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의령 남씨]][[분류:의령군 출신 인물]][[분류:1878년 출생]][[분류:1918년 사망]][[분류:건국포장]][[분류: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 || 성명 ||남종우(南宗祐) || || 본관 ||[[의령 남씨]][* 25세손 우(祐) 항렬.] || || 생몰 ||[[1878년]] [[8월 6일]] ~ [[1918년]] [[11월 18일]] || || [[출생지]]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성황리[* [[의령 남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남상순(1878)|남상순]]과 [[남병우]]도 이 마을 출신이다.] || || 사망지 ||[[경상북도]] [[영덕군]] || ||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모역 || || 추서 ||건국포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3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남종우는 1878년 8월 6일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성황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4년 8월 일제가 정곡면 일대의 토지를 국유지로 편입시켜 조선농민주식회사에 맡기고 임시토지 조사국원을 파견해 해당 지역의 측량을 감행하려 하자 이에 반발하여 [[전중진]]·[[남병우]]·[[이진우(1864)|이진우]] 등과 함께 토지 측량을 저지하기로 결의했다. 이후 그는 700명의 주민을 모아놓고 토지측량은 동민의 권리를 무시한 압제의 작업이니 단언코 방해해야 한다고 주장해 호응을 얻어냈다. 그 후 남종우는 8월 26일과 27일 이틀에 걸쳐 주민들과 함께 임시토지조사국원의 토지측량을 방해하고 조사국원을 안내하던 박기양(朴璂陽)을 구타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5년 2월 2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른 후 석방되었지만 고문의 후유증은 이기지 못하고 1918년 11월 1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남종우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