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 align=right><bgcolor=white><:>[[파일:남윤구.jpg|width=300px]] || || 성명 ||<(> 남윤구(南潤九) || || 생몰 ||<(> [[1892년]] [[4월 2일]] ~ [[1960년]] [[8월 10일]] || || [[출생지]] ||<(> [[함경북도]] [[무산군]] 동면 능선리 || || 사망지 ||<(> [[서울특별시]] || || 추서 ||<(> 건국포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82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남윤구는 1892년 4월 2일 함경북도 무산군 동면 능선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21일 함북 청진에서 [[3.1 운동]]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태형 90도를 맞았다. 이후 1924년 4월에 조직된 조선노농총동맹(朝鮮勞農總同盟)의 결성과정에 참여하여 50명의 중앙위원중 한 명으로 선출되었으며, 청진 일대를 중심으로 노동자, 농민의 권익 옹호 투쟁을 펼쳤다. 또한 1925년 4월 조선노농총동맹의 서울청년회 계열이 주도한 전조선노농대회(全朝鮮勞農大會)의 준비에도 참여했으며, 조선노농총동맹이 조선노동총동맹과 조선농민총동맹으로 분열될 때 조선노동총동맹의 24명의 중앙집행위원 중 한 명으로 선출되었다. 1930년대 초에는 [중앙일보] 청진지국장을 운영하였다. 1929년 7월 존선노동총동맹 중앙지도기관이 보선되었을 때 재차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으며, 조선청년총동맹(朝鮮靑年總同盟)과 [[신간회]]에도 가입했다. 그러나 1930년 12월 경찰에 체포되어 청진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서울에서 조용히 지내다 1960년 8월 1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남윤구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무산군 출신 인물]][[분류:1892년 출생]][[분류:1960년 사망]][[분류:건국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