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명의 전 정치인은 [[김진기(1932)]] 문서로. [include(틀:국방부 조사본부장)][* 제 18대 국방부 조사대장, 계급은 준장] ||||<table align=right><#030><:> {{{#ffffff '''김진기(金晋基) '''}}} || ||||<:> [[파일:김진기.jpg|width=200]] || ||||<#030><:> {{{#ffffff '''1932년 4월 19일 ~ 2006년 12월 28일'''}}} || ||<#2e8b57><:> {{{#ffffff '''복무'''}}} ||<#8fbc8f> 대한민국 육군 || ||<#2e8b57><:> {{{#ffffff '''기간'''}}} ||<#8fbc8f> 1950년 ~ 1980년 || ||<#2e8b57><:> {{{#ffffff '''임관'''}}} ||<#8fbc8f> 육사 9기 || ||<#2e8b57><:> {{{#ffffff '''최종계급'''}}} ||<#8fbc8f> 준장 || ||<#2e8b57><:> {{{#ffffff '''최종보직'''}}} ||<#8fbc8f> 육군본부 헌병감 || ||<#2e8b57><:> {{{#ffffff '''주요보직'''}}} ||<#8fbc8f> 국방부 조사대장[br]육군본부 헌병감 || [목차] == 소개 == 金晋基 1932년 4월 19일 ~ 2006년 12월 28일 [[대한민국]]의 전 군인. 호는 산민(山民),본관은 [[김해 김씨|김해]]. [[종교]]는 [[개신교]]이다. == 일생 == 1932년 [[평안북도]] [[후창군]][* 현재 [[량강도]] [[김형직군]].]에서 태어났다. 평양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재학 당시 성적이 우수해 한학년 월반했다고 한다.] [[6.25 전쟁]] 당시 [[월남]]하여 [[육군사관학교]] 9기로 입교하였다. 이후 다시 [[대한민국 육군]] [[갑종간부후보생]] 6기로 임관되었다. [[베트남전|베트남 전쟁]] 등에 참전하였고 [[보국훈장]] 삼일장, [[보국훈장]] 천수장, 화랑 [[무공훈장]], 베트남 1등 무공훈장 등을 수훈받았다. [[군사경찰|헌병]] [[중대장]], [[군사경찰|헌병]] [[대대장]], [[제3야전군사령부|3군]] 헌병참모, 헌병감실 차감,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 [[국방부 조사본부|조사대장]], [[대한민국 육군|육군]] 헌병감 등을 지냈다. '''[[장태완]], [[정병주]], [[하소곤]] 장군과 더불어 [[12.12 군사반란]] 당시 [[신군부]]에 끝까지 저항한 [[장성]] 중 하나이다.''' == 10.26사건 당시 행적 == 1979년 [[육군본부]] 헌병감으로 재직 중 [[10.26 사건]] 당시 [[정승화]]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의 지시로 [[김재규]]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장|장]] 체포작전을 직접 지휘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범이 김재규임을 알게 된 정승화는 육군 벙커로 김진기를 불러 김재규를 총장 비서실장으로 위장해 체포, 보안사에 인계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김진기는 김재규를 유인하여 헌병 중대장 이기덕 대위, 보안사 오일랑 중령과 함께 체포해 보안사로 인계했다.[* 후에 김진기는 이때가 삶에서 가장 긴장되었던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이후 같은 해 [[계엄]] 선포 이후 계엄사 치안처장으로 임명되었다. 치안처장 재직 당시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의 정보 독점 월권행위로 인해 치안처 및 [[군사경찰|헌병대]]에 정보가 오지 않자 당시 [[정승화]] 계엄사령관에게 전두환의 월권행위에 대한 보고를 하기도 했다.[* 이 보고는 정승화가 전두환을 숙청하려고 결심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역으로 체포당한다. --] == 12.12군사반란 당시 행적 == 1979년 12월 [[장태완]] 수경사령관, [[정병주]] 특전사령관 등과 함께 [[12.12 군사반란]]을 진압하려 하였다. 당시 그는 신군부에 의해 친 정승화 계열로 분류되어 장태완 수경사령관, 정병주 특전사령관과 함께 연희동 위장 만찬에 유인되어 있었다. 그러나 헌병감실에 연희동 음식점 번호를 알려놓고 나와 정승화 총장이 연행되었을때 연락을 받아 다른 장군들에게 알렸다. 그 뒤 전두환 등 [[하나회]] 세력이 [[12.12 군사반란|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을]] 인지해 [[최규하]]에게 정승화 체포 승인을 받기 위해 총리공관에 머물던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체포하라고 직속 부하인 총리공관 [[군사경찰|헌병]] 특별 경호대장 구정길 중령에게[* 당시 [[최규하]]는 대통령에 당선된 상태였으나 대통령 취임선서 이전이라 총리공관에 머물러 있었고 총리공관의 경비는 육군본부 헌병감실 소속 헌병대가 맡고 있었다.] 명령하지만 헌병 경비 병력들이 [[하나회]] 병력인 대통령 경호실 병력에 의해 무장해제되며 실패한다. 그리고 휘하의 헌병병력을 이용해 [[최규하|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를 구출하려 했지만 하극상으로 인한 병력부족으로 좌절된다.[* 성환옥, 우경윤 대령이 휘하 33헌병대 병력을 모두 총장공관에 이끌고 갔기 때문이다.] 그뒤 수경사 지휘부에서 수경사 헌병단 부단장 신윤희 중령에게 무장해체 된다. [[국군기무사령부|국군보안사령부]]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으며 이듬해 예비역 [[준장]]으로 자진 예편한다.[* 사실상 강제 예편이나 다름없었다.] == 부하들의 배신 == 다른 진압군측 장성들과 마찬가지로 김진기도 하나회에 소속된 부하들에게 하극상을 당했다. 전두환의 명령으로 정승화를 체포한 우경윤 범죄수사단장(대령)과 [[성환옥]] 헌병감실 기획과장(대령) 모두 직속 부하였다.[* 우경윤은 체포 도중 오인사격으로 인해 반신불구가 되어 군에서 예편한다 --천벌--] 애초에 그들이 전두환의 명령으로 정승화를 체포하지 않았더라면 12.12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와 별개로 장태완, 정병주, 김진기를 연희동 만찬으로 유인했던 [[조홍(군인)|조홍]] 헌병단장은 병과 후배로 이미 후임자로 내정되어있던 상태였다. 이 배신으로 인해 김진기는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게 되었고 후에 그는 "평생을 쿠테타의 악몽에 시달렸다" 라고 밝혔다. == 그 후 == 예편 후 수원에서 농사도 짓다 보문도에서 광어 양식을 하기도 하고 일본 평화안전보장 연구소에서 지정학을 연구했다. [[김영삼]] 정권 때 한국토지공사 이사장[* 현 [[한국토지주택공사]]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정병주]], [[하소곤]], [[정승화]] 등과 함께 전두환을 내란죄 등으로 고발했다. 2006년 지병으로 사망한 뒤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슬하 1남 2녀를 두었다. == 미디어에서 == 드라마 [[제4공화국(드라마)|제4공화국]]에서는 배우 조재훈 씨가,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에서는 배우 [[김주영(1952)|김주영]]씨가 김진기 역을 맡았다. [[분류:동명이인/ㄱ]] [[분류:대한민국의 군인]] [[분류:김형직군 출신 인물]] [[분류:1932년 출생]][[분류:김해 김씨]] [[분류:2006년 사망]] [[분류: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 [[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 신자/ㄱ]] [[분류:베트남 전쟁/군인]] [[분류:대한민국 국가유공자]] [[분류:육군사관학교 출신]] == 관련 문서 == [[10.26 사건]] [[12.12 군사반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