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able align=right><table bordercolor=#000000><bgcolor=#fffff9> '''{{{+1 김인 [br] 金寅 / Kim In}}}''' || ||<-2> [[파일:external/media.cyberoro.com/%EA%B9%80%EC%9D%B8.jpg|width=300]] || ||<bgcolor=#000000> '''{{{#white 직업}}}''' ||<bgcolor=#fffff9> [[바둑기사]] || ||<bgcolor=#000000> ''' {{{#white 소속}}}''' ||<bgcolor=#fffff9> [[한국기원]] || ||<bgcolor=#000000> ''' {{{#white 생년월일}}}''' ||<bgcolor=#fffff9> [[1943년]] [[11월 23일]] || ||<bgcolor=#000000> ''' {{{#white 국적}}}''' ||<bgcolor=#fffff9>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28]] [[대한민국]] || ||<bgcolor=#000000> ''' {{{#white 입단}}}''' ||<bgcolor=#fffff9> [[1958년]] || ||<bgcolor=#000000> '''{{{#white 단급}}}''' ||<bgcolor=#fffff9> 九단 || [목차] == 소개 ==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바둑)|기사]]이다. 1943년 [[전라남도]] [[강진군]] 출생으로, 1958년 프로에 입단했고, 이후 1962~63년 일본으로 유학하여 [[기타니 미노루]] 도장에서 수학했다. 귀국 후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 [[국수전]] 6연패, 패왕전 7연패를 기록하는 등 [[조남철]] 이후 한국바둑의 최강자로 군림했다. 일본바둑과 두 점 이상 차이가 났던 당시 한국바둑계에서 그나마 조남철과 함께 [[정선#s-3]] 정도의 치수로 버틸 수 있는 기량을 보유한 프로[[기사(바둑)|기사]]였다.[* 한국에서 프로 입단 직후 일본으로 유학한 [[조훈현]] 九단의 경우 처음에는 일본의 소년기사들과 석 점 정도 실력차가 났다고 한다.] 1970년대 중반 이후로는 [[조훈현]]과 [[서봉수]]에 밀려 점차 하락세를 보였다. 1983년 승단대회를 통해 九단으로 승단함으로써 한국 바둑 사상 두 번째 九단이 되었다.[* 첫 번째는 [[조훈현]], 세 번째는 추대를 받아 특별승단한 [[조남철]].][* 바둑평론가 박치문씨의 회고에 따르면 원래는 김인 九단이 첫 번째 九단이 될 수도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승단대회에서 진작 승단 점수를 채웠지만 본인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고, 한국기원측의 행정처리도 그리 체계적이지 않던 시절이라 조훈현이 이미 九단으로 승단한 이후에야 자기가 승단 요건을 충족했음을 알았다고...] 현재는 세계사이버기원 이사로 재직중이며, 그의 고향인 강진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국제 아마추어 바둑대회[* 공식 명칭은 '김인국수배 국제시니어바둑대회']가 매년 열리고 있다. 세계 2위 연승기록인 40연승을 가지고 있다. 김인 9단보다 더 많은 연승기록이 있는 기사는 [[이창호]](41연승) 한명 뿐이다. == 주요 경력 == * 제10기 ~ 제15기 국수전 우승 * 제6기 ~ 제12기 패왕전 우승 * 제8기, 제12기, 제13기 최고위전 우승 * 제1기 ~ 제7기, 제9기 왕위전 우승 * 제2기 명인전 우승 * 제1기 백남배 우승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김인, version=10)] [[분류:1943년 출생]][[분류:바둑 기사]][[분류:강진군 출신 인물]]