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조선의 별궁과 궁가]][[분류:행궁]][[분류:한강]][[분류:조선 시대의 없어진 건축물]] [include(틀:조선의 별궁과 궁가)] [include(틀:조선 3대 이궁)] ||[[파일:낙천정.jpg]]|| || 낙천정의 모습[* 현재 위 사진의 낙천정은 위치도 다르고 형태도 달라서 문화재적 가치가 없다.] || == 개요 == [[태종(조선)|태종]]의 별궁이자 조선 초기의 3대 이궁 중 하나였던 궁.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이름은 《주역》 - 〈계사(繫辭)〉에 나온 ‘낙천지명고불우(樂天知命故不憂)’에서 따왔다. '하늘(天)을 즐기고(樂) 명(命)을 알면(知) 근심(憂)이 없다(不)'는 뜻이다. 건립 당시 상왕 태종의 명을 받아 [[좌의정]]이었던 [[박은]]이 지었다. == 위치 == 지금의 [[서울특별시]] [[광진구]] [[자양동(광진구)|자양동]]에 위치했다. 한강변에 위치한 대산(臺山)이란 산 정상에 있었다. 낙천정이 위치한 대산은 표고 42.8m로 시루를 엎어 놓은 모양과 비슷하다고 하여 ‘시리미’라고도 불렸다. 주변에 다른 높은 지형이 없어 아름다운 한강을 조망할 수 있었다. == 역사 == 1418년(태종 18년)에 [[세종(조선)|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물러난 태종이 그 해 9월에 이궁으로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인 1419년(세종 1년) 2월에 완공되었다.[* 그무렵, [[한성]] 서쪽에 [[연희궁]], 동쪽에 [[풍양궁]], 남쪽에 [[낙천정]]을 건립합으로서 태종이 머물 3개의 이궁을 지었다.] 변계량이 지은 《낙천정기(樂天亭記)》에 의하면 태종이 바람을 피해 언덕의 간방(艮方) 모퉁이에 이궁을 짓도록 했고, 언덕 위에 정자를 짓도록 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변계량이 지은 《낙천정기》는 판한성부사 권홍이 쓰고 판각하여 정자에 걸었다고 한다. [[문종(조선)|문종]]과 [[중종(조선)|중종]] 대에 수리했다. [[인조]] 연간까지는 기록에 보이나 그 이후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로 미루어 보아서는 낙천정 또한 조선후기에 이르러 관리되지 못하고 방치되다가 자연스레 무너져 없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용도 == 상왕 태종을 위해 지었기에 태종과 세종이 이곳에 자주 들러 매사냥을 즐기고 연회를 열었다. [[세조(조선)|세조]]는 [[단종(조선)|단종]]과 함께 낙천정에서 매사냥과 고기 잡는 모습을 보고 즐기기도 했다. 그리고 [[성종(조선)|성종]] 또한 낙천정에서 열병과 활쏘기를 구경하였다. 그 밖에도 조선시대의 왕들은 [[명나라]] [[사신]]이 왔을 경우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기도 하였다. [include(틀:표절, version=1~9, source=sillok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