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 align=right><bgcolor=white><:>[[파일:남상목.jpg|width=300px]] || || 이름 || 남상목 || || 한문 || 南相穆 || || 호 || 동천(東泉) || || 생몰년도 || 1876년 4월 12일 ~ 1908년 11월 4일 || == 개요 == 남상목은 구한말의 [[의병]]장이자 [[독립유공자|독립운동가]]이다. == 생애 == 남상목은 어려서부터 힘이 셌다고 한다. [[러일전쟁]]이 한창이던 1904년에는 일본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조선을 상대로 수탈을 했는데 남상목이 살던 곳에서는 3개 면에 있던 나무를 모두 베어 주민들에게 운반하게 시켜놓고는 보상금을 한푼도 주지 않은 일이 있었다. 이 일을 보고 남상목은 일본인 감독관이던 나가이를 두들겨 팼다. 이 사건으로 헌병대에 체포되어 곤욕을 치뤘지만, 반일정신과 민족의식을 쌓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을사조약]]이 체결돼 외교권이 강탈당하고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난다. 남상목은 제천에 활동하던 [[이강년]]의 부대에 들어가 일본군과 싸웠다. 1908년 8월에는 용인~충주에서 활동한 50명의 의병을 이끄는 의병장이 되었다. 의병들은 충북 음성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 패했으나 일본군에도 꽤 피해를 입히는데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1908년 11월에 경기도 광주에서 가족을 만나러 가다 잠복해있던 일본 헌병에게 체포된다. [[서대문형무소]]로 끌려가 고문을 받다 장 파열로 인해 11월 4일에 순국한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 참고 자료 == * 정상규 저. <잊혀진 영웅들, 독립운동가>. 휴먼큐브. 2017년. 248~249p [[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조선 의병장]][[분류:건국훈장 애족장]][[분류:1876년 출생]][[분류:1908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