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 width=100%><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000000><-100><:>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C60C30 20%, #003478)" {{{#FFFFFF ''' 김진규의 주요 수상 이력 ''' }}} }}} |||| ||<#ffffff><-1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bordercolor=#002266><#002266><-5><:> {{{+1 '''{{{#white '''역대'''}}} [[청룡영화상|[[파일:bluedragonfilmawards_logo.png|width=120]]]]'''}}} || ||<#FFFFFF><-5><:> [[파일:bluedragonawards3.png|width=30]] || ||<#002266><-5><:> [[청룡영화상/남우주연상|{{{#white '''남우주연상'''}}}]] || ||<width=30%><#E0FFFF><:> ''' 제1회 [br] ([[1963년]]) ''' ||<#E0FFFF><:> {{{+1 → }}} ||<width=30%><#E0FFFF><:> ''' 제2회 [br] ([[1964년]]) ''' ||<#E0FFFF><:> {{{+1 → }}} ||<width=30%><#E0FFFF><:> ''' 제3회 [br] ([[1965년]]) ''' || ||<:> [[김승호]][br](혈맥) ||<:> {{{+1 → }}} ||<:> '''김진규[br](잉여인간)'''||<:> {{{+1 → }}} ||<:> [[최무룡]][br](남과 북) || ||<#002266><-5><:> || ---- ||<-5><table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bordercolor=#EDD200><#EDD200> {{{+1 '''{{{#white 역대}}}''' [[대종상|[[파일:daejongfilmawards_logo.png|width=120]]]]}}} || ||<#FFFFFF><:><-5> [[파일:daejongawards.png|width=50]] || ||<#EDD200><-5><:> {{{#white '''남우주연상'''}}} || ||<width=30%><#FFFFA1><:> ''' 제4회 [br] ([[1965년]]) ''' ||<#FFFFA1><:> {{{+1 → }}} ||<width=30%><#FFFFA1><:> ''' 제5회 [br] ([[1966년]]) ''' ||<#FFFFA1><:> {{{+1 → }}} ||<width=30%><#FFFFA1><:> ''' 제6회 [br] ([[1967년]]) ''' || ||<:> [[신영균(배우)|신영균]][br](달기) ||<:> {{{+1 → }}} ||<:> '''김진규[br](태양은 다시 뜬다)''' ||<:> {{{+1 → }}} ||<:> [[박노식(1930)|박노식]][br](고발) || ||<#EDD200><-5><:> || ||<width=30%><#FFFFA1><:> ''' 제15회 [br] ([[1976년]]) ''' ||<#FFFFA1><:> {{{+1 → }}} ||<width=30%><#FFFFA1><:> ''' 제16회 [br] ([[1977년]]) ''' ||<#FFFFA1><:> {{{+1 → }}} ||<width=30%><#FFFFA1><:> ''' 제17회 [br] ([[1978년]]) ''' || ||<:> 신일룡[br](아라비아의 일몽) ||<:> {{{+1 → }}} ||<:> '''김진규[br](난중일기)''' ||<:> {{{+1 → }}} ||<:> [[하명중]][br]([[족보(영화)|족보]]) || ||<#EDD200><-5><:> || ---- ||<-5><#c0c000><table width=100%><tablebordercolor=#c0c0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연극 및 영화부문 대상'''}}} || ||<width=30%> [*신설] || → ||<width=30%><#FFFFA1> '''김진규[br](1965)''' || → ||<width=30%> 천사여 고향을 보아라[br](1966) || ||<-5><#c0c0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 [*신설] || → ||<bgcolor=#ffffa1> '''김진규[br](1965)''' || → || [[신영균(배우)|신영균]][br](1966) || || [[신영균(배우)|신영균]][br](1966) || → ||<#FFFFA1> '''김진규[br](1967)''' || → || 최남현[br](1968) || || [[하명중]][br](1974) || → ||<#FFFFA1> '''김진규[br][[백일섭]][br](1975)''' || → || 김희라[br](1976) || }}} || ||||<table align=right><-5> [[파일:attachment/actorkjk.jpg|width=300]] || || 이름 ||김진규(金振圭)|| || 출생 ||[[1923년]] [[4월 12일]], [[충청남도]] [[서천군]] 마산면 관포리[[http://www.newssc.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069|참조]]|| || 사망 ||[[1998년]] [[6월 18일]], [[서울특별시]]|| || 본관 ||[[김녕 김씨]]|| || 종교 ||[[천주교]](세례명: 마르티노)|| || 가족 ||[[배우자]] 이민자, 김보애[* 1939년 3월 15일 [[일제강점기|일본령 조선]] [[경기도]] [[김포군]] 출생. [[이덕화]]의 처형.], 슬하 3남 3녀|| || 수상 ||[[1986년]] 제25회 대종상 영화인상|| [[대한민국]]의 [[배우]]. 1960년대 최고 인기 스타로 당대의 슈퍼스타 [[신성일]], [[최무룡]], [[신영균(배우)|신영균]]보다 선배이며 우위에 있던 배우.[* 다만 1967년 감독을 맡은 영화 '종자돈'의 실패 이후, 1970년대에 접어든 이후에는 [[신성일]]이나 [[최무룡]]이 최고의 자리를 유지한 반면 김진규는 하락세를 탔고 1970년대 중후반 이후에는 거의 스크린에서 보기 힘들어졌다.] 1950년대 중반 주연으로 올라선 그는 다른 배우들과 달리 지적이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통해 여성 관객들의 인기를 얻었다. 지금 배우와 비교하자면 [[박해일]]이나 [[한석규]]와 비슷한 스타일. 특히 [[대한민국]] 영화 사상 손가락 안에 드는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이범선]]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1961년작 영화 [[오발탄(영화)|오발탄]]의 주연을 맡기도 했다. 오발탄에서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를 뽑고 피를 흘리며 택시를 타고 뇌까리는 '가자'는 1960년대 영화 최고의 장면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그리고 같은 해에 찍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사랑방 손님 역할로도 유명하다. ~~모르겠으면 옥희 옆에서 느끼한 목소리를 내는 [[아재]]로 기억하면 된다.~~ 1965년에는 [[벙어리 삼룡이]]의 주연을 맡으며 최고 전성기를 보냈다. 역대 대한민국 배우 중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에서 최우수연기상과 대상을 동시에 받은 유이한 인물.[* 다른 한 명은 [[안성기]].] 또한 1960년대에 받은 남우주연상만 9개다.(부일 5개, 청룡 2개, 대종상 1개, 백상 1개) 자신이 감독한 영화 '성웅 이순신'의 실패 이후 [[이혼]] 등의 가정사로 곤욕을 겪었고 [[이만희(영화 감독)|이만희]] 감독의[* 배우 [[이혜영(1962)|이혜영]](1962년생)의 아버지.] 마지막 작품인 1975년 [[삼포 가는 길]]이 사실상 마지막 히트작이 되었다. 신사적인 이미지와 달리 사생활에 문제가 있었는데, 그는 여자 관계가 무척 복잡했고, 술만 먹으면 개로 변해 폭력을 휘두른다고[* 부인과 아들, 그에게 연기를 배우러 찾아온 제자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아들의 과외 선생 까지 상습적으로 구타했다고 한다.] 그의 2번째 부인인 배우 김보애가 쓴 자서전에 나온다.[* 김진규의 첫 부인은 배우 이민자인데, 생활고와 김진규의 가정폭력으로 인해 [[이혼]]했다고 한다.] 또 [[유튜브]]에 업로드 되어 있는 김진규 영화를 보면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으나, 김진규의 지저분한 [[사생활]]을 욕하는 코멘트가 종종 있다(...). 여담으로, 상당히 [[이순신]]을 좋아했는지 1971년에 '성웅 이순신'을 찍고 말아먹은 뒤 1978년 '난중일기'를 또 찍기도 했다. 1987년 '하녀의 방'을 마지막으로 은퇴, 1998년 75세로 사망했다. 배우 [[이덕화]]의 손윗동서다. 김보애는 이덕화의 처형이다. 장녀 [[김진아(영화배우)|김진아]]도 배우였으며[* 김진규가 유독 편애하고 아꼈다고 한다.] 삼남[* 김진규는 전처 이민자와의 사이에서도 아들 둘을 낳았다.] [[김진근]]도[* 배우 정애연과 결혼.] 배우로 활동 중이다. 참고로, 김진규 본인과 자녀들간 이름에 '진'자가 들어가서 뭔가 이상함을 느낀 사람들이 많을 텐데, 사실 김진규는 김녕 김씨 26세 '규(圭)' 자 돌림이고, 자녀들은 27세 '진(鎭)' 자 돌림이다. 즉 그 '''[[김재규]]'''와 같은 항렬이라는 얘기. 고로 자녀들간 이름에 '진'자가 들어가는 것은 그리 이상할 것은 없다. 참고로, 딸 김진아는 [[2014년]] [[8월 20일]], 암으로 [[하와이]]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김보애도 딸 사후 3년 뒤인 [[2017년]] [[10월 14일]], [[하와이]]에서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김진규, version=76)] [[분류:한국 남배우/ㄱ]][[분류:1923년 출생]][[분류:1998년 사망]][[분류:서천군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가톨릭 신자]][[분류:1955년 데뷔]] [[분류:전주신흥고등학교 출신]][[분류:김녕 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