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만화가]][[분류:1932년 출생]][[분류:2020년 사망]][[분류:아르헨티나의 인물]] [[파일:attachment/quino.png]] ([[오너캐]]) [[아르헨티나]]의 [[만화가]]. 1932.07.17~2020.09.30 Quino. 본명은 호아낀 살바도 라바도(Joaquín Salvador Lavado). [[1932년]] 멘도사에서 태어나 꾸이요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1950년에 데뷔했으며 이후로 여러 잡지와 일간지, 주간지에 [[풍자]], [[유머]] 만화를 연재하면서 만화계에 입문했다. 만화를 여러개 연재하면서 1962년도에 첫 전시회를 열 정도로 유명해졌다. 특히 1964년부터 1973년도까지 마팔다를 연재하면서 아르헨티나는 물론 타 스페인어권 국가와 유럽 국가에서도 연재되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만화가가 되었다. 한 전자제품 회사의 냉장고 판매용 홍보 만화 제작을 부탁받고 작업을 하던 중 <마팔다>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광고홍보는 무산되었고, 애써 만들어놓은 캐릭터를 버리기에는 아까워서 자신의 새 만화 주인공으로 써먹었고. [[비틀즈]]를 좋아하고 [[수프]]는 싫어하면서 어른스러운 고민을 하는 6살 여자아이 마팔다를 주인공을 내세운 이 만화는 당시 혼란스러웠던 아르헨티나 정세를 풍자하면서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만화가가 되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때문에 연재 도중에 연재처가 군사독재정권의 압력을 받아 문을 닫아서 도중에 연재를 중단되기도 하는 풍파를 겪었기도 했고, 1973년에 아이디어가 새로히 떠오르지 않다는 이유로[* 사실 1976년부터 1983년까지 아르헨티나가 다시 한번 군사독재정권하에 있었고 [[더러운 전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민주화 인사들에게 가혹하게 탄압을 가했던 시기라는 점을 생각하면 나름대로 신의 한수(?)였다.][* 그러나 어쩐지 주인공인 마팔다가 수프차에 깔려서 죽는다는 것이 진짜 엔딩이고 이를 묘샤해놓은 만화도 나돌았는데 작가 본인이 이건 어디까지나 동인설정이라고 확인사살했다.]마팔다의 연재를 끝마친 뒤로는 이탈리아로 이주해서 여러 단편만화를 연재하기도 했다. 마팔다의 [[이탈리아]]판 서문에는 [[움베르토 에코]]가 서문을 작성해 주었다. 1983년 아르헨티나 민주화 이후로 귀국해서도 여러 만화를 그려오다가 2007년에 은퇴했고, 2020년에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마팔다의 애니메이션화는 두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첫번째 버전은 1970년대 [[아르헨티나]]에서 채널11(현 텔레페의 전신)에서 52부작으로 제작되었으고 압축버전이 1981년에 영화로 개봉하였다. 1993년 [[쿠바]]와 [[스페인]]의 합작으로 104부작으로 제작되었고, 자신의 친구인 후안 파드론이 감독을 맡았다.[* 장편으로 제작되었기는 했으나 실제 분량은 짧다. 아르헨티나 버전의 경우에는 편당 1분 30초~4분 20초 내외이고, 쿠바-스페인 합작 버전의 경우에는 1분 내외이다.]그러나 아르헨티나 버전은 대사 위주로 진행되지만 쿠-스페인 합작 버전은 대사가 거의 나오지 않고 몸짓과 행동으로 상황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피너츠]] 애니메이션판의 영향을 어느정도 받은면이 보인다. 실제로 피너츠와 마팔다가 유명한 신문만화에다가 [[블랙 코미디]]적인 내용이 많다는 점에서 비교되곤 했지만 시사적인 내용을 다루지 않은 피너츠와는 다르게 마팔다는 작중에서 베트남 전을 대놓고 풍자하는 등 시사적인 소재를 많이 다뤘기에 이점에 있어서 차이가 큰 만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