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명 ||남상돈(南相敦) || || 생몰 ||[[1888년]] [[12월 9일]] ~ [[1921년]] [[6월 6일]] || || [[출생지]] ||[[충청남도]] [[서산시|서산군]] 대호지면 도리리[br](現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도이리) || || 사망지 ||[[충청남도]] [[당진시|당진군]] || ||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남상돈은 1888년 12월 9일 충청남도 서산군 대호지면 도리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일 고종 황제의 장례식에 참석한 후 파고다공원에서의 독립만세 시위에 참가했다. 이후 귀향하여 동지인 이대하(李大夏), [[남상락]](南相洛), [[남상집]](南相集), [[남윤희(독립운동가)|남윤희]](南潤熙), [[남상은]](南相殷)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계획하고 태극기 등을 준비했다. 1919년 4월 4일, 그는 충남 서산군 대호지면 도리리와 천의리 장터에서 수백명에 이르는 군중을 규합한 뒤 독립만세를 고창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10월 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공소했고, 그해 12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충남 당진군에서 요양 생활을 했으나 끝내 고문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1921년 6월 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6년 남상돈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그의 유해는 2008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당진시 출신 인물]][[분류:1888년 출생]][[분류:1921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분류: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