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미합중국 부통령)] ---- [include(틀:역대 뉴욕 주지사)] ---- ||<-2><tablebordercolor=#0D164A><tablewidth=450><tablealign=right><tablebgcolor=#fff,#1f202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ECECEC, #FFF 20%, #FFF 80%, #ECECEC)" '''[[미합중국 부통령|{{{#0D1635 미합중국 제41대 부통령}}}]][br]{{{#0D1635 {{{+1 넬슨 올드리치 록펠러}}}[br]Nelson Aldrich Rockefeller}}}'''}}}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Nelson_Rockefeller.jpg|width=100%]]}}} || ||<width=100><#ECECEC><|2> {{{#0D1635 '''출생'''}}} ||<(> [[1908년]] [[7월 8일]] || ||<(> [[미국]] [[메인 주]] 바하버 || ||<#ECECEC><|2> {{{#0D1635 '''사망'''}}} ||<(> [[1979년]] [[1월 26일]] (향년 70세) || ||<(> [[미국]] [[뉴욕 주]] [[뉴욕]] || ||<#ECECEC><|4> {{{#0D1635 '''재임기간'''}}} ||<#f5f5f5,#2d2f34><(> 제49대 뉴욕 주지사 || ||<(> [[1959년]] [[1월 1일]] ~ [[1973년]] [[12월 18일]] || ||<#f5f5f5,#2d2f34><(> 제41대 [[미국 부통령|부통령]]|| ||<(> [[1974년]] [[12월 19일]] ~ [[1977년]] [[1월 20일]]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tablebgcolor=#fff,#1f2023><tablewidth=100%><width=100><#ECECEC> {{{#0D1635 '''부모'''}}} ||<(> 아버지 [[https://en.wikipedia.org/wiki/John_D._Rockefeller_Jr.|존 데이비슨 록펠러 주니어]][br]어머니 [[https://en.wikipedia.org/wiki/Abby_Aldrich_Rockefeller|애비 올드리치]] || ||<#ECECEC> {{{#0D1635 '''배우자'''}}} ||<(> 메리 토드헌터 클라크[br]마가레타 피틀러 머피 || ||<#ECECEC> {{{#0D1635 '''자녀'''}}} ||<(> 장남 : 로드먼 클라크 록펠러[br]장녀 : 앤 록펠러[br]차남 : 스티븐 클라크 록펠러[br]차녀 : 메리 록펠러[br]3남 : 마이클 클라크 록펠러[br]4남 : 넬슨 록펠러 주니어[br]5남 :마크 피틀러 록펠러 || ||<#ECECEC>'''{{{#0D1635 친인척}}}'''||<(> 조부 [[존 데이비슨 록펠러]][br]외조부 넬슨 올드리치 || ||<#ECECEC> {{{#0D1635 '''종교'''}}} ||<(> [[개신교]] {{{-2 ([[침례회]])}}} || ||<#ECECEC> {{{#0D1635 '''학력'''}}} ||<(> [[다트머스 대학교]] {{{-2 (경제학과 / 졸업)}}} || ||<#ECECEC> '''{{{#0D1635 정당}}}''' ||<(> [include(틀:공화당(미국))] || ||<#ECECEC> {{{#0D1635 '''약력'''}}} ||<(> 제41대 뉴욕 주지사[br]미국 제41대 [[미국 부통령|부통령]] ||}}}}}}}}}|| [목차] [clearfix] == 개요 == [[미국]]의 제41대 [[미국 부통령|부통령]]. 유명한 록펠러 가문 출신으로, [[존 데이비슨 록펠러]]의 손자이며 7명의 자식이 있었다. == 생애 == [[1908년]] 미국 [[메인 주]] 바하버에서 태어났다. [[다트머스 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가문의 비즈니스와 자선사업을 도우며 뉴욕 근대미술관장 등을 지내다 [[FDR]], [[트루먼]] [[민주당(미국)|민주당]] 행정부 시절 국무부 남미 담당 차관보, 보건교육후생부 차관 등을 지냈다. 이후 [[1954년]] [[공화당(미국)|공화당]] [[아이젠하워]] 대통령 특별보좌관에 임명됐다. 그렇게 1956년까지 보좌관직을 수행하다 [[1958년]] [[뉴욕 주]]의 주지사 선거에 당선되어 [[1959년]]부터 뉴욕 주지사로 지냈고, 재선, 3선, 4선에 성공해 [[1973년]]까지 뉴욕 주지사로 있었다. 이시기 그는 공화당에 큰 영향력을 끼쳐 이른바 '''록펠러 공화당'''이란 명칭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사상은 공화당내 리버럴 포지션으로, 낙태, 동성애 등 각종 사회 이슈에 관용적이며, 시장만능주의, 감세지상주의를 경계하고 복지 정책 등에 있어 정부의 역할을 중시했다. 이런 그의 노선은 1980년대 [[신자유주의]]와 강경 대외정책, 전통적 가치관 고양 등을 기치로 내건 이른바 [[신보수주의]]자들이 득세하기 전까지 공화당의 주류 노선을 이뤘다. 1970년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사임으로 [[미국 부통령|부통령]]이던 [[제럴드 포드]]가 대통령이 되어 부통령직이 공석이 되자 [[제럴드 포드]]에 의해 부통령에 지명되었다. 허나 [[1976년]] 미국 대선에서 [[제럴드 포드]]를 누르고 [[지미 카터]]가 당선되자 부통령직을 퇴임했다.[* 선거 전부터 이미 재선 출마를 포기한 상태였다. 1976년 대선에서 포드의 러닝메이트는 넬슨 록펠러가 아니라 이후 1996년 대선에서 클린턴에게 패하는 [[밥 돌]]이었다.] 돈도 많겠다 퇴임 후에도 유유자적하게 산걸로 보이는데, 퇴임 2년 후인 [[1979년]] 본인의 비서와 [[복상사|섹스를 하다가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좋은건지 나쁜건지-- == 기타 == 여러차례 대통령직에 도전했는데, 가장 가까이 간건 1964년 대선. 공화당의 유력주자였으나 여러 후보들이 난립한 끝에 [[배리 골드워터]]에게 패배한다. 골드워터는 온건파 성향인 넬슨과는 대비되는 강경한 인사였기 때문에 록펠러는 골드워터를 꺼려했다. 그 때문인진 몰라도 골드워터 역시 포드 대통령이 록펠러를 부통령으로 지명했을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리처드 닉슨]]이 1960년 대선 후보가 됐을때도 경선 경쟁자였던 록펠러에게 부통령 후보직을 제안했지만 거절했다. 불과 얼마전인 1959년에 [[뉴욕주|뉴욕]] 주지사가 됐는데 허수아비 소리듣던 [[미국 부통령]]이 되고 싶지는 않았을 듯. 그의 삶에 있어 최고 전성기는 인생 막판 포드 대통령 시절 2년 하고 그만이었던 부통령직보단 실권을 행사하면서 4선을 지낸 뉴욕 주지사 시절이었다고 보는게 더 맞을듯. 물론 부통령 출신이 이후 대통령이 되는 케이스도 꽤 생겨나고 있는걸 보면 이때 부통력직을 수행하는게 나았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와선 모든게 가정의 영역이긴 하다. 대통령은 되지 못했지만 당시 공화당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던 온건파의 대표격 인물이었고, 관직운도 나름 좋았기에 대통령이 될 기회도 여러번 있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위에서 설명한 1964년 경선과 닉슨에 이어 2등을 한 1968년 경선이 있겠고[* 1960년 대선에도 출마했지만 당선권의 후보는 아니었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스피로 애그뉴]]가 사임한 뒤 닉슨은 그를 새 부통령으로 고려했는데, 여기서 그가 선택되었다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닉슨의 후임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아픔이 있었는데, 인류학도였던 막내아들 마이클 록펠러가 1961년 11월 [[뉴기니]] 원주민을 조사하러 떠났다가 [[실종]]되는 일을 겪었다. 여러 정황상 뉴기니 원주민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2/26/2014122601498.html|#]] 세계 유수의 재벌가인 록펠러 가문 출신으로 정계 유력인사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국내에선 현대가의 [[정몽준]] 전 의원과 비슷한 포지션 같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러나 정치 성향은 정몽준 전 의원보다 좀 더 중도에 가까운 편이며, 특히 사회문화적으론 현재 공화당과는 거리가 먼 리버럴한 축에 속한다.[* 사실 지금도 상류층 중엔 이런 식의 경제적 중도~보수, 사회적 진보~리버럴들이 생각보다 많다.] 특이한 일화가 있는데, 그가 주지사 시절 높은 아파트에서 살 때 고층건물을 짓는 계획이 세워져 전망이 방해받게 되자 그 계획의 담당자인 미드 에스포시토 민주당 당수를 집으로 초청해 [[피카소]] 그림을 줄테니 계획을 취소하라는 제안을 한다. 그리고 에스포시토가 그것을 받아들여 피카소 그림을 주게 되는데, 훗날 록펠러는 그 그림이 '''모조품'''이었다고 회고했다.(...) --재벌이 사기를 치다니-- [[분류:미국 부통령]][[분류:미국 주지사]][[분류:1908년 출생]][[분류:1979년 사망]][[분류:심혈관질환으로 죽은 인물]][[분류:돌연사한 인물]][[분류:온건 공화당원]][[분류:미국 대통령 자유 훈장]][[분류:메인 주 출신 인물]] [[분류:다트머스 대학교 출신]] [[분류:독일계 미국인]][[분류:미국 공화당 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