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경주시의 관광)] [include(틀:경주역사유적지구)] ||<tablewidth=360><tablealign=right><bgcolor=#fff><tablebordercolor=#315288> [[파일:정부상징.svg|width=28]] '''[[대한민국의 사적|{{{#f39100 대한민국의 사적}}}]]''' '''{{{#f39100 제311호}}}''' || ||<bgcolor=#315288> {{{+1 {{{#fff '''경주 남산 일원'''}}}}}} {{{-1 {{{#fff 慶州 南山 一圓}}}}}} {{{-1 {{{#fff Gyeongju Namsan Mountain}}}}}} || ||<bgcolor=#fff> {{{#!wiki style="margin: 0 -12px; border-right: 2px solid transparent; border-left: 2px solid transparent"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1px; margin-top: -6px; margin-bottom: -5px" ||<tablewidth=100%><tablebgcolor=#315288><width=22%> '''{{{#fff 소재지}}}''' ||<bgcolor=#fff>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일원 || || '''{{{#fff 분류}}}''' ||<bgcolor=#fff> 사적 || || '''{{{#fff 면적}}}''' ||<bgcolor=#fff> 19\,099\,000㎡ || || '''{{{#fff 지정연도}}}''' ||<bgcolor=#fff> 1985년 2월 23일 || || '''{{{#fff 제작시기}}}''' ||<bgcolor=#fff> [[삼국시대]] || ||<-2> '''{{{#fff 위치}}}''' || [include(틀:지도, 장소=, 너비=360)]}}}}}}}}} || ||<-2> [[파일:attachment/unesco-worldheritage.png]] || ||<-2> '''[[유네스코]] [[세계유산]]''' || ||<|2> 이름 ||[[경주역사유적지구]][* [[석굴암]], [[불국사]], [[양동마을]] 제외] || ||Gyeongju Historic Areas /[br]Zones historiques de Gyeongju || ||국가·위치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 ||<-2>[include(틀:지도, 장소=경주 남산, 높이=224px, 너비=100%)]|| ||등재유형 ||문화유산 || ||등재연도 ||[[2000년]] || ||등재기준 ||(ii)[*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 (iii)[*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 [[파일:/image/032/2007/08/02/7h02k13b.jpg]] [목차] == 개요 == [[경상북도]] [[경주시]] 시가지 남쪽에 있는 산이다. 옛 [[신라]] 수도 [[서라벌]]의 앞마당으로 수많은 불교 문화재가 산 곳곳에 있는 전국에서 가장 문화재 밀집도가 높은 산으로 [[국립공원]] 및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되었다. == 역사 == 옛 [[신라]] 사람들은 산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3산(나력산·골화산·혈례산) [[한국의 오악|5악]](동악 [[토함산]]·서악 [[계룡산]]·남악 [[지리산]]·북악 [[태백산]]·중악 [[팔공산]])과는 별도로 신성시되었던 곳으로, [[화백회의]]가 이 산의 오지암(亐知巖)이라는 바위 위에서 열리기도 했다. 현대에 재건된 [[월정교]]는 신라 왕궁 [[경주 월성]]과 이 산을 잇기 위한 다리였으며, 삼국유사를 보면 신라 왕과 귀족, 화랑들도 남산 위에 자주 행차했음을 알 수 있다. == 탐방 == ||[youtube(XxJ98WB6ikA)]|| || 남산 소개 영상 || 금오봉(468 m)과 고위봉(494 m)의 두 봉우리에서 내려오는 40여 개의 계곡과 산줄기들로 산세를 이루며, 한국의 웬만한 산들 중 문화재가 한둘쯤 있는 곳은 많지만, 남산은 뻥 좀 보태면 [[불상]] 없는 계곡이 없는 수준이라 노천 [[불교]] [[박물관]]이라 하겠다. 절 터만 해도 100여 곳, 석불 80여 좌, 석탑 60여 기가 산 전체에 널렸고, 등산로 하나만 보물급 유적을 계속 지난다.[* 이러한 불교유적들 중 몇몇은 [[숭유억불]]을 시행했던 [[조선]]시대 때 [[양반]]들에게 파괴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었다. [[안습]]. 남산의 많은 불상들의 목과 얼굴을 자세히 보면 부서지고 다시 보수한 흔적이 있는 것이 많다. 힘을 들여 완전히 분쇄하는 것보다는 부수기 쉽고 상징성이 큰 머리와 안면, 목 부위만 훼손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 만들다 만 불상이 산꼭대기에 있는 등 여러 정황으로 보아 남산의 [[화강암]]을 가지고 석수들이 실습을 한 것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다. 불교 유적 외에 남산신성과 같은 [[산성]] 유적도 있는데 여기서 거대한 군량창고 유적이 발견되기도 해 조선의 [[남한산성]] 비슷한 역할을 했다고 추정된다. 보통 [[등산]]하러 가는 산들에 비교하면 해발고도 5백 미터도 안 되는 남산은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정상까지 바로 질러가는 단순 등산이 아니라 문화재도 겸사겸사 볼 목적이라면, 문화재들이 등산로 한 줄 옆에 줄지어있는 것은 아니므로 샛길들을 들락날락하다보면 평소에 [[등산]] 안 하는 사람은 상당히 힘들다. 게다가 문화재의 재료가 되었을 단단한 화강암 바위들로 꽉 차있는 돌산이라 낮은 높이치고는 피곤할 수도 있다. 한 번 올라서 하루 날 밝은 동안 주요 문화재를 전부 보는 것은 체력의 문제를 떠나 시간관계상 어려운 편이니 남산에 올라가볼 생각이면 언제든 올 수 있는 인근 주민이 아닌 이상, 오르기 전에 전체 지도를 보면서 루트를 선택할 필요가 있다. 남산 서남쪽 [[배동 삼릉]]에서 시작해 올라가는 삼릉곡 코스가 문화재가 많고 경치도 좋고 난이도도 낮아 무난하다. 산 위의 불교 관련 유적을 빼더라도 서쪽 기슭에 있는 [[나정]]은 신라의 첫 임금인 [[박혁거세]]가 태어난 설화가 전해지는 우물이며 양산재는 박혁거세 이전 서라벌의 여섯 촌장을 모신 사당이다. 신라 말 [[경애왕]]이 [[후백제]][[왕]] [[견훤]]에게 털린 현장인 [[포석정]]이나 [[경애왕릉]], [[배동 삼릉]] 등이 남산 바로 서쪽 아래에 있다. 남산 동쪽 자락에도 감실부처 같은 문화재가 줄지어 있어서 본격적인 등산이 부담된다면 하이킹 수준 난이도인 서남산, 동남산 코스로 걸을 수도 있다. 외국인들이 하이킹을 좋아해서인지 은근히 보인다. == 기타 == [[조선]] 후기에는 [[안경]]으로 유명하기도 했다. 남산에서 채취한 [[수정]]을 갈아가지고 안경을 만들었는데 이 안경은 고급 명품 취급을 받아서 돈이 많고 눈이 나쁜 사대부들 사이에서 각광받았으며 일제강점기 때까지도 이어져왔지만 해방 이후로 안경제작 기술이 들어오고 서양안경들이 대량으로 들어오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의 5개 지구 중 하나인 남산 지구이다. [[산림청]]에서 선정한 [[대한민국 100대 명산]]에도 이름을 올렸다. [[김시습]]이 한국 최초의 소설 [[금오신화]]를 쓴 곳이 이 산에 있던 용장사다. '금오'는 남산의 주봉우리인 금오봉을 의미한다. == 관련 항목 == *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 *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약사여래좌상]] *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 [[경주 남산 신성비]] * [[경주 남산 용장계 석조약사여래좌상]] *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 [[경주 남산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 *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 *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 [[남산순환로]]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남산, version=97)] [[분류:경주역사유적지구]][[분류:대한민국의 사적]][[분류:경주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