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www.seogaus.com/20100621.01100122000002.jpg]] 金炫 [[1942년]] [[7월 29일]] ~ [[1990년]] [[6월 27일]] [[대한민국]]의 문학가이다. 불문학자 및 문학 평론가로 유명하다. 김현은 필명으로 본명은 김광남(金光南)이다. [[전라남도]] [[진도군]]에서 태어나 [[1964년]]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다. [[1962년]]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에 《[[자유문학]]》에 나르시스의 시론이 평론에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하였다. [[1967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불어불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교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1971년]]부터 [[1990년]] 사망시까지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1970년]] 계간 문예지 《[[문학과지성]]》을 창간하여 이끌어 나감으로써, 《[[창작과비평]]》과 더불어 문지-[[창비]] 양대 문예지 시대를 열었다. 이후 《[[문학과지성]]》은 《[[창작과비평]]》과 함께 신군부에 의해 [[1980년]] 강제 폐간당했다가, [[1988년]] 《[[문학과사회]]》로 재창간된다. [[장 폴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 등 프랑스 문학의 [[실존주의]]적 경향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 평생 8권의 평론집을 낸 점에서 볼 수 있듯이, 다양한 문학 평론 활동을 통하여 한국 문학 평론의 기초와 틀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특히 시인 [[김수영(시인)|김수영]] 등을 평론한 것이 유명하다. 불문학 연구자임에도 한국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연구와 비평을 병행한 걸출한 연구자이자 문학평론가로 꼽힌다. 생전에 [[최인훈]], [[이청준]], [[김승옥]], [[김지하]], [[고은(시인)|고은]], [[정현종]], [[황동규]], [[오규원]], [[최하림]], [[김원일]], [[서정인]] 등 수많은 문인들과 활발히 교류하고 그들의 작품을 비평했다. 또한 [[문충성]], [[김광규]], [[윤후명]], [[복거일]] [* 시인이었던 [[복거일]]을 신춘문예나 문예지 추천을 거치지 않고, [[문학과지성사]]에서 단행본 《[[비명을 찾아서]]》를 통해 소설가로 등단시켰다.], [[이성복]], [[황지우]], [[이인성(소설가)|이인성]], [[최승자]], [[김혜순]] [[최두석]], [[최수철]], [[조세희]], [[임철우]], [[김명인]], [[박남철]] [[기형도]], [[김기택]] 등 다양한 신인들을 발굴하기도 했다. 생전에 서울대 국문과 교수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윤식과 함께 쓴 공저 <한국문학사>([[민음사]])는 국어국문학과에서 필독서. 사후에 발간된 산문집 <행복한 책 읽기>([[문학과지성사]])가 크게 알려졌다. 그외에도 다수의 연구서와 비평집을 냈으며, 모든 저서는 그의 사후 <김현문학전집>이라는 이름 하에 [[문학과지성사]]에서 전부 정리, 간행되었다. 2015년 설립된 사단법인 <문학실험실>에서 그의 이름과 문학을 기리는 <김현문학패>[* 다른 문학상과 다르게 문학패라는 독특한 이름을 택했다.]를 제정, 현재까지 시행해오고 있다.[* [[http://silhum.or.kr/kim-hyeon-prize/#pg-295-1]] ][* 매년 시, 소설 부문에서 한 명씩 수여한다.] [[박화성]], [[김우진]], 차범석과 함께 목포문학관에서 전시중인 4명의 문학인 중 1인이다.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김현,version=59)] [[분류:문학 교수]][[분류:진도군 출신 인물]][[분류:1942년 출생]][[분류:1990년 사망]][[분류:서울대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