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레이와 시대, rd1=레이와 시대)] [include(틀:역대 일본 덴노)] ---- [include(틀:군주 일람)] ---- ||<-2><tablebgcolor=#fff,#1f2023><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AF001F><#AF001F>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AF001F 0%, #BE0026 20%, #BE0026 80%, #AF001F)" '''[[일본/왕사|[[파일:일본황실.png|width=16]] {{{#C0A73F 일본국 제126대 천황}}}]][br]{{{#C0A73F {{{+1 나루히토}}}[br]徳仁}}}'''}}}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나루히토 천황.png|width=100%]]}}} || ||<|2><colbgcolor=#AF001F><colcolor=#C0A73F><width=90> '''출생''' ||[[1960년]] [[2월 23일]] (61세) || ||[[일본]] [[도쿄도]] [[치요다구]] 궁내청 병원 || || '''재위''' ||[[2019년]] [[5월 1일]] ~ (재위 중) || || '''즉위''' ||[[2019년]] [[10월 22일]] [br][[도쿄도|도쿄]] [[고쿄|황거 정전]](皇居 正殿) 마츠노마(松の間)|| || '''[[연호|{{{#C0A73F 연호}}}]]''' ||[ruby(令, ruby=れい)][ruby(和, ruby=わ)]([[레이와 시대|레이와]], 영화)|| ||<-2><bgcolor=#fff,#1f2023><color=#373a3c,#ddd>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AF001F><colcolor=#C0A73F><width=90><tablewidth=100%><tablebgcolor=#fff,#1f2023> '''[[휘|{{{#C0A73F 휘}}}]]''' ||[ruby(徳, ruby=なる)][ruby(仁, ruby=ひと)](나루히토) || || '''[[칭호#s-3|{{{#C0A73F 어칭호}}}]]''' ||[ruby(浩宮, ruby=ひろのみや)](히로노미야) || || '''부모''' ||부황 [[아키히토]] 상황, 모후 [[미치코 상황후]] || || '''형제''' ||2남 1녀 중 장남[br](남동생) 황사^^皇嗣^^ [[후미히토|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친왕,[br](여동생) [[구로다 사야코]]('''[[신적강하|황적이탈]]로 현재 평민''') || || '''배우자''' ||[[마사코 황후]] || || '''자녀''' ||1녀 [[아이코 공주|도시노미야 아이코 내친왕]] || || '''학력''' ||[[가쿠슈인]] 대학원 인문과학연구과 박사 최종 수료 || || '''신체''' ||165cm[* 재미있게도 키가 공개된 천황 중 [[메이지 덴노|고조 할아버지]]와 [[다이쇼 덴노|증조 할아버지]]를 제외한 [[쇼와 덴노|할아버지]], [[아키히토|아버지]]까지 3대가 키가 똑같다.][* 다만 고조 할아버지인 [[메이지 덴노]]는 당시 일본인 평균 키보다 오히려 큰 편이었고, 증조 할아버지인 [[다이쇼 덴노]]는 당시 일본인 평균 키보다는 키가 작았다, 할아버지인 [[쇼와 덴노]]도 당시 일본인 평균 키보다는 조금 큰 편이었다. 아버지 [[아키히토]]도 그나마 평균 정도였다.] || || '''십이지''' ||[[쥐띠]] ([[1960년|경자년]]) || }}}}}}}}} || [목차] [clearfix] == 개요 == [[일본]]의 제126대 [[천황]]. 일본을 건국했다고 알려진 [[진무 덴노]]의 71대손(72세손)으로, [[아키히토]] 상황과 [[미치코 상황후]]의 2남 1녀 중 [[장남]]이다. [[2019년]] [[4월 30일]]에 아버지 [[아키히토]]가 헌정 사상 처음으로 '''생전 퇴위'''하여 동년 [[5월 1일]]에 새 [[천황]]으로 정식 즉위하였다. 대관식인 대상제(大嘗祭)는 동년 11월 14일에서 15일로 넘어가는 밤에 치렀다.[* 일본어로는 다이죠사이(だいじょうさい)라고 읽는다. [[교코]] 근처에 대상궁(大嘗宮)이라는 임시 궁전을 짓고, 새로 즉위한 [[천황]]이 11월 중 어느날 밤, 황조신 [[아마테라스|아마테라스 오미카미(태양의 여신)]]에게 일본 각지에서 거둔 농산물을 바치고 하룻밤을 지새 보낸다. 대상제는 추수감사의 일종으로, 새 천황이 조상신 아마테라스와 함께 일본 각지의 곡식을 먹는다는 의미이다. 대상제를 치러야만 새 천황이 천황으로서 '종교적(신성한) 권위'를 획득하기 때문에 국가적, 종교적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대상제는 일본의 중요한 국가제사로 규정되어 일본 정부가 관련예산을 국고로 전액 (무상)지원한다.] 일본 역사상 2번째로 고령인 59세의 나이에 즉위했다.[* 최고령 즉위 천황은 [[나라 시대]]의 즉위 당시 연령이 60세였던 제49대 [[코닌 덴노]]이고, 3번째 천황은 55세로 즉위한 나루히토의 아버지 [[아키히토]]이다. 나루히토가 2번째라고는 하지만 현재 [age(1965-11-30)]세인 황사 [[후미히토]]는 역대 최고령으로 즉위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형제 간 사이가 매우 안 좋기 때문에, 황위를 바로 조카 [[히사히토]]에게 넘기거나 심하면 '''[[황실전범]]'''(皇室典範) 개정 또는 특별법 제정을 통해 무남독녀 [[도시노미야 아이코 공주]]에게 넘길 수도 있다. 다만 평균 수명이 매우 긴 시대이고, 현재의 60대 초반의 건강 상태는 과거 40대 후반과 비슷한 정도니, 60세라고 아주 노령이라고 할 수는 없다.] 현재 전 세계의 군주들 중 아버지 [[아키히토]]와 더불어 'Emperor(황제)'로 불리는 단 둘뿐인 군주이다. 즉위 1달 전인 [[4월 1일]], [[아베 신조|아베]] 내각이 임시 각료회의(臨時閣寮会議)를 열어 새로운 [[연호]]를 '''[[레이와 시대|레이와]](令和 영화/령화)'''로 결정했다. 레이와 시대는 [[2019년]] [[5월 1일]] 0시부터 시작되었다. 훗날 나루히토가 사망하면 '레이와 덴노(영화 천황)'으로 불릴 것이다.[* [[아키히토]] 또한 '헤이세이 덴노'라고 불리는 것은 사후의 일로, 재위하는 동안 외국에서는 '아키히토'라는 본명으로, [[일본]]에서는 [[폐하]](陛下), 금상천황(今上天皇)으로 불렸다. 퇴위 후에도 '''상황(上皇)'''이라는 호칭으로 부르지 사망 전까지는 본명이나 연호로 부르지 않는다. 아직 살아있는 아키히토나 나루히토를 헤이세이 덴노, 레이와 덴노라고 부르는 것은 [[고인드립|살아 있는 사람을 '고 OOO 씨'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어린 시절에 받은 [[칭호#s-3]](어칭호)[* [[천황]]과 황태자의 자녀에게 주어지는 개인 이름으로, 일종의 [[아명]]이라고 이해하면 된다.]는 '''히로노미야(浩宮)'''. [[일본 황실]]로부터 받은 문양 문장은 개오동나무. 아내 [[마사코 황후]]와의 사이에 무남독녀 [[도시노미야 아이코 공주]](내친왕)을 두었다. == [[나루히토/쇼와 시대|어린 시절]]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나루히토/쇼와 시대)] 나루히토의 유년 시절부터 20대까지의 행보^^(1960-1989)^^에 관한 내용이다. == [[나루히토/헤이세이 시대|황태자 시절]]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나루히토/헤이세이 시대)] 나루히토의 황태자 책봉 이후 즉위 이전까지의 행보^^(1989-2018)^^에 관한 내용이다. == [[나루히토/레이와 시대|즉위 후]]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나루히토/레이와 시대)] 나루히토가 천황으로 즉위한 이후^^(2019.05.01~ )^^의 행보에 관한 내용이다. >先に日本国憲法および皇室典範特例法の定めるとこにより皇位を継承いたしました。 >얼마 전 일본국 헌법 및 황실전범특례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황위를 계승했습니다. > >ここに正殿の儀を行い即位を内外に宣明します。 >이 자리에서 정전의 의례를 거쳐 즉위를 내외에 천명합니다. > >上皇陛下が三十年以上に亘る御座いの間連れに国民の幸せと世界の平和を願われ如何なる時も国民と苦楽を共にされながらその御心をご自身のお姿でお示しになってきたことにふかく改めて深く思いよいたし、ここに国民の幸せと世界の平和を常に願い国民に寄り添いながら憲法に則り日本国よび日本国民統合の象徴としての務めを果たす事を誓います。 >[[아키히토|상황 폐하]]께서 30년 이상 재위하시면서 국민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를 바라시어 어떠한 때에도 국민과 고락을 함께하시면서 그 성심을 자신의 모습으로 보여주신 것을 다시 깊게 생각하면서, 여기서 국민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를 항상 바라고 국민의 곁에 있으면서 헌법에 따라 일본국 및 일본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임무를 다할 것을 맹세합니다. > >国民の叡智と弛み無い努力によって我が国が一層の発展を遂げ国際社会の友好と平和、人類の福祉と繁栄に寄か与する事を切に希望いたします。 >국민의 뛰어난 예지(지혜)와 해이해지지 않는 노력으로 인하여 우리나라가 한층 더 발전을 이루어 국제사회의 우호와 평화, 인류의 복지와 번영에 기여하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 >제126대 천황 즉위식^^(즉위례 정전의 의례/'''即位礼正殿の儀''')^^ 연설문 == 기타 == 유년 시절부터 교양 교육의 일환으로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배웠고, 그중 비올라는 [[가쿠슈인]] 아마추어 [[관현악단]]에서 수석을 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독주회까지는 아니더라도 [[실내악]]이나 [[관현악]] 연주회에 종종 참가하고 있는데 [[2004년]]에 한일 우호 특별 기념음악회에서 [[한국]]의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정명훈(지휘자)|정명훈]],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악장인 [[바이올리니스트]] 아라이 에이지, [[러시아]]의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와 함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모차르트]]의 [[https://youtu.be/j1ylhsp8rZ8|피아노 4중주 제1번]]을 협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파일:/image/003/2007/01/22/NISI20070122_0003687371_web.jpg]] [[2007년]]에도 '우정의 다리 만들기'라는 이름의 한중일 합동 실내악 콘서트에 참가해 [[대한민국|한국]]의 정명훈([[피아노]])과 안동혁([[콘트라베이스]]. [[서울시립교향악단]] 수석), [[중국]]의 자오징([[첼로]]), [[일본]]의 카시모토 다이신(바이올린.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악장)과 [[프란츠 슈베르트|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 <송어>를 협연했다. 위 사진은 [[2007년]] 공연 때 촬영된 사진으로 왼쪽에서 4번째 비올리스트가 당시 나루히토 황태자. [[가쿠슈인]] 아마추어 관현악단의 OB 콘서트에서도 정기적으로 참가해 공연하고 있는데 [[2013년]]에는 [[도호쿠 대지진]] 당시 [[쓰나미]]에 휩쓸려 말라 죽은 고목으로 만든 [[비올라]]로 연주한 것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결혼식]](平成5年、御結婚の礼) [[https://youtu.be/B7FuabF-01M|영상]]의 1분 51초, 3분 51초 부분을 보면 [[성우]]나 [[아나운서]] 못지 않은 맑고 시원한 목소리에다가 청산유수처럼 말을 잘한다. 해당 영상에서 잠깐 나왔던 [[후미히토|남동생]]과 여러모로 대비되는 부분. 여담으로 [[미치코 황후|어머니]] 또한 목소리가 곱기로 유명한 점을 감안하면 모전자전인 듯. [[대한민국]] 정치인 중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와 외모가 많이 닮았다.[* 원희룡은 [[1964년]]생으로, 나루히토보다 4살 젊다.] 특히 [[1993년]] 나루히토의 결혼식 사진의 경우, 원희룡과 [[도플갱어]] 수준(…).[* 참고로 아버지인 [[아키히토]]는 [[김근태(군인)|김근태 예비역 대장]]을 닮았다.] 나루히토가 [[정장]] 차림으로 [[시구(야구)|시구]]하는 사진이 유명한데 1988년 제70회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고시엔]] 기념식에서 한 기념 야구 시구 사진이다. 황태자가 된 것은 이듬해, 즉 조부 [[쇼와 덴노]]가 오랜 병환으로 끝내 붕어하고 당시 황태자였던 부황 [[아키히토]]가 즉위한 후이므로, ([[쇼와 덴노]]가 위독했기 때문에 사실상 '''준''' 황태손 취급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냥 황태자의 장남이라는 일개 황족인 상태에서 시구식을 했지만, 천황 직계 황족이 시구식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일본 내에서 상당히 큰 화제가 되었다. 당시 타자였던 [[니시 토시히사]][* 훗날 [[와세다대학]]에 진학하여 [[일본생명보험|일본생명]]에 잠시 몸을 담았다가 199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하였으며 2010년 독립 리그를 마지막으로 은퇴하였다. [[이승엽]]과도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다. 이승엽은 심지어 06WBC때 도쿄돔에서 나루히토 앞에서 역전결승투런을 친적 있다. 그때 감독시절때 33번을 달았던 [[나가시마 시게오]]와 구단주인 와타나베 츠네오도 같이 직관했었다.] 선수는 "황족이 던진 공을 치면 주변으로부터 '''불경하다'''는 비난을 들을까 봐 일부러 공을 안 쳤다."고 고시엔 100회 기념 인터뷰에서 발언했다. 실제로 당시 시구식 영상을 보면, 타자인 니시 선수는 의도적으로 몇 박자 늦은 타이밍에 천천히 배트를 휘두른다는 느낌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 사실 일반적으로 시구 시에는 보통 타격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거나, 그냥 설렁설렁(?) 배트를 휘둘러 헛스윙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나루히토|시구자]]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고, 자칫하면 시구자가 [[땅볼]]이나 라인드라이브 타구에 맞아 다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종범]]이 [[장나라]]의 시구를 굳이 받아쳐서 하마터면 장나라가 다칠 뻔한 것 가지고 아직도 씹히는 걸 생각하면 쉽다.] 이후 [[2018년]]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고시엔]]^^甲子園^^ 100회 특별 개회식에도 참석했다. 시구는 하지 않고 기념 연설만 하였다. 당시 이때는 아내 [[마사코 황후]]와 함께 참석했는데 나루히토 부부가 고시엔에 함께 참석한 것은 이때가 최초이다. 이 해에 [[2018년 폭염|더위가 대단했던 관계]]로 대회가 오전 9시부터 시작했는데도 더위가 심해서 나루히토는 선수와 관중을 배려해 4분 남짓으로 짧게 연설을 끝냈다. 그런데 나루히토 이후에 연설을 한 인사들은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연설을 한 탓에 일본 현지에서는 '황태자 전하(皇太子殿下)께서도 선수들을 배려해서 짧게 하셨는데 [[넌씨눈|너희들은 눈치가 없냐]]'라는 비판이 나왔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좋아한 [[야구]][* 나루히토의 동창생의 증언에 의하면, 초등학생 때 학우들을 직접 섭외해서 그 친구들과 같이 야구를 했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테니스]][* 이건 테니스를 좋아하는 부모님의 영향이 크다. 참고로 나루히토는 아버지 [[아키히토]]의 타법을 그대로 흉내내서 하지만, 남동생 [[후미히토]]는 다른 방법으로 치는 편이다.], [[검도]]를 하거나 [[등산]][* 영국 유학 시절에도 기숙사 벽에다가 각종 산 사진을 걸어두었을 정도로 산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최근에도 기자들과 웃으면서 등산을 했을 정도라고 한다. 그 덕분에 [[키코 비]]가 [[2019년]]에 뜬금없이 [[히사히토]]를 데리고 험준한 산에 올려보낸 이유에 대해, "등산을 좋아하는 나루히토와의 접점을 만들기 위한 목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신빙성 높게 회자될 정도라고 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키코 비가 등산객들을 막아버리면서 상당한 불편함을 주었다는 점. 이는 전통적인 황족관을 가진 나루히토의 입장에서는 키코 비의 행동이 황족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걸 증명해주는 것인지라, 더욱 거리를 두게 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군데 감히 우리 가문에 기어올라?~~ 실제로 해당 보도에 대해서 [[궁내청]] 직원들도 "키코 비가 너무 수세에 몰린 나머지 실수한 것 같다"고 했다.]을 하는 등 몸을 쓰는 데에는 상당한 재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혼 후에도 역시 운동을 좋아하던 [[마사코 황후]]와 운동하는 장면들을 자주 보여주었고, 최근에도 기자들과 웃으면서 등산을 하는 모습이나, 나루히토 59세 생일 기념 특별 공개 영상에서 [[패럴림픽]] [[시각장애]] 달리기 메달리스트의 보조를 하면서도 그렇게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신체 능력은 나이에 비하면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별도로 사진 촬영도 상당히 좋아하는 편으로, 영국 유학 당시에 시간이 나면 친구들과 테니스를 치거나 사진기를 들고 사진을 찍는 게 일과였을 정도였다.[* 참고로 영국 유학 당시 현지 특파원들이 자신에 대한 기사를 쓰기 위한 사진을 찍을 때는 나루히토는 의도적으로 잘 찍힐 수 있도록 자세나 위치를 스스로 잡아주었기에, 기자들이 배려에 감동했다는 증언들이 있다.] 결혼 이후 나루히토의 주요 피사체는 자연 풍경 혹은 가족들이라고 한다. 2017년 덴마크 방문 당시에는 한 시민과의 셀카를 찍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https://www.sankei.com/smp/life/news/170618/lif1706180012-s1.html|#]] [[애처가]]로도 유명하다. 그는 첫눈에 반했던 [[마사코 황후]]에게 7년에 걸친 구혼을 하다가 '''"전력을 다해서 당신을 지키겠습니다"'''^^(全力を尽くしてあなたを守ります。)^^라는 말로 결혼에 골인하였다. 물론 그는 자신이 한 말을 지금까지 일관되게 지켜왔다. 2004년 [[일본 황실]]에 큰 파문을 낳았던 '''인격부정 발언'''이 대표적인 사례로, 기자회견에서 "마사코의 커리어나 이에 기초한 인격을 부정하는 움직임이 있던 것도 사실입니다."라고 폭탄 작심 발언을 던짐으로써 아내를 음해하던 [[궁내청]]을 견제하려 했던 것이다. [youtube(8jxYz0irIhc)] 해당 영상에서 26초부터 당시 나루히토 황태자가 말한 "인격부정발언"(人格不正発言) >마사코로서는 이 10년간 스스로를 열심히 황실의 환경에 적응시키려 노력해 왔습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그러는 가운데 그만 지쳐버린 것처럼 보입니다. '''이제까지의 마사코의 커리어나 그에 토대를 둔 마사코의 인격을 부정하는 듯한 움직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요(それまでの雅子のキャリアや、そのことに基づいた雅子の人格を否定するような動きがあったことも事実です)'''. 이 발언의 파장은 매우 커서 [[아키히토]] 당시 [[천황]]이 궁내청 장관을 통해 질책할 정도였고, 이 발언 이후 '황태자 교체론'(皇太子の交代論)이 심심찮게 나올 정도였다. 물론 신중하고 현명한 나루히토가 자신의 발언이 빚을 논란을 몰랐을 리 없다. 자신의 입지를 흔들리게 할 일임을 알면서도, 아내를 지키기 위해선 말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감수하고 작심 발언을 던진 것이다. 나루히토의 애정은 [[마사코 황후]]가 기회가 될 때마다 남편에 대한 고마움을 이야기한다는 점을 봐도 분명하다. 실제로 두 사람이 함께할 때 보이는 표정이나 행동은 서로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없으면 나오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스럽다. 사실 나루히토의 구혼이 [[마사코 황후]]의 인생을 나락으로 빠트렸다는 점에서 생각해보면, 원망을 해도 이상하지가 않은데 말이다. 그만큼 나루히토의 애정과 책임감을 마사코가 인정하고 더욱 고마워한다는 뜻이다. [[쇼윈도]] 부부가 의심되는 [[후미히토]], [[키코 비]] 부부와는 '''정말''',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인 [[아키히토]]와 어머니 [[미치코 상황후]]도 금술이 좋았던걸 생각하면 정말 같은 형제가 맞나 싶을 정도.] 어렵게 얻은 귀한 딸 [[아이코 공주|도시노미야 아이코 내친왕]]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나루히토의 적극적인 [[육아]] 참여는 일본에서도 화제였는데 그는 직접 딸의 [[기저귀]]를 손수 갈아줬고 황태자가 아기 캐리어를 직접 매고 휴가를 보내는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다. 물론 [[일본 황실]] 최초였다. 2020년대에도 남자는 돈을 잘 벌어오는 것이 중요하고 육아는 여자가 하는 인식이 강한 일본에서 2000년대 초반, 그것도 1000년 전을 사느냐고 비판받을 정도로 보수적인 황실의 후계자라고는 믿을 수 없는 수준의 적극적인 육아참여이다. 그는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틈만 나면 [[아이코 공주]]를 어떻게 키울지 고민하는 발언을 종종 했었고, 자기 나름의 육아방침을 열심히, 꾸준히, 자주 얘기하였다. 황태자 부부는 아이코 공주가 미취학 아동이던 시절 부모와 아이가 함께 하는 [[리듬체조]] 발달 코스를 들었는데, [[마사코 황후]]가 몸이 아파 참가하기 어려우면 나루히토가 직접 딸과 함께 와서 참여했다고 한다. 간과하면 안 될 게 이 당시 나루히토는 부부가 나누어서 해야 할 수많은 공무를 혼자서 하랴, 자신을 위시한 집안 전체에 대한 황실 내외 음해 세력들의 음험한 공작 막아내랴, 아픈 아내 신경써주랴, 외국어 등 개인 공부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을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 참석할 만큼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애하여 딸에게 모두 쏟아부었다. [[아이코 공주]]가 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마찬가지라 시간이 나면 그는 딸의 등하굣길을 함께 하면서, 아이코 공주를 언론 매스컴의 부정적인 보도로부터 잘 지켜낼 수 있었다. [[아이코 공주]]의 어린 시절 영상 중에 해외로 떠나는 나루히토를 배웅하러 나갔을 때에는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시무룩해하더니 반대로 아버지가 귀국하는 날에는 설레는 표정으로 활짝 웃으면서 기다리는 모습도 부녀지간의 돈독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물론 오냐오냐만 한 것은 아니다. 아이코 공주가 등교를 거부하자 "이제는 꼭 가야 한다"고 진솔한 대화를 통해 불안함에 떨던 [[아이코 공주|어린 딸]]을 잘 설득했으며 딸이 [[거식증]]을 앓자 "키운 사람, 만든 사람의 성의를 생각하라"고 꾸짖으면서 밥을 먹게 하였다. 이처럼 부모의 깊은 애정이 자칫 잘못하면 과잉보호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적절한 훈육을 해주었고, 그 결과 이러한 애정에 근거한 훈육 등으로 올바르게 자란 [[아이코 공주]]는 명석한 두뇌 외에도 성숙하고 예의바른 성격으로도 사촌동생 [[히사히토]]와는 다르게 주변에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키코 비]]는 이것이 너무 과하여 [[히사히토]]를 진짜로 과보호하는 바람에 안 그래도 사춘기인 히사히토는 지금 친구나 주변 시종 그리고 15살이나 위인 큰누나 [[마코 공주]] 등을 하대하거나 함부로 부른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영 삐딱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하는데, [[도쿄대학]]을 바라보고 있는 조카 아이코 공주를 견제하고 아들을 꼭 차차기 천황으로 올려야 한다는 조급증과 강박증 때문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것을 잘 볼 수 있는 것이 나루히토 천황 내외와 아이코 공주의 승합차 합승 배석이다. 나루히토는 사람들 눈에 잘 띄고 기자들의 사진에 잘 찍힐 수 있는 앞좌석이 아니라 찍히기 어려운 맨 뒷좌석에 앉고, [[마사코 황후]], [[아이코 공주]]를 앞좌석에 태운다. 일본의 상징인 천황이 되면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으나 [[2019년]] [[5월 11일]] 상황 내외와 첫 식사를 하러 [[고쿄]]에 갔을 때도 같은 방식으로 타고 고쿄로 들어와서 앞으로도 이런 식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참고로 황사(皇嗣)가 된 남동생 [[후미히토]] 일가는 후미히토 부부, [[마코 공주]]/[[카코 공주]], [[히사히토]]가 각각 따로 차량을 타고 다니고 있다고 하니 가족 간 불화가 여간 크지 않은 듯하다. [youtube(k8WwMkWlL54)] 그 외에 역대 천황 중에서도 유일하게 해외에서 2년간 유학 경험이 있기에 [[영어]] 실력이 매우 뛰어나서 물에 관련된 국제적인 학술, 학회 발표 자리에서도 외국인들과 영어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나 [[뉴욕]]에 가서도 무리없이 영어로 연설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어야 [[히로히토]]가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과 대화할 때 영어로 말했다거나, [[아키히토]]도 소싯적에는 영어로 연설까지 했을 정도니 집안 전통(?)이라 할 수도 있지만 [[네덜란드]] 순방 시에는 [[빌럼알렉산더르]] 국왕과 영어와 네덜란드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했으며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가 방일했을 때는 공식석상을 제외하고 아예 네덜란드어로만 소통했을 정도에다 최근에는 스페인어까지 슬하 2녀를 두는 등 공통점이 제법 되어 친분이 있는 스페인의 [[펠리페 6세]]와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구사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외에도 [[독일어]],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도 공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9207217|#]]특히 스페인어나 프랑스어는 정기적으로 전문가를 불러서 도구고쇼에서 공부한다. 스페인어 교사를 담당하고 있는 한 스페인 사람[* 사실 이분은 일본 외무성의 [[스페인어]] 강사로도 활동 중이라고 한다.]의 증언에 의하면, 나루히토 덴노가 스페인어를 배우려고 한 이유는 과거 [[멕시코]]에서 관심 분야인 물 관련 국제 회의에 참석하기 전에 스페인어를 배울 필요성을 느끼고 궁내청에 요구해서 해당 전문가를 부른 것이라고 한다. 2019년 기준으로 나루히토가 스페인어를 배운 지 10년 정도 되었으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공부를 대충하는 일 없이 매사에 진지하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학구열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가쿠슈인]] 재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증언에서 계속 나오고 있는 이야기로, 그 영향을 받았는지 [[아이코 공주]]도 상당히 진지한 학업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1976년]]에 [[고구려]] 왕들을 주신으로 모시는 [[코마 신사]](高麗神社)를 방문하여 참배한 바 있다. [[울트라 시리즈]]를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다. 나루히토가 어렸을 때가 딱 [[울트라맨]] 붐이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상한 것은 아니다. 태어나서 처음 골라 산 책이 울트라 괴수도감이었고 [[울트라 세븐]] 행사에도 직접 방문해 팬임을 밝힌 바가 있다. [[https://twitter.com/sow_LIBRA11/status/1186570554372788224|#]] 그 외에도 어린 시절에 [[오소마츠 군]]의 [[이야미]]의 셰에에~ 포즈를 따라하는 사진도 발굴되었다. [[https://pbs.twimg.com/media/EHg54nuU8AE0ToK.jpg|#]] 2019년에는 딸 아이코 의 권유로 [[이 세상의 한 구석에(애니메이션)|이 세상의 한 구석에]] 시사회에서 관람을 하고 감독을 직접 불러 "어떻게 이런 걸 만들었냐"고 매우 칭찬했다고 한다. 지금은 수정되었으나, 예전에 올라온 사진은 가르마가 아닌 올 백머리로 나왔는데, 해당 사진은 [[2010년]] [[1월 26일]] [[일본]] [[도쿄]]에 있는 UN 대학[* 명칭만 대학일 뿐 실제로는 인류의 존속, 발전, 복지에 관한 세계 문제를 연구하기 위한 학자, 연구자들의 국제 공동체다.]에서 찍힌 사진으로 평소에는 가르마를 타고 있다. 영국 유학시절 [[브룩 실즈]]를 좋아해서 기숙사 벽에다가 산 사진 옆에다가 브룩 실즈의 사진을 걸어두었을 정도이다. 그걸 잘 아는 유학시절 [[미국인]] 친구가, 나루히토가 [[1985년]]경 유학을 마치고 바로 귀국하지 않고 방미했을 때 자신의 집에 찾아온 나루히토를 위하여 브룩 실즈와 만나게 해주었다. 그 만남에 나루히토는 상당히 좋아했다. 그 이후인 [[1990년]]에 브룩 실즈의 방일 시에도 그녀를 초대해서 만나기도 해서, 당시 몇몇 언론들은 "일본 황족 최초로 외국인 며느리가 들어오는 게 아니냐"는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그러나 나루히토에게 관련 질문이 들어오자 직접 "입장상 외국인과 결혼하지 않는다"라고 정리했다. 이후 일본인인 마사코 황후와 결혼. 사실 보수적인 일본 분위기, 그 중에서도 제일인 황실에서 일개 친왕도 아니고 황태자였던 입장을 생각하면 당연히 이런 파격적인 혼담이 실행될 리가 없다(...)~~혼혈은 안돼~~ 의외로 [[주당]]이라, 술집에서 진열된 술의 반절 이상을 시켜서 마시는 와중에 그 자리의 다른 사람들이 모두 취해 뻗어도 자리가 끝날 때까지 흐트러지지 않았었을 정도[* 하지만 그러한 나루히토도, 동생 [[후미히토]]가 자기보다 먼저 결혼했을 때만큼은 흐트러질 정도로 술을 많이 마셨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아끼던 동생의 결혼을 축하하면서 마시다보니 취해버린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루히토가 [[결혼|장가]]를 간 후부터 황위를 두고 싸우기 시작하면서 형제 사이가 급격히 망가지기 시작했고, 그러한 대립은 [[2006년]] [[히사히토]] 출생 후에 절정을 찍은 상태.]라고 하는데 결혼을 계기로 술을 끊었다. 술을 일절 못하는 아내 [[마사코 황후]]를 배려하기 위한 것. 하지만 결혼 후에도 종종 시종 등과 술을 마시면서 회포를 푼 적이 있다는 보도를 보면, 완전히 끊은 것은 아니고 아내, 딸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스스로 최대한 자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다가 '''상징적 천황제(象徴的天皇制)'''는 곧 일본 국민들에게 개방된 황실을 꿈꾸는 사람답게 황태자 시절에는 딸 [[아이코 공주]]를 아내와 함께 양육하거나 등 뒤에 딸을 업고 아내와 함께 등산을 하는 장면을 언론을 통해서 공개하거나 유럽에서의 해외 공무 도중 외국인과 셀카를 찍고 그 외국인에게 자신과 찍은 사진을 외국인의 SNS에 업로드하라고 권하는 등 소박하고 털털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즉위 후 바쁜 중에도 주변 지인들을 통해서 영국 왕실 등 유럽 왕실들처럼 [[일본 황실]]도 공식 [[SNS]]를 개설해서 평상시 황족들의 생활들 일부를 공개할지에 대한 질문을 하고 다니면서 상당히 진지하게 검토하는 등 여러모로 진보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다. == 상훈(賞勳) == [[파일:201905021223001091_AG094.jpg|width=400]] 일본 제126대 천황으로 등극한 [[2019년]] [[5월 1일]]의 즉위 첫 행사 당시의 사진이다. * 대훈위국화장경식(大勲位菊花章頸飾): 본 사진에서 목에 패용하고 있는 [[훈장(상훈)/일본|훈장]]. 일본에서 가장 높은 훈장이며, 상징적 [[국가원수]]로서의 권위를 상징한다. 수훈일은 당연히 레이와 원년 5월 1일 천황으로서의 즉위 행사 직전에 열린 일본 내각 각료회의에서 결정되었다. * 대훈위국화대수장(大勲位菊花大綬章): 장경식 다음으로 높은 훈장으로, 적법한 황위계승자임을 상징한다. 황태자가 된 건 1991년이지만, 그보다 빠른 [[1980년]]에 수여받았다. '대수'라는 표현대로 원래 어깨에 걸치는 형태지만 위 사진에선 부장을 패용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것보다 상급 훈장을 수훈받았기에 부장을 패용하게 된 것이다. * 동화대수장(桐花大綬章): 본 사진에서 어깨에 매고 있는 훈장이 바로 이것으로, 수훈일은 레이와 원년 5월 1일 천황으로서의 즉위 행사 직전에 열린 일본 내각 각료회의에서 결정되었다. * 문화훈장(文化勲章): 위 사진에선 패용하고 있지 않으나 일본 정부에 의하여 레이와 원년 5월 1일 천황으로서의 즉위 행사 직전에 열린 일본 내각 각료회의에서 수여받는 것이 정식으로 결정되었다. * 일본적십자사금색유공장(日本赤十字社金色有功章): 일본적십자사는 본사와 중요한 관계가 있다고 인정되는 사원에게 명예사원증과 함께 이 금색유공장을 준다. 나루히토는 엄밀하게는 황태자비 [[마사코]]가 명예총재이던 시기에 명예부총재를 지냈는데, 이때 수여된 유공장인 듯. 명예부총재 지위는 나루히토 천황 즉위와 더불어 황사(皇嗣) 후미히토에게 인계되었다. 위 사진에선 패용하고 있지 않다. 이 외에도 [[오스트리아]], [[벨기에]], [[바레인]], [[덴마크]], [[독일]], [[그리스]], [[헝가리]],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말레이시아]], [[노르웨이]], [[필리핀]], [[포르투갈]], [[카타르]], [[스웨덴]], [[스페인]], [[통가]], [[UAE]]로부터 받은 훈장(상훈)이 있다. [[분류:나루히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