한민국으로 반환된 문화재는, 일제시대에 마구잡이로 반출된 막대한 유물들의 양을 생각하면,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녹유골호(부석제외함)는 일본으로부터 반환 받은 뒤 1967년에 [[대한민국의 국보|국보]] 제125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 내용 == [[파일:국보125호녹유골호.jpg]] 녹유골호는 높이 16cm, 입지름 15.3cm의 작은 뼈항아리고, 이에 딸린 석제외함(돌함)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높이 43cm, 지름 45cm의 크기이다. 뼈항아리와 돌함의 형태는 둘 다 뚜껑과 몸체로 이루어져 있는데, 뼈항아리는 표면에 정교한 문양으로 장식이 되어 있고 돌함은 화강암을 깎아 다듬어 만든지라 화려한 장식이 없지만 뚜껑은 [[연꽃]][* 또는 [[국화#s-1]]꽃으로도 본다.] 모양으로 단정하게 만들어졌다. [[파일:Resized_20201017_162329.jpg]] [[파일:Resized_20201017_162410.jpg]] 뼈항아리의 표면에 새겨진 장식은 정교하고 화려하여 그 수준이 높다고 평가 받는데, 뚜껑이나 몸체에 모두 다양한 기하학적인 문양과 꽃무늬로 가득 장식을 해놨다. 뚜껑의 꼭대기는 평평하게 처리했는데 그 가운데에는 큰 꽃무늬가 있고 이 둘레로 작은 꽃무늬와 자잘한 선을 번갈아가며 배치하였다. 몸체도 마찬가지로 꽃무늬와 선이 교대로 이어지는데 빽빽한 선과 꽃무늬가 잘 어울리게 배치됐다. 뚜껑과 몸체에 입힌 녹유는 약간 탁한 녹색빛을 띄는데, 만들어진지 천 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음에 따라 여기저기 녹유가 벗겨진 부분도 많지만 여전히 그 색은 대체로 잘 남아 있다. 구형의 돌함에는 화려한 장식은 없지만, 표면을 잘 다듬어서 전체적으로 둥그런 꽃 모양을 연상시킨다. 돌함 뚜껑의 꼭대기에는 꼭지가 달려 있고 꼭지로부터 선이 아래로 내려오는데, 이는 선이 생기도록 선의 양 옆을 깎아서 만든 것이다. 뚜껑의 꼭지로부터 내려오는 선은 몸체에도 이어져서 몸체 아래로 쭉 연결되게 만들어놨다. 녹유골호와 돌함에 대해서 더 전해지는 자료가 없어 출토지나 제작시기와 같은 정보를 알 수 없기에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본 유물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신라시대의 뼈항아리들 가운데 조형 수준이 가장 높고, 뼈항아리를 담는 돌함까지 모두 온전하게 보존되어서 신라시대의 장례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로 평가된다. 녹유골호(부석제외함)은 뼈항아리 그 자체 뿐만 아니라 이를 담는 외함까지 같이 세트로 전해져서 보존상태가 아주 우수하고, 신라시대의 장례 문화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라는 점 등의 가치를 인정 받아 1967년 6월 21일 국보 제125호로 지정되었다. == 바깥고리 == * [[https://ko.wikipedia.org/wiki/녹유골호|한국어 위키백과 : 녹유골호]]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33800&cid=46657&categoryId=46657|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녹유골호(부석제외함)]]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214344&cid=51293&categoryId=51293|e뮤지엄 : 돌함과 뼈단지(녹유골호)]]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77493&cid=40942&categoryId=33380|두산백과 : 녹유골호(부석제외함)]] == 국보 제125호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1250000,11&pageNo=5_1_1_0|문화재청 홈페이지 : 녹유골호(부석제외함) (綠釉骨壺(附石製外函))]] >골호란 불교에서 시신을 화장한 후 유골을 매장하는데 사용된 뼈 항아리로, 삼국시대 후기부터 고려시대까지 성행하였다. > >뚜껑에 둥근 꼭지가 달리고 꽃잎모양으로 각이진 화강암으로 된 외함속에서 발견된 이 골호는 몸체와 뚜껑에 녹색유약을 입힌 높이 16㎝, 입지름 15.3㎝의 통일신라시대 뼈 항아리이다. > >몸체에는 도장을 찍듯 점선과, 꽃무늬로 가득 장식하였다. 골호 중에는 이처럼 무늬를 찍어서 장식한 뒤 유약을 바른 시유골호(施釉骨壺)가 몇 점 전해지는데, 이 골호는 그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분류:대한민국의 국보]][[분류:신라의 도자기]][[분류: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