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주 임씨]] [목차] == 개요 == 나주 임씨(羅州 林氏)는 고려의 대장군인 [[임비]](林比)를 시조로 하는 대한민국의 성씨이다. == 상세 == 유명한 인물은 예술계에 간 사람들이 많다. [[임(성씨)|임씨들]] 중에 유일하게 한 가문에서 유래된 가문이 아닌 근본을 가진 가문이기도 하다. == 기원 == 나주 임씨는 [[임비]](林比)를 시조로 삼는데, 선세에 유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임비]](林比) 위로도 또 여러 대(代) 높은 벼슬을 지낸 분이 있었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세대가 아주 멀고 문적을 증거할 수 없어 지금 상고해서 밝힐 수가 없다. [[임비]](林比)의 9세손 임탁(林卓)이 봉순대부(奉順大夫)로 해남감무(海南監務)를 역임하던 중 [[조선]]이 개국하였다. 이에 벼슬을 버리고 망국(亡國)의 한(恨)을 가슴에 안은 체 [[나주시|회진(會津)]]으로 정착하여 세거하였으므로 본관을 나주로 하였다. 회진현(會津縣)이 [[나주시|나주(羅州)]]에 속하게 됨에 따라 후손들이 [[나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 왔다. == 분파 == 나주 임씨는 조선초부터 분파되기 시작하는데, 임탁의 손자인 임유소(林有巢)를 파조(派祖)로 도정공파(都正公派)가 분리되었고, 임유소의 손자 대에서 큰손자인 임귀연(林貴椽) 후손이 장수공파(長水公派)·정자공파(正字公派)·절도공파(節度公派)·첨지공파(僉知公派)·생원공파(生員公派)·첨추공파(僉樞公派)로, 둘째손자인 임귀량(林貴樑)의 후손(後孫)이 진사공파(進士公派)로 분파(分派)되었다. == 인물 == * '''임붕'''(林鵬) : 1521년([[중종(조선)|중종]] 16)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삼사를 두루 지내고 벼슬은 승지·병사에서 그쳤다. * '''임복'''(林復) : 임붕의 아들. 1546년([[명종(조선)|명종]]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에 등용되었다가 이듬해 [[정미사화|양재역 벽서사건]]에 연루되어 [[삭주군|삭주]]에 유배되었다. 1551년 [[순회세자]]의 탄생으로 특사령이 내려져 고향에 돌아갔다가 [[선조(조선)|선조]] 초기에 박사에 임명되었으나 무고를 받아 취임하지 못하고 고향에 은거하였다. * '''[[임진]]'''(林晉) : 임붕의 셋째 아들이며, 임복의 아우. 1546년([[명종(조선)|명종]] 1)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정(訓鍊院正)을 거쳐 전라수사(全羅水使)‧제주목사(濟州牧使)‧회령부사(會寧府使)‧장흥부사(長興府使)‧오도병마절도사(五道兵馬節度使) 등을 역임하였다. 제주목사 시절에 [[청백리]](淸白吏)로서 청정비가 세워졌으며, 1568년([[선조(조선)|선조]] 1) 전라도우수사(全羅道右水使)로 있을 때에는 흑산도(黑山島)에 나타난 수적(水賊)을 토벌하여 이듬해에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올랐다. * '''[[임제]]'''(林悌) : [[조선]]의 3대 천재시인으로 불리었으며, 임진의 맏아들이다. 1577년([[선조(조선)|선조]] 10) 알성시에 급제한 뒤 흥양현감(興陽縣監)·서북도 병마평사(西北道兵馬評事)·관서 도사(關西都事)·[[예조]]정랑(禮曹正郞)을 거쳐 [[홍문관]]지제교(弘文館知製敎)를 지냈다. * '''임서'''(林㥠) : 임복의 아들. 1589년([[선조(조선)|선조]] 22) 사마시에 합격하고, 1599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승문원권지정자에 뽑히고, 1601년 [[승정원]]주서에 제수되었다가 [[성균관]]전적에 승진하고, 이어 [[공조]]·[[예조]]·[[병조]]의 좌랑을 거쳐 전라도안핵사·무장현감 등을 지냈다. 1610년([[광해군]] 2) 병조정랑이 되었고 이듬해 지평으로 있을 때 [[정인홍]](鄭仁弘)이 [[이언적]](李彦迪)·[[이황]](李滉)의 문묘종사(文廟從祀)를 반대하였다가 [[성균관]] 유생들에 의하여 유적(儒籍)에서 삭제되자 그는 수성찰방(輸城察訪)으로 좌천되고, 이어 덕원군수로 나갔다가 파직되었다. 1612년 봉산군수가 되고 이어 [[승지]] 등을 역임하다가, 폐모론이 일어나자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1621년 공조참의에 제수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다시 고향에 내려갔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안동부사가 되고, 이어 황해도관찰사가 되어 쌓였던 폐단을 일소하고 농업의 권장과 군사의 조련 등에 힘썼다. 이듬해 [[이괄의 난|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도원수 [[장만]](張晩)을 도와 적을 토벌하는 한편, 군량을 보급하는 등 열성을 다하여 그 공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승계되고 임기가 만료되자 동지중추부사 겸 오위도총부부총관에 제수되었다. 저서로 '''석촌유고'''가 있다. * '''임담'''(林潭) : 1616년([[광해군]] 8) 생원이 되고, 1635년([[인조]] 1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병자호란]] 때 [[사헌부]]지평으로 [[남한산성]]에 들어가 총융사의 [[종사관]]이 되어 남격대(南格臺)를 수비하였고, 화의가 성립된 뒤 진휼어사(賑恤御史)로 호남지방에 내려갔다. 1639년 [[좌승지]]로 사은부사(謝恩副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고, 1644년 경상도관찰사로 [[서원]]이 사당화하는 폐습을 상소하였다. 1646년 충청도관찰사로 유탁(柳濯)의 모반사건을 처결, 그 공으로 품계가 오르고 토지를 하사받았다. 그 뒤 [[형조]]·[[예조]]·[[병조]]·[[이조]]의 참판과 [[대사간]]·[[도승지]]를 거쳐 이조[[판서]]가 되고, 1650년([[효종(조선)|효종]] 1) 다시 사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지경연사(知經筵事)를 겸하였다. 1652년 [[청나라]] 사신의 반송사(伴送使)로 다녀오다가 가산에서 죽었다. * '''임한호'''(林漢浩) : 1792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암행어사]]를 지냈다. [[이조]]참의를 거쳐 [[대사간]]에 복직되고 강원도 관찰사가 되었으며 [[형조판서]]·[[이조판서]]·우빈객 등을 지내고 [[우의정]]에 올랐다. * '''임기수'''(林基洙) : 1846년([[헌종(조선)|헌종]] 12) 중시 문과에서 장원으로 급제하고, 1853년([[철종(조선)|철종]] 4) [[대사간]](大司諫)에 임명되었다. * '''임긍수'''(林肯洙) : 1837년([[헌종(조선)|헌종]] 3년) 식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공조]]·[[예조]]·[[이조]]의 판서를 역임하였다. * [[임병직]](林炳稷) : 독립운동가, 군인, 정치가, 외교관 * [[임갑수]](林甲守) : 독립운동가 * [[임종기]](林鍾基) : 제8·10·11·12대 국회의원 * [[임동원]](林東源) : 제25·27대 통일부 장관. 제 24대 국가정보원장. * [[임권택]](林權澤) : 영화감독, 석좌교수 * [[임성규]](林聲奎, 1939년 ~ 2012년) : 제33·34·35대 충청남도 논산시장. * [[임인택]] * [[임채정]](林采正) : 제14~17대 국회의원 및 국회의장. * [[임다빈]](2002~) : 유튜버 * [[임채진]](林采珍) : 제36대 검찰총장. * [[임채민]](林采民) : 제3대 국무총리실장, 제4대 보건복지부 장관. * [[임형주]](林亨柱) : [[성악가]], [[팝페라]][[테너]] * [[임창용]](林昌勇) : 야구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