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ablealign=center><tablewidth=500> '''{{{+1 김정미}}}''' || ||<-2> [[파일:kimjungmi_6f.jpg|width=100%]] || ||<|2> '''출생''' ||<(> 1953년 4월 23일 || ||<(> 서울특별시 || || '''부모''' ||<(> 아버지 김순성 || || '''형제자매''' ||<(> 1남 5녀 중 둘째 ||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가수]]. [[김추자]]와 함께 [[1970년대]]를 풍미하던 비운의 여성 가수로 알려져 있다. [include(틀:)] == 상세 == [[1953년]] [[서울특별시|서울]]에서 태어난 그녀는 본래부터 예술가의 길을 지망하던 유년시절을 지내오다, 이후 [[신중현]]에게 픽업되어 사단의 보컬로 활동하던 가수였다. 신중현 작곡의 작품들을 받으며 활동했으니 일종의 [[페르소나]]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던 셈. 특유의 중저음의 목소리는 당시 선풍적이었던 [[사이키델릭]]과 잘 어우러졌다. 이러한 신중현의 지원을 등에 업은 그녀는 각종 음원을 발표하면서 지내다 [[1973년]] 불세출의 명작 '[[나우|NOW]]'라는 앨범을 발표함으로 한국땅에 사이키델릭의 시작을 알리게 되었다. 이는 지금까지도 불세출의 명반으로 평가받으며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3차 선정에서 58위에 랭크되는 고평가를 받는 중이다. 하지만 이런 명작을 내놓았음에도 [[1975년]] 유명한 대마초 파동을 겪고서는 신중현은 음악활동 면에서 큰 억압을 받게 되었고, 그의 휘하에 있던 김정미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심지어 그녀는 대마초를 피웠다는 정황이 없었음에도. 이러는 과정에서 그녀의 앨범은 전부 몰수되어 폐기처분을 받는 등[* 때문에 현존하고 있는 그녀의 앨범은 미량에 불과해 상당한 고가에 거래된다고 한다. 이후 NOW 기준으론 [[2011년]] 미국을 통해 재발매되는 등 음원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중.] 큰 곤욕을 겪으며 동료가수 김추자처럼 인기를 누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했고, 결국 음악계에 염증을 느낀 그녀는 [[1977년]] 마지막 작품을 내놓은 채 미국으로 떠나며 홀연히 가요계에서 종적을 감추게 된다. 아무튼 당시 [[제퍼슨 에어플레인]]과 [[재니스 조플린]] 등 미국의 전유물인것만 같았던 [[사이키델릭]]을 한국에 정착시킨 장본인으로서 평가를 받는 가수. 게다가 위들과 같은 여성 보컬리스트라는 점도 괄목할 만하다. 신중현 사단 가수 중 비슷한 노선으로 이정화가 있긴 하다. 현재는 미국의 [[로스엔젤레스]]에 가족과 함께 거주중이며, 가족의 증언을 통해 소소한 근황을 알리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2013년 영국 영화 <더블 : 달콤한 악몽>에, 2018년 미국 영화 <덕 버터>에 ‘햇님’이 엔딩곡으로 수록되어 해외 네티즌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고, 이 곡이 해외에서 커버되기도 할 정도로 소소한 인기를 얻었다.([[https://www.youtube.com/watch?v=JbSrA8XkW8g|#]][[https://www.youtube.com/watch?v=MqQKFpe-tAg|#]]) 또한 2018년 12월에 개봉한 영화 [[마약왕]]에 '바람'이 수록되며 다시 한 번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각주] [[분류:한국 여가수/ㄱ]][[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53년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